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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송평인]의회민주주의 흔드는 극좌파

이보규 2009. 8. 10. 14:30

 

[특파원 칼럼/송평인]의회민주주의 흔드는 극좌파


극좌파의 중요한 특징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서구 극좌파는 주로 트로츠키주의나 마오주의의 이름을 지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트로츠키나 마오쩌둥의 사상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현실 공산주의였던 레닌 스탈린주의와의 차별성을 내세우기 위한 이름일 뿐이다. 그 이름이 크메르루주주의가 됐든 호메이니주의가 됐든 빈라덴주의가 됐든 상관없다. 모든 극좌파가 내세우는 것은 반()자본주의다. 극좌파는 자본주의 이후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이 점이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던 레닌 스탈린주의와의 차이다. 극좌파는 오로지 자본주의에 대한 안티(anti)로서만 성립한다.

부자와 빈자의 불평등, 서방국과 여타 국가의 불평등, 이런 것에 불만을 갖고 얼마든지 반자본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극좌파의 진정한 문제는 반자본주의가 아니다. 그건 그 속에 숨겨진 의회민주주의의 부정이다. 독일의 좌파당(Die Linke)이든 프랑스의 신반자본주의당(NPA)이든 그것이 그 나라 국민 대다수에 의해 위험시되는 것은 다수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볼셰비키즘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광복 이후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과 싸우면서 민주화를 이룩했다. 우선 공산주의와 싸웠고 다음에 이승만 독재와, 또 군부 독재와 싸웠다. 그렇게 해서 1987년 체제가 들어섰다. 혹자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의 과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지나면서 가신()그룹도 해체됐다. 정당에서 후보경선제가 도입되고 노무현 같은 사람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왔다.

이명박 정권과 현 국회가 등장한 것은 노무현 이후다. 현 정권을 독재라고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을 연이어 탄생시킨 이 체제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 삼고 그 탄생에 함께 기여했던 한 축을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구도 속의 반()민주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국회의 미디어관계법 통과 과정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의 행동은 극좌파적 의회민주주의 부정과 다름없다. 1987년 체제 이후 ‘날치기’라는 비판이 성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의회의 정당한 입법행위를 몸으로 막는 싸움을 낡은 시대의 관행으로 백보 양보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투표 행위의 방해다. 의회에서 상대편 당 의원의 투표를 조작해 무효화하고 투표행위 자체를 못하도록 모니터를 내려놓고 심지어 찬성표를 반대표로 바꾸는 행위는 좌우의 구별을 넘어선다. 그건 좌우의 구별이 그 위에 서 있는 기반 자체를 흔드는 것이다.

이는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극좌파적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 헌법학과 정치학이 민주주의의 다양한 측면을 소개하고 그중에서 숱한 역사적 혼란과 철학적 고민 끝에 대의제를 선택했음을 밝히는 데 있음에도 이를 단순하게 직접민주주의로 해석해버리는 것이 오늘날 의회민주주의의 격하로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한국에는 우파만 있지 좌파는 없다고 말한다, 민주당이 실은 좌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의할 부분이 없지 않다. 사실 한국의 민주당은 독일의 사민당,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같은 이념정당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 좌파는 없어도 극좌파는 있다. “내가 투표를 조작해 무효화시켰노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의원 앞에서 좌우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그건 좌우의 구별을 넘어선다. 이를 극좌파라는 분류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이해할 방법은 없다.




송평인 파리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