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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②

이보규 2008. 4. 26. 08:21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 회장 사업 일절 거절하시오”
조선업 못하겠다 하자 박 대통령 진노…“그렇게 혼나 본 건 처음”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②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일제 치하였던 1929년의 ‘방어진 철공소’가 효시였다. 그 후 1937년, 대한조선공사의 전신인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1만t급 건조 능력을 갖추고 태동했다. 그러나 조선중공업은 20년 가까이 지나도록 큰 발전을 하지 못한 채 자유당 정부를 거쳐 5·16 군사정부까지 이어갔다.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1차 5개년 스케줄에도 경공업 우선정책에 밀려 조선 공업은 주요 육성산업 부문에서 제외됐다. 그러다가 67년 국내 조선을 진흥시킨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조선공업진흥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그나마도 60년대 말까지 소형 강선만 제작할 수 있었을 뿐 자금과 기술력 부족으로 대형 선박 건조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60년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70년대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정부는 제3차 5개년 계획에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경제 부흥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선 공업을 주요 육성 산업으로 지정하면서 ‘조선공업진흥기본계획’이라는 긴 정책안을 마련하는데, 물론 기본계획의 주요 골자는 청와대 비서실이 작성했다. 여

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각에서 조선 공업이 부정적이라는 보고가 올라오자 대통령이 장예준 당시 건설부 장관을 불러 질책하면서 ‘이래도 안 된다는 거냐’고 보여준 것이 그 문건이었다.

“무조건 해보란 말이오!”

“국무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지는 않고 경제 수준이 함량 미달이라는 반론에 밀려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다면 누가 이 나라 경제를 부흥시킨단 말이오! 1단계로 조선소를 만들어 초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기계·철강·전기·전자·해운 같은 연관 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조성된다는데 왜 전부 안 된다고만 하느냔 말이오! 해보란 말이오! 해보지도 않고 왜 전부 부정적이야!”

금속성 고성을 내지르면서 대통령이 던지듯이 내놓은 계획안에는 정부의 종합국토개발 계획과 임해공업단지개발 계획에 맞춰 조선소 부지를 정하되 생산 규모는 1?20만t 2척, 15만t 2척, 도크는 20만t급을 건조할 수 있는 규모와 수리선 도크도 같은 규모로 건설한다고 돼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정 회장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읽고 차관부터 얻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통령이 느끼는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회장께서 보기에도 조선 산업이 사양 산업이었습니까?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 했어요! 그때는요, 사양 산업이고 성장 산업이고가 어딨어요? 수출도 못하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 형편에 맞춰야지 자급자족에 겨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를 지났는데 돈만 되면 다 하는 거지 우리가 선진국이야? 강대국이에요?”

정 회장은 “찬밥 더운 밥 가려서 먹을 형편이 아니다”며 “사양 산업이라고 하는 건 선진국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거예요!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느냐 하면 차관 때문에 나갔다가 빈손으로 오니까 그때 대통령 경제자문 교수단이라고 있었어요. 그이들이 김학렬 부총리하고 얘기하다가 ‘것 보라고, 사양 사업이라서 돈 꾸어 줄 나라가 없을 거라고 하지 않더냐고.’ 이러잖아요. 지들이 돈 꾸러 나가봤어? 바깥에서 사양이라든 말든 왜 그걸 우리 형편에 견주느냔 말이에요. 비록 바깥에선 그런 소리 하더라도 우리나라 안에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빈손으로 왔는데 염장 지르고 있잖아. 그럼 내가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유람 다니다가 왔다는 거야? 그 당시엔 나룻배도 돈이 되면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교수들이 생각 없이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회장님이 놀러다니다 왔다고 생각해서 그랬겠습니까?
“나도 잔뜩 긴장하고 내 돈 써가면서 스타일 다 구기고 돌아왔는데 말이지. 몰라서 그렇지 박 대통령 앞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말을 해야 될 입장이 돼 봐요. 백묵만 만지는 교수들은 상상도 못해요! 그럭하고 우리 같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비교우위를 지니는 산업으로 분석이 됐잖아요. 특히 기계·철강·전기·해운 같은 연관 산업에 굉장한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는 산업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더구나 한국은 3면이 바다라는 입지 조건도 좋으니까 서양 사람들이 평가하는 건 맞지가 않다고 대통령도 그러셨단 말예요.”

▶1980년대 초반의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도망가려다 부총리에게 잡혀

정 회장은 많이 서운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조선소가 완공될 때까지 청와대 자문 교수들이 당시만 해도 제법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울산에 내려온다고 해도 일절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경제는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정주영주의’가 그때부터 생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 회장은 겁이 나서 곧바로 박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고 실토하며 웃었다. 그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에게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차관을 안 주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얘기를 남기고 또 도망갈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부총리가 먼저 눈치채고 딱 잡으면서 굳어버린 경상도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오히려 ‘누구 자빠지는 거 볼라고 그캅니까? 나는 정 회장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대통령한테 할 수는 없어요. 대통령께서는 꼭 되는 줄 알고 계세요. 4대 핵 공장이 다른 건 안 되더라도 정 회장이 맡아서 하는 건 꼭 된다, 그렇게 믿고 계시고 나도 그래 보고를 드렸는데 인제 와서 못 하겠습니다? 나는 못 합니다. 내가 대통령한테 시간을 얻을 테이까 나랑 같이 들어가서 직접 보고하세요.’ 이러더라는 거였다.

차관은 그 시점에서 얼마나 빌려야 가능했던 겁니까?
“제일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게 조선소 아니에요? 그때 우선 조선소를 건설하려면 부지 값은 빼놓고 처음 계획한 규모가 정부는 20만t이라고 했는데 내가 조사를 해보니 50만t급이라야 장래가 보이고 되는 거예요. 그러면 50만t급을 만들 수 있는 드라이 도크하고 900m의 의장 암벽에다가 여러 가지 중장비가 있어야 해요. 돈이 있어요? 그게 내·외자를 합쳐서 그 당시에 6300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국가가 나서서 벌어들이는 돈이 몽땅 11억7000만 달러밖에 안 되는데 말이지, 하하항. 간이 부었지. 그걸로 끝나나? 배를 건조하존?외국에서 기계를 또 사와야 해요. 기계를 사는 데만 약 8000만 달러가 있어야 했어요. 우리나라가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래서 별짓 다 하면서 돈 꾸어달라고 해봤던 거예요.”

김 부총리는 대통령의 의지를 알고 있으니까 금방 시간을 얻어낼 수 있었겠지요. 회장님은 겁이 났는데도 같이 들어가신 겁니까?
“하하항, 들어갔지. 도망친 전과가 있어서 벌써 부총리가 눈치챘어.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부총리가 아이고, 나도 참았는데 잘 됐습니다, 이래요. 같이 가자 이거지, 하하항.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까 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죄다 말씀드리고 분명하게 해외의 시각들이 이렇더라고 보고를 드리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대통령께서도 생각을 바꾸시든지 대책을 세우시지 않겠어요? 그래가지고 들어갔지요. 부총리는 내 앞에 앉고 대통령은 탁자 가운데 앉으시고. 그래서 아까 얘기한 대로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일본 사업가나 미국 사업가가 상대를 안 합니다. 초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무슨 큰 조선업을 하겠다고 하느냐, 당신 나라에서 어떻게 몇십만t 배를 만든다고 감히 넘보느냐, 그런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그러니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그랬지요.”

박 대통령이 호통칠 때는 어떤 스타일입니까?
“아주 무섭지요. 대통령 만나봤나요? (혼이 날 일이야 없었다고 하자) 눈에서 불이 튀어요. 경제인들 얘기 들어보면 애정이 없는 자리 같으면 그냥 뭐 조용히 웃고 대충 그러느냐고, 그런 정도로 하시는 모양인데 아주 뭐 그때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 회장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느냐고! 못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나한테 왔느냐고!’ 아, 이러시는데 등에서 땀이 날 정도예요. 그런 어른이지요.”

실컷 혼내고 담뱃불 붙여줘

더 이상은 설명이 안 될 정도였습니까?
“부총리도 찍소리 못하고 나도 죽은 듯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진심으로 실망을 하시는 거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외국의 반응이 어떨 거다 하는 건 이미 예상을 하신 것 같아. 그랬기 때문에 그걸 돌파하지 못하고 왔다는 걸 화내시지? 내 평생 그렇게 혼이 나 본 건 첨이에요. 그러시더니 부총리 보고 소리를 질러요. 앞으로는 정 회장이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해도 일절 다 거절하시오, 정부가 일절 상대도 하지 마라! 아, 이러시면서 앉았던 의자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는 앞만 딱 쳐다보고 일절 말씀이 없는 거야. 부총리도 대답을 못하는 거지요. 햐, 화가 나니까 정면만 딱 쳐다보면서 꼼짝도 않고 그러고 계시는데, 이건 내가 완전히 고문당하는 것보다 더 무서워요. 그러니 나도 뭐 계속 허공만 쳐다보면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거지요. 버티는 건 내가 대통령보다 경험이 더 많거든. 하하항.”

그리고 침묵이 계속됐는데 박 대통령이 담배를 꺼내 정 회장에게 권하며 라이터불까지 켜주더라고 했다.

박 대통령도 애연가였다.

“사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지만 처음에도 그랬는데 대통령께서 권하니까 안 피운다는 말은 못하고 뻐끔뻐끔 빨고 앉아 있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한참 동안은 말씀이 없어요. 그게 박 대통령 성품이야. 참 생각이 깊은 분이야. 대통령이 담뱃불을 끄면서 하는 말씀이 그때부터가 그분의 모든 정신이 나오는 거예요. 내가 돌아와서 대통령의 그 말씀을 적어두기도 했는데, ‘정 회장, 그래 한 나라 대통령하고 경제 총수인 부총리가 도와주겠다는데 그걸 못 하겠다고 체념을 해? 언제는 그 일이 쉽다 생각하고 나섰어? 어렵겠다는 각오를 하고 결심이 서서 나섰으면 끝까지 어떻게 하든 그걸 해야지 못 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돼? 우리가 모든 국력을 기울여서 성원을 할 테니까 다시 나가봐요. 이번에는 구라파로 나가봐요. 구라파를 가서 차관을 주겠다는 나라를 찾아다녀. 사업가도 찾아다니고 말이야! 언제는 그 일이 그렇게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 쉬웠으면 벌써 했지. 한 번 나가서 안 되니까 손을 든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빨리 뛰어나가라고!’ 이러시니 그때는 또 들어갈 때하고는 마음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못 하겠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그러면 나가서 한번 더 열심히 쫓아다녀 보겠습니다. 이러고선 냉큼 나왔지 어떡해요. 김학렬씨는 누렇게 됐고. 하하항.”<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leeho5233@hanmail.net)
출처 : 사랑, 용서, 감사의 삶
글쓴이 : 평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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