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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중추절과 불우 이웃들 (89.10.15)

이보규 2007. 9. 10. 09:44
 

 

      요즘의 중추절과 불우이웃들

 

                     서울특별시 송파구청 총무과장 이보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이 금년부터 3일간 연휴로 변경되어

가슴 설레는 기대 속에 맞이했는데 어느덧 한 순간의 추억의 장으로 아쉽게 지나가 버렸다.


해마다 예외 없이 다가오는 추석이지만 올해의 추석이 예년에 비하여

더 큰 충격과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매연 추석 때면 귀성객의 수송대책과 이에 따른 예매행열,

그리고 암표상의 극성, 고속도로의 혼잡과 교통사고,

추석 성수품의 수요급증에 따른 물가상승 등이 예외 없이 되풀이 되는

사회문제인데 금년도에도 예외 일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의 추석은 예로부터 『중추절』(仲秋節) 또는 『가배일』(嘉俳日) 또는

음력 8월의 한가운데라는 의미의 『한가위』로 불리면서 신라 초 이전부터

2천여년간 우리 민족의 명절로서 전해졌다고 한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의 계절,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맑은 하늘, 달 밝은 저녁….

그래서 추석(秋夕)이라고 불렀는지 모른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으라"는 말은 여러가지의 함축된 말이 아닐까.


오늘날의 추석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이어 오는 동안 핏줄의 끈끈한 정감(情感)이 가족단위로

그렇게도 집요하게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응집력을 지켜 왔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추석절은 추수감사의 의미가 동시에 부여되어 햅쌀로 갖가지 송편을 만들어

밤,대추를 햇과일과 고기등 음식을 만들어 풍성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나서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밤이 되면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쥐불 놀이도 하고

한편 객지에 살던 가족들이한자리에 모여서 덕담을 나누고 

뒷산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로서 가족애를 나누고 했던 추석이다.

내가 어려서 경험한 추석은 즐거운 마음으로 새 옷을 입고

좋은 음식 많이 먹어 배탈이 나곤 했는데 금년도 매스컴에 보도된

추석절에 대한 내용을 집약하면 추석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어 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 모습을 『2천만의 대이동』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결코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귀성전쟁』으로 표현되는

교통난은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연휴기간동안 2800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

140여명의 사망자와 3천 6백여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는가 하면

전라북도 완주에서는 연휴귀로에 버스가 추락하여 24명의 사망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불상사 등의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는 추석 때 너무 과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거듭하지 아니할 수 없다.


30만대의 자동차가 봇물 터지듯 고속도로에 몰려나와 도로가 주차장처럼 되어

서울-대전 간에 무려 7시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보도등….


우리는 추석을 보내면서 귀성객에 대한 교통대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추석 축제의 그늘에 가린

우리의 이웃에 눈을 돌려서 소외되는 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따뜻한 상부상조의 정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4천만 민족 가운데 2천만 명이 이동했다면 이동하지 않은

2천만은 왜 이동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한다.


그중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그 지역의 토박이인 사람도 많이 있지만

상당수의 실향민들이 추석 때만 되면 눈물을 흘리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고향이 있고 부모도 계시지만

고향에 가고 싶어도 형편이 여의치 못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추석날 아침 구석진 좁은 골목길 삭월세방에서 병든 가족이 누워있는

쓸쓸한 추석날 아침을 맞는 이웃과 정을 나누자는 것이다.


자가용 행렬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고향을 찾는 열성으로

우리의 화합과 민족의 통일을 위한 국가 발전에도 앞장설 수 있지 않을까?


붐비는 백화점 행렬에 줄서 기다리며 과소비의 주범으로 지탄을 받지 말고

구청과 동사무소에 마련된 한산한 이웃돕기 창구에 들러서

조그마한 온정이라도 베풀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가?


가족끼리 모이는 날을 꼭 추석에만 한정하지 말고

우리 모두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4천만 민족이 모두 다 함께 즐기는

추석으로 만들어 가야 하겠다.


이러한 역사적인 일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는 힘든 일이다.

또한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불가능하다.

다함께 공감대를 형성하여 슬기와 지혜를 모을 때만이 가능해질 것이다. 

 

                                                                               (1989 서울시보에 실린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