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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버지와 어느 재벌의 자식사람

이보규 2009. 1. 21. 22:02

 

 

우리 아버지와 어느 재벌의 자식사랑

 

나는 6형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 부잣집에 태어나서 천덕꾸러기는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아들이라는 소중한 부가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자랐다.

 

우리 형제 모두는 안방 온돌방에서 한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베개만 따로 하나씩 가지고 요도 없는 방바닥에 펼쳐 있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서

눕다 보면 다리가 서로 엉키고 부딪치고…….

그래도 잠자리가 불편하다거나 잠이 오지 않아서 걱정 하든 기억은 없다.

 

대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는 오직 조용하게 밥만 먹어야 했다.

밥을 먹는 시간에 말을 하면 복이 나간다고 해서  일체의 말은 금기 사항이었다.

밥 먹을 때는 여우가 애를 업고 도망가도 고개 숙이고 밥만 먹으라는 엄명이 유효하게 살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가풍이 식사시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평소에 방에서 형들이랑 동생들이 함께 떠들며 장난치고 놀다가

대문에서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나면 일시에 모든 사항을 멈추고

"동작 그만" 그때까지의 사항을 서둘러 중지하고 장난하던 일을 끝내야 했다.

 

군기반장(?)의  우리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는

모습만으로도 분위기를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아버지는 농촌 산촌마을에서 이장으로 28년을 봉사하시고

한학을 하셔서 특히 붓글씨를 잘 쓰셨다.

200여 호의 마을의 지도자(?)로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바르지 않은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분이셨다.

 

누구든지 아버지가 부르시면 즉시 대답하고 아버지 앞에 뛰어나와야 하고

심부름을 시키면 언제나 즉시 행동으로 나타나야 했다.

 

누구도 이유를 댈 수 없고 꾸물거리면 즉시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 오시면 한 사람씩 슬슬 눈치를 보며 뒷걸음으로 밖으로 도망하곤 했다.

 

할머니 생존 시에 말씀에 의하면 어느 자식 하나 아버지 품에 안겨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형제들을 엄하게 키워서 주변에서 왜 아이들을 무섭게 하느냐고 하면 

자식은 속으로 귀여워해야지 겉에 표가 나면 안 된다고 피력하시곤 하셨다.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철학이 그런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게 하셔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잘못해서 벌을 받느라고 모두 밖으로 쫓아내고 나면 꼭 집을 비우고 나가신다.

그때를 틈타 어머니께서 모두 불러 드려서 밥을 주시면  그것으로 사건(?)을 종결하곤 하셨다.

 

6,25사변 피난을 떠날 때 고무신 가게에 가셔서 나에게 맞는 신발을 고르느라고

발에 이것저것 신겨 보실 때 나는 아버지의 어깨를 짚고 서서 행복했다.

 

그날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나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우리가 나가서 놀다가 무릎이 깨지고 싸워서 울고 들어와도 무표정이시고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니를 아이들 싸움에 역성들지 말라고 오히려 어머니를 나무라셨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고 강조하시고 모른 척하셨다. 

 

그 당시는 아버지를 미워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우리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아들 형제를 키우면서 아버지처럼 하지  못했다.

무서운 아버지가 싫어서 나는 무섭지 않은 아버지가 되려고 어떤 일이건

그냥 아이들 하는 대로 두어서 아내와 무서운 아버지의 이미지와 아버지로서의 

역할 때문에  키우면서 의견이 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이들이 장가들어 살림을 나가고 나니 이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자식 사랑의 따뜻한 정을 알 듯하고 더 그리워진다.

 

최근 어느 재벌 아버지의 아들 싸움에 끼어들어

아들을 때린 사람을 찾아 보복하다가 구속을 당하는 망신스러움을 보면서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지나친 과잉보호를 비난하는 것이다.

 

위대하신 나의 아버지!  우리 아들 6형제를 낳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항상 배려해준 사랑이  이 시간 더 크게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아버지의 추억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