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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에 뺏긴 땅 찾아 애국공원 만들겠다”

이보규 2011. 11. 19. 09:08

“신군부에 뺏긴 땅 찾아 애국공원 만들겠다”

 

컨테이너서 살며 이웃 돕는 박영록 前의원 ‘정부 사과 - 땅 반환’ 국회에 청원서

“군사정권 시절 국회는 ‘독재의 시녀’였습니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나서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세워주기 바랍니다.”

11일 국회에서 만난 박영록 전 국회의원(89)은 31년간의 아픔을 곱씹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20년간 강원도지사와 4차례 국회의원을 지내 한국 정치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박 전 의원은 1980년 7월 신군부에 상당수 재산을 몰수당했다. 당시 23만여 m²(약 7만 평)의 땅을 모두 빼앗긴 박 전 의원은 지금도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13m²(4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본보 2006년 5월 2일자 A1면 참조
A1면 [전직 국회의원들 어떻게 사나]금배지 뗀 생활 ‘극과 극’


박 전 의원은 최근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신군부가 저지른 불법 감금과 고문에 대해 정부가 사과하고 빼앗긴 땅을 돌려달라는 취지다. 이 청원서에 대한 국회의 결의안 채택 여부는 조만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 38세 때 강원도지사 당선


38세의 나이로 야당(민주당) 공천을 받은 박 전 의원이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것은 1960년. 걸어서 출퇴근하고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민심을 얻은 그는 1963년 강원 원주시에서 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1979년까지 민주당과 신민당 소속으로 4차례 국회의원직에 오른 그는 신민당 부총재를 맡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이끄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에 그는 눈엣가시였다. 5·18민주화운동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80년 7월 18일 박 전 의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젊은 남자 4명에 의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갔다. 37일간 불법 감금 상태에서 고문을 받은 그는 강압에 못 이겨 국회의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야산에 있는 6000만 원짜리 돌무더기 땅도 빼앗겼다.

1980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합수부는 박 전 의원이 불법정치자금 4756만 원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18억 원 상당의 토지를 매입해 부정축재를 했다고 발표했다. 애국공원을 만들기 위해 세비를 아껴 사들인 6000만 원짜리 땅값을 30배나 부풀려 ‘파렴치한 정치인’으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 9차례의 재판

박 전 의원은 1992년 서울민사지법에 빼앗긴 땅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합수부는 자신들이 선임한 변호사에게 토지소유권을 위임하게 한 뒤 제소 전 화해(소송을 내기 전 법관 앞에서 화해를 성립시키는 것) 방식으로 땅을 빼앗았다. 이 땅은 1986년 6000만 원에 서울시로 넘겨졌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는 “법관 앞에서 소유권을 넘긴 땅을 되찾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는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박 전 의원이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변호사에게 권리를 위임했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1997년 확정됐다. 박 전 의원은 다시 한 번 소송을 냈다. 소유권이전등기의 효력이 사라졌으니 국가와 서울시가 땅을 돌려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2001년 대법원은 박 전 의원의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의원이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였음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땅을 넘긴 뒤 10년의 제척기간이 지난 데다 땅을 사들인 서울시가 ‘선의의 제3자’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땅을 되찾기 위한 9차례의 재판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컨테이너에 사는 박영록 전 국회의원의 삶을 조명한 본보 2006년 5월 2일자 A1면 보도. 박 전 의원은 이후 이어지는 성금과 식료품 등을 불우이웃에게 모두 기부해 ‘대한민국 청렴정치인 대상’과 ‘황희 정승대상’을 받았다.

8년이 지난 2009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합수부가 박 전 의원을 불법 감금해 고문했고 강제로 땅을 빼앗았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또 “국가가 박 전 의원에게 사과하고 강제헌납 받은 재산에 대한 구제조치에 나서라”고 권고했다. 박 전 의원은 이 권고를 바탕으로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컨테이너에 살며 자신에게 보내진 성금을 모두 불우이웃들에게 기부해 ‘대한민국 청렴정치인 대상’과 ‘황희 정승 대상’을 받은 박 전 의원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채 상당 부분 서울시 소유로 남은 땅을 되찾아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의사(義士)를 기리는 애국공원을 만드는 것이 남은 생애 마지막 염원”이라고 밝혔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