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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칼럼-"또박또박 악날하게"

이보규 2008. 3. 15. 10:00


[김순덕 칼럼]‘또박또박 악랄하게’ 끝장내기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노사모 홍위병을 자처한 명계남 씨가 ‘또박또박 악랄하게’를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3년 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지고, 친노 세력이 민주당을 깨고 나가고, 대통령이 적반하장으로 재신임 투표 운운하며 여차하면 물러날 듯 국민을 위협하던 무렵이다. 명 씨는 노사모 앞에 설 때마다 “수구반동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우는 대통령과 함께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전진하자”고 외쳤다.

코드인사나, 코드숙청이나

자파에게 또박또박은 몰라도 악랄하자고 촉구하기란 흔치도, 쉽지도 않은 일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카피라이터 출신 영화배우의 자극적 선동 구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끝 날까지 대못질하듯 박아 둔 인사들의 요즘을 보면 그게 좌파 행동 강령이었다 싶다. 특히나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공공성 파괴에 앞장서 온 정연주 KBS 사장이 이제 와 임기 수호가 방송의 중립성 공공성 수호인 양 뛰는 모습은 ‘또박또박 악랄하게’의 전형이다.

집권 세력의 이념에 따라 주류 계층이 교체되고 주류 이념까지 달라지는 건 드물지도, 어렵지도 않다. 지난 정권 때 어렵게 지켜낸 우리나라 헌법엔 양심의 자유가 있다. 선악 시비 가치 판단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가질지는 개인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어떤 이념을 가질지도 헌법상 보장되고, 슬프지만 여기엔 비양심적일 자유도 포함된다. 이념이 다른 새 정권이 들어서면 구 정권 이념에 맞는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도리이고 상식일진대 친노 코드 사람들은 그래, 나 양심 없다. 배 째라 식이다.

친노 코드 인사 행태가 비난받은 건 능력도, 자질도 없는 사람들을 대통령과 코드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요직에 앉혀 국민 세금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KBS를 비롯한 공공기관 코드 인사들은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 세계와 거꾸로 간 ‘불능의 국정철학’을 확대 전파해 왔다.

이달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혁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들 상당수가 지난 12개월간 탈규제와 교육경쟁력 강화, 감세 조치를 통해 성장으로 갔다. 시대착오적 수구 좌파 코드에 매달린 상징적 결과가 백수 300만 명 시대의 개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 장관들의 코드 청산론은 개운치 않다. “코드가 다른 사람들이 임기가 남았다고 해서 임기 끝까지 남아 있는 건 곤란하다”는 말은 마치 “이번엔 우리 코드로 채워야 한다”는 의도로 들린다.

과거 정권이 임명했다는 이유로 요직을 물갈이해야 한다면 새 정권이 앉히는 인물 역시 또 다른 코드 인사로 취급될 우려가 있다. 능력도, 자질도 없는 사람들을 대통령과 코드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등용할 경우 폐습을 욕하면서 닮는 셈이 된다. 야권은 다신 험한 꼴 안 당하겠다고 죽기 살기로 정권 탈환을 노릴 것이고, 5년 뒤 코드 숙청과 코드 인사는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 낸 세력이 각계 요직에 남아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발목 잡힐 빌미를 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능력을 검증할 기회조차 없었고 자질은 분명 없는 사람을 코드가 같다며 요직에 올려놔선 ‘국민이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과반 의석을 줘 심판하기’ 어렵다.

공기업 민영화 그래서 필요하다

친노 인사들이 또박또박 진행해 온 대한민국의 역주행을 당장 바로잡을 방법은 난감하지만 없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에서 과거처럼구정권 사람들을 악랄하게 괴롭혀 물러나게 만들 순 없다. 친노 코드지만 능력과 자질이 입증된 인사라면 굳이 싹쓸이할 것도 없다.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을 촉구하되 공기업 민영화 등 제도적 뒷받침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KBS 1TV의 확실한 공영화와 2TV의 민영화, 세금 먹는 공공기관의 통폐합이 시급하다. ‘또박또박 악랄하게를’ 끝장내는 방법은 ‘또박또박 악랄하지 않고도’여야 한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