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 명품 핵연료 빚다…원자력 기술자 '장세정' [으랏차! 베테랑⑥]핵연료 제조 원천기술 확보 산주역 | ||||||||||||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양명승)에서 만든 연구용 원자로 핵연료는 고순도에 제조수율이 거의 99%에 이른다.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핵연료 분말 제조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 창립 이래 자신 있게 선보이는 '야심작'이라 할 만하다. 연구소에서 보유한 몇 안되는 원천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적인 핵연료 제조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세정'이라는 베테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종만 원자력연 연구용 원자로 핵연료 과제책임자는 "장세정이라는 인물은 세계 유일의 핵연료 제조기술을 개발한 산주역"이라며 "모든 기술 노하우를 머리와 가슴 속에 가지고 있는 반열에 오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관련 핵연료를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 아르헨티나, 벨기에 등 해외 주요 고성능 연구로 운영기관들에 108kg 가량을 수출했다. 31만불 정도 된다. 앞으로 U-Mo(우라늄-몰리브덴 합금) 핵연료가 상용화 되는 2016년 이후 연간 500만불 수준으로 수출량이 급증할 것으로 연구소는 예상하고 있다. ◆ 꼬박 20년 걸려 기술 완성…"미국서도 포기한 기술 한국서 성공"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핵연료 원료인 우라늄을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라늄 자체가 고산화 물질이기 때문에 합금화 시키는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수도 없이 많다.
원자력연은 관련 프로젝트를 1987년부터 시작했다. 꼬박 20년 걸렸다. '하나로' 연구용 원자로 건설 당시 설계 단계부터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던 연구 이슈는 핵연료 국산화였다. 영구적으로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진들 입장에서는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국일현 원자력연 박사가 연구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과 특허분쟁까지 벌이면서 관련 기술을 지켜냈다. 금속재료 전공인 김창규 박사는 우라늄 용해를 위해 담는 도가니와 코팅제 등 주요 연구 아이디어를 실험했다. 장세정 기술원은 국 박사와 김 박사의 이론적 개념을 장치의 설계와 제작, 운영을 통해 실현시켰다. 연구의 3박자가 딱 맞아 떨어져 지금의 결과를 창조해 냈다. ◆ 방사능 위험 노출도 마다…"작업하는데 정말 겁났고 울고싶었다"
작업도 고되다. 한 번 핵연료 5kg을 뽑아낼 때마다 3일 동안 꼬박 작업을 펼친다. 5kg는 국제적으로 정해진 임계량이다. 첫 날은 준비작업을 한다. 우라늄 등 모든 소재를 계량화 한다. 소수점 두자리까지 우라늄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한다. 장비들의 부품결함도 상시 체크한다. 하나라도 실패하면 큰일이다. 본격적인 우라늄 용해 작업은 이튿날 전개된다. 오전 9시 30분경 시작해 12시경 우라늄 용해가 끝난다. 그 이후 3~4시간 냉각 작업을 거쳐 오후 4시 30분경 종료된다. 방사선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장치를 해체하지 않다가 마지막 3일째 해체한다. 또 다시 우라늄 계량 작업을 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장치 가동 작업 이외에 장 기술원은 장치의 핵심인 도가니 개발 등을 도맡았다. 처음에는 도가니를 만드는 적당한 재료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알루미나를 비롯해 텅스텐, 티타늄 등 안써본 재료가 없었다. 도가니의 모양도 노하우다. 도가니에서 우라늄 용해물이 빠져나가는 2mm 노즐 구멍도 무수한 실패를 통해 얻은 결과다. 현재 두원산업이라는 산업체에서 제작하는 도가니를 만들어 원자력연에 공급한다. 생산 과정에서 10개중 9개는 실패해 도가니 하나당 120만원을 호가한다. 그만큼 만들기가 어렵다.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장 기술원은 그동안의 실험과정을 묻는 질문에 "우라늄 폐기물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에 실험도 겁났고 점심식사를 굶은 건 다반사였고 울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변수 하나를 찾아내 해결하면 엉뚱한 곳에서 또 다른 변수가 튀어 나와 답답한 적도 적잖았다. ◆ "이론을 현실화 시키는 사람들도 존중돼야" 요즘 장 기술원은 기분이 좋단다. 보람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과제가 중단될 뻔한 수차례의 역경도 있었지만, 현재의 성과를 이뤄내기 위한 하나의 추억이고 과정이었다.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확보한 기술 노하우 덕분에 연구소가 빛을 보게됐고, 같은 실험실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장 기술원은 기록의 달인이다. 80년대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연구소 다이어리에 빼곡히 관련 기술 노하우를 적어 왔다. 정말 중요한 실패 과정도 자세하게 기록해 놨다. 후배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작업이었고, 기술 노하우 정립을 위해 체계적인 정리 작업을 앞으로 펼칠 계획이다. 장 기술원은 "나는 과학기술자들의 이론을 기계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라며 "이론을 현실화 시키는 과정도 중요하고 존중되어야 하는데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서 안타깝고 애로사항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앞으로도 핵연료 제조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할 일이 많다"며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원자력 핵연료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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