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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Ⅵ ) (80.6.28)

이보규 2007. 8. 27. 23:46
 
 

제주도 기행 (80.6.28)


우리 일행은 천제연 폭포를 뒤로 하고 새로이 관광지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중문 관광단지 현장으로 향했다.


야산을 깎아 길을 내고 언덕을 다듬어 넓은 택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었다.


국토라면 어디에 있든 한치의 땅이라도 겨레의 값진 재산이요,

우리의 삶의 소중한 터전이기에 이를 새로 개발 할때는 먼훗날 다시 되돌아 본다해도

오늘의 계획이 치밀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사전 검토후 착수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제주도를 찾아드는 관광객들이 편히 쉴 충분한 잠자리를 만들고

또한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편익시설 갖추는 일은 내국인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외화획득을 위한 외국인 유치에 더욱 역점이 주어져 서둘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관광자원 개발에 착안하여 도로가 나무뿌리를 한데 모아 자연이 창조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목석원과 같은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됐다.


버스는 다시 서귀포 소재 정방폭포를 지났다.


동양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폭포엔 물이 시원하게 바다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서귀포 앞바다엔 그림과 같은 섭섬(森島)과 문섬(蚊島)등이

깎아세운 듯 솟아있어 유독 눈길을 끌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섬들을 바라보면서..


나보다 먼저 태어나 이 자리에 서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간 관광객들을 생각했다.


몇백년전 조상들도 이곳의 자연을 예찬하면서 지나갔겠지만

지금은 모두 형체를 찾을길이 없건만 우뚝 솟은 섬은

어제처럼 오늘도 또 내일도 그대로 서있는 것이 아닌가?


대자연의 생명체는 생명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 사람도 역시 여기에서 예외일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지나간 발자욱과 이름이 남고는 다시 땅속으로 가야만 하는 엄숙한 진리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이땅에서 오래 오래 살고픈 욕망이 솟구쳤다.


하지만, 이땅위에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오직 자연만이 영원한 주인일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은 인간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자연을 이용할 뿐이기에 더욱 소중히 아끼고 가꾸어

구김없이 다음 세대로 넘겨주어야 할 것이며 바통을 받아쥐고 달리는 육상선수처럼

모두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할 것 같다.


나는 버스가 식당 앞에 멈추고 나서야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제주도 특유의 생선회가 곁들여진 점심식사가 이날따라 더욱 맛이 있었다.


오후에는 천지연폭포와 해발 1천2백 15m의 한라산에 있는 성판악을 돌아 내려오면서

커다란 목장을 살펴보고 화산구 삼굼부리에 도착하여 또다른 신비를 맛볼수 있었다.


분화구 둘레가 2㎞에 달하고 있어 외형에도 관광자원의 가치가 있을뿐더러

그 보다도 이곳에는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공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난(暖)온(溫)대성식물과 고산식물등 4백 20여종이 함께 자라고 있어

학술적 연구자료가 풍부하다는데 관심이 더하게 했다.


지난 79년부터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는 일은 퍽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행은 모두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기에 분주했고 나도 뒤질세라

보다 멋있는 사진을 만들어 보려고 정성들여 셔터를 눌러댔다.


이어서 제주도에서 보존하고 있는 민속마을을 찾았다.


이마을 입구에서 제주도 어디를 가도 흔히 볼수 있는 돌하루방의 본래의 것을 대할수 있었다.


제주도미의 순박한 기상의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돌하루방은

당초에 고을의 수호신으로 세워졌다고 전해진다고 했다.


툭 튀어나온 눈망울, 크면서도 넓적하게 못생긴 코, 바보스러운 입술,

머리에 쓰고있는 작은 모자, 빈약하면서도 기울어진 어깨의 폭등

그같은 외형의 모습에다가 마을을 지켜주기를 기대하기엔 너무도 순박하고 바보스럽게만 보인다.


나는 18세기 이 돌하루방을 조각하기 위하여 망치와 징을 들고

큰바위를 쪼아대는 조상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선주들이 외부민족으로부터 너무 많은 수난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용맹스럽고 과감하게 대처하기도 했고

때로는 지혜있는 인내로 슬기롭게 나라를 지키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가꾸어 온 것이 한편 자랑스럽기도 했다.


또한 민속마을의 전통가옥을 보면서 딱붙은 낮은 초기지붕,

돌밤벽의 좁은 방들이 오늘의 시점에서는 조상이 살아온 가난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 같아

감추어야 할지 내보여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자원들을 꼭 보존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제의 가난했던 시절을 잊고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꼭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마을에서 하룻밤이라도 묶어보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을때

버스는 또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위해 엔진시동이 걸려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