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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일본시찰기②-한국산담요 대만에서 인기(81.01.24)

이보규 2007. 9. 5. 16:34
 


대만ㆍ일본(日本)을 돌아보고-②

 

               한국산담요 대만에서 인기품목


                                                서울시새마을지도계장 이보규

 

대만중정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려 정해진 긴 통로를 따라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이 국제공항은 자유중국(自由中國)의 초대총통이었던

고 장제스(張介石)씨의 호(号)를 따서중정이라 이름 붙여 새로 신축했다는데

현지에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공항의 규모가 크고

건물이 웅장하면서도 현대적 멋이 있어 처음 이곳을 찾은 외국인이 작은 섬나라라고

깔볼 수 없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데 충분했다.


건물 안의 긴 통로에 설치한 평면 에스컬레이터라든가,

냉방시설, 건물의 공간처리 등 모두가 돋보였다.


우리나라 김포국제공항을 때맞추어 새로 확장 신축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탁송한 수하물 취급소를 찾아갔다.


여기서 나는 놀랐다.

여러 가지 수하물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담요 보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 중국 사람은 우리나라에 왔다 가면서 한국산 담요를 못사오거나

음식 중에서 삼계탕(蔘鷄湯)을 못 먹어보고 오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아는 체 하고 있었는데 그말이 정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마침 우리 일행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무부에서 연락을 받고 駐中한국대사관 직원이

우리 일행을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무척 고맙고 또한 반가웠다.

외국에 나가있는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하는 일 일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사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외국인 전용 세관신고대 앞에 줄을 서서

무표정하고 사무적인 그곳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열어보이고

소지하고 있는 화폐를 신고하고 신고한 액수 만큼의 돈을 그들에게 확인시켜야 했다.


대만정부는 달러의 해외유출을 막기 위하여 세관에게 현금에 대하여는

가장 철저히 검사한다는 사전지식을 있지 않았다면 불쾌할 정도로 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우리 일행은 공항 대합실을 지나 건물 밖으로 나서자

대만 특유의 축축하고 후끈한 온기가 온몸으로 밀어 닥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춥고 쌀쌀한 날씨였는데

불과 비행기로 3시간여쯤 날아온 곳의 기온차가 너무 컸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소형버스에 오르는 차는 냉방시설을 가동하고 있었다.

버스가 공항주차장을 빠져나와 대북을 향해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곳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보다 조금 넓은 왕복 6차선으로

3년 전에 건설되었다는데 중앙 분리대에는 열대식물을 심어 장식하였고

특히,눈에 뜨이는 것은 바닥 아스팔트 포장상태가 좋아 바닥이 침하 되거나

균열이 생겨 다시 고친 흔적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다만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가시권 풍경에

다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로 가 언덕에는 잡초와 갈대숲이 무질서하게 무성히 자라 있었지만

그 잡초를 미관을 위하여 제초를 하거나 주변 청소를 한 흔적을 별로 찾아볼수 없었고


특히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들은 대부분 검은색 계통의 지붕에 붉은 벽돌집으로

마지막 손질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처럼 보였고

건물에 자연과의 조화미를 살리기 위한

페인트칠을 하는 등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공항에서 대북까지 약 40㎞, 버스로 약 40분. 버스 안에서 앞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해줄 중국(中國) 동오대학에 유학중인 김군을 소개 받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자유중국(自由中國)에 대하여

겨우 상식적인 사실밖에는 알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 내심 부끄러웠지만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고...


결국 대사관에서 나온 석(石)선생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도리 밖에는 없었다.


자유중국은 섬나라로 면적은 우리나라 경남북(慶南北)도를 합한 크기 만한

3만 5천여㎢.섬의 모양이 세워놓은 둥근 고구마처럼 남북의 길이가 3백 77㎞,

동서의 길이가 1백42㎞의 대만 본섬을 비롯하여 86개 섬으로 되어있고,

국토의 70%가 해발 1백m 이상의 고지이며 중앙에 가장 높은 산이 옥산으로

높이가 무려 3천 9백 97m. 그 정상에 다시 3m 높이의 탑을 쌓아올려

산의 높이가 4천m가 된다고 했다.


기후는 아열대 및 열대지방으로 겨울이 불과 2개월뿐인데도 그 겨울의 평균 기온이

섭씨15~16도로서 온화한 편이라 했다.


인구는 우리나라 절반에도 못 미치는 1천7백49만명.

그중에 20%가 중국(中國)본토에서 국민당 정부가 대만성으로 이전할 때

함께 건너온 대륙인이고

대부분이 대만본래의 거주자들인데 그 중 일부가 고산족(高山族)이 남아있다 했다.


가장 큰 도시는 우리가 지금 향해가고 있는 대북시로서 2백 20만 명이 모여살고 있으며

그 외에 몇 개의 크고 작은 도시가 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이 탄 소형버스는 일정한속도로 안전하게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통하여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고 있었다.


도로변에 울창한 나무숲이 없는 것, 또한 도로변 아파트의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 등은

역시 아름다울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도로변에 크게 세워놓은 야립(野立)간판을 볼 수 없는 것은

또한 이곳의 특징처럼 보였다.

 

시가지로 들어서면서 제일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커다란 건물마다

세워진 채 건물 밖으로 돌출한 대형 원색간판이었다.


간판은 중압감을 느낄 정도의 커다란 정사각형의 한문자가 가득 차

간판 숲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이 원색인 동시에 붉은색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붉은색은 간판뿐만 아니라 고전건물 기둥이나 대형 아치 역시

온통 붉은 색으로 장식되어 있어

원색의 붉은 계통의 색깔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도심의 가로에 있는 가로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실내에서 화분을 심어

온실에서나 가꾸고 있는 고무나무ㆍ종려나무 등이 대부분 가로수로 심겨져

크게 자라고 있어 남국의 정취를 한층 더 느끼게 했다.


중심가로 들어서자 자동차의 행렬이 줄을 이어 밀려가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많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도로엔 분리대를 통하여 오토바이 도로가 있었지만 네거리를 횡단할 때는

자동차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결코 아름다운 풍경일수는 없었다.


남녀 구별 없는 오토바이 행렬.

대북에선 집집마다 오토바이를 2대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던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