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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동영 측근, 열린우리당, 국정원 고위급이 김경준 기획 입국 시켜

이보규 2008. 4. 27. 20:00

정동영 측근, 열린우리당, 국정원 고위급이 김경준 기획 입국 시켜

www.usinsideworld.com 몇 건 기사가 BBK 물결 바꿔 MB 승리..
김경준 재판, 본사 기사 진실 밝혀져- 전도봉 장군의 국제 전화 호소


지난 2007년 11월 이명박후보는 어려운 1차 관문을 간신히 통과 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박근혜 후보와 피 말리는 1년여의 싸움 끝에 1.4% 승리라는 어려운 승리를 얻었다.

 

그 승리는 사실상 박근혜에게 진 싸움이나 다름 없었다. 근 2년 가까히 이명박의 인기는 박근혜 보다 10-25% 이상 앞서 있었다. 그러나 투표

뚜겅을 열었을 때 黨員과 黨內 대의원 투표에서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패배 했다. 

 

MB가 간신히 승리 한 것은 일반 시민의 투표에 의해서 1.4% 겨우 이겼다. 한나라당 당원이 아닌 시민들 투표에서 1.4% 이길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기사 때문이었다.

 

2007년 6월호 신동아 잡지에 톱기사로 장식한 ‘박근혜 X-파일-전두환 수사기록’ 기사는 그때까지 입으로 전해지던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최근에 처음으로 다룬 본격적인 기사였다.

 

신동아 8월호는 박정희 정권 당시 김재규의 중앙 정보부장이 조사한 수사기록이 또 등장

했다. 한편 월간조선 7월호에도 ‘최태민 목사 딸,사위등 서울 강남 수백억 원대 부동산

소유’ 기사가 나왔으며 때를 같이해 10여 주간지들이 박근혜 최태민 목사 기사를 보도

하는 바람에 박근혜 전 대표는 미쳐 대응도 하지 못한채 난타를 당했다.

 

그 바람에 이명박이 승리 했다. 당시 시중에서는 “죽은 김재규와 최태민이 박근혜의 발목을

잡았다”는 소문이 널리 번지었다. 또 언론계에서는 “ 신동아와 월간조선이 워싱턴에 정치

망명중인 모 언론인을 찾아가 설득하여 자료를 입수 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정보를 입수한 서울중앙지검이 워싱턴 주미 한국 대사관에 파견된 법무관을 모 언론

인과 만나도록 지시 확인 했으며 서울 중앙 검찰이 직접 국제전화로 몇차례 심문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렵게 1차 관문을 통과한 이명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BBK 사건과 이회창의 등장이었다.

노무현 정권에 의해 조종 당하고 있는 한국 언론들과 KBS, MBC, SBS -TV들은 BBK

김경준과 이명박을 연결 시켜 매일 보도해 MB의 부도덕성을 보도 했다.

 



▲ 본사가 특집으로 줄곧 보도한 BBK 관련기사

 

그런 점을 이용해 정부 여당의 이해찬, 장영달 의원과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정도는 한

방이면 날라간다” 고 큰소리 쳤다. 여당의 실세 문희상 의원은 “선거가 시작되면 재미난

일이 벌어 질것이다. 선거는 우리가 승리한다.”고 장담 했다.

 

이런때 LA의 김경준이 한국으로 들어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하면서 “나는 억울 하다. 나는

이명박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명박이 투자를 해주어 BBK를 운영 할수 있다.”는 말을

흘려 언론들이 연일 크게 보도 했다.

 

이명박은 참으로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2007년 10월 15일 -20일 사이 전도봉 전 해병

사령관으로부터 3차례나 워싱턴으로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 서로 잘 알고 존경

하는 사이였던 전도봉 장군이 갑자기 전화를 하여서

 

“우리 해병대 전우회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 하고 있는데 손 발행인께서 LA에 가셔서

김경준을 직접 만나보고 취재를 해서 바르게 보도를 하여 주십시요.

 

국내 언론은 노무현 정권과 열린 우리당에서 장악을 하니 국민들이 도무지 알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고 미국을 잘 아시는 분이 취재를 해서 바른 보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부탁 했다.

 

평소에 부탁을 잘 하지 않던 분이 3차례나 간곡 하게 부탁 하여서 할수 없어 LA로 갔다.

그리고 11월 1일자로 ”이명박 낙마 시켜주면 BBK 사건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 LA에

소문 –제2의 김대업 노리는 BBK 김경준 송환 배후에 어떤 음모가있다 “고 폭로 기사를

크게 보도 했다.
                        



▲ 전도봉 前 해병대 사령관

그리고 “LA에 정체모를 사람들 몰려와 김경준-에리카 김

모셔간다는 소리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고 보도 했다.

 

이기사가 www.usinsideworld.com 특종 기사로 보도 되자

국내의 10여개 인터넷 언론들이 옮겨 전재 했으며 하루에

7천 여명의 독자들이 클릭 수만명의 네티즌들이 블로그로

퍼날렀다.

 

그리고 11월 26일 자에 “김경준 BBK ‘이면 계약서 가짜

일지도?-김경준 가족들의 끝없는 거짓 폭로에 놀아난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라고 폭로 했다.

 

또 12월 6일 “ BBK 김경준 제발로 서울에 간 것은 여권 실세들과 D.J 측근 보장 – 김경준 아버지 김세영씨 때늦은 후회,

이명박 낙마 시킬 전략 –“이라고 보도 했다.

 

기사 속에는 “국가정보원 고위 인사들과 열린 우리당 정동영 측근들과 실세들이 김경준을 만나고 에리카 김 (김경준의 누나)을 만나고 김경준의 아버지를 만나 설득하고 포섭 했다.”고 기사화 했다.

 

이런 기사가 보도 되자 MB와 한나라당은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안상수 원내 대표가 12월 7일 본사 기사와 본사 기사를 보도한

주간지 신문을 들고 “정부 여당의 김경준 기획입국”을 폭로 하고

나서면서 정부 여당을 공격 하기 시작 했다.

 

본사가 보도한 기사 몇 건이 선거판을 한나라당 수세에서 공세로 바꾸면서 BBK 승세를

잡기 시작 했다. 또 그때쯤 정형근 의원,박계동 의원들이 전화를 했다.

 

나의 기사를 확인 하고자 했다. 진실임을 확인 시켜주었다. 김만복 국정원장 측근들이

에리카 김과 김경준의 아버지를 만나 설득 했으며 정동영의 측근 열린우리당 고문

변호사와 D.J 집안 사람들까지 LA를 다녀 갔다는 정보 자료를 미국 정부기관 LA 지부는

갖고 있었다.

 

또 LA 연방 구치소 교도관들 가운데 한국계와 중국계를 통해 확인 했다. BBK 김경준을

내세워 제2의 김대업 사건을 만들려던 노무현 정부 여당은 INSIDE the WORLD의 www.

usisideworld.com이 보도 하는 기사 때문에 공세에서 이번에는 수세로 몰리는 묘한

입장이 됐다.

 

그러니까 본사 전화와 E-mail를 통해 가진 협박과 모략 죽이겠다는 협박이 하루에 70여

통씩 도착 했다. 그들은 내가 쓴 기사가 거짓 이라고 많은 모함과 협박을 했다. 그런데

나의 기사가 진실이고 정확 했음을 증명 시켜주는 사건이 생겼다. 꼭 4개월 만에 진실은

밝혀 졌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재판장, 윤경 부장판사) 에서는 “검은 머리 한국인

때문에 BBK 사건이 발생했다”는 말을 유행시킨 BBK 사건의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

에서는 BBK 주범 ‘김경준이 정부여당의 이명박 죽이기 기획입국’에 관한 증인 신문을

하는 날이었다.

 

이날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신모씨 (50)는 애당초 김경준의 증인이 될뻔한 인물이다. 그는

지금 대전교도소에서 복역중 BBK 사건 재판의 증언 때문에 안양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이전되어 있다.

 

신씨가 BBK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출두 하게 된 것은 기구한 그의 운명 때문이다. 신씨는

지난 2005년에 한국에서 강도,상해, 폭행등 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한국

경찰은 인터폴 (국제경찰기구)를 통해 신씨의 체포를 요청했으며 검찰은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요청’을 당부 했다.

 

미 연방 수사국 (FBI)는 신씨가 LA로 잠입한 사실을 파악 하고 수사를 펼친 끝에 2006년

말 체포 하여 추방 재판 절차를 밟으며 LA 연방 구치소에 수감 시켰다. 신씨가 LA 연방

구치소에 수감되어 그 안에서 김경준을 만나게 됐다.

 

당시 김경준도 FBI에 체포 되어 한국으로 범죄인 인도 절차 재판을 하고 있었으나 김경

준이 미국 시민 (Christopher Kim) 임을 주장 미국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4년째 재판을

계속 하면서 한국 송환을 거부 하고 있었다.
                             
LA 구치소 안에서 1년 동안 김경준과 사귀게 된 신씨는 2007년 봄부터 김경준이 활기를

띄우면서 “ 나는 한국에 송환되면 불구속 상태로 호텔에서 수사를 받을 것이다. 누나

에리카 김을 통해 정동영 측근인 열린 우리당 박영선 의원과 국가정보원 하고 얘기가

되어 있다.”고 큰 소리 치기 시작 했다.“고 증언 했다.

 



▲ 김경준 어머니
신씨는 “ 어느날 김경준이 ‘나도 알고 있는 국정원 직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이명박을 낙선 시키면 무죄로 해준다’ 고 말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이면 계약서라는 것을 봤는데 철자법도 틀리고 해서 지적해 주었더니 다시 만든 것 같다.”고 증언 했다.

 

한편 신씨는 “김경준이가 나에게 먼저 귀국 하면 BBK 이면 계약서를 봤다는 이야기를 퍼트려 주고 내가 보낸 사람들에게 증언을 해주면 무료로 변호사를 대주고 돈을 주겠다 고 부탁을 하여 대전 교도소에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김경준 보다 1개월 더 먼저 송환 되었으며 대전 교도소에 있었다. 2007년 11월 정동영의 측근이며 열린우리당 변호사인 이모 변호사가 3번이나 찾아와

 

“김경준과 약속한대로 ‘이면 계약서를 봤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릴수 있도록 해주면 우리가 당신의 가석방을 도와주고 2억원을 주겠다. 각서라도 쓰겠다.”고 설득 했음을 증언 했다.

 

이로써 김경준의 기획입국은 진실로 들어 났으며 본사가 몇 차례에 걸쳐 쓴 기사가 정확 했음을 증명 했다. 결국 BBK 사건의

흐름을 내가 직접 취재하여 쓴 몇건의 특종 기사가 바꿔 났으며 이명박이 살아났고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

 

나로 하여금 LA로 가서 보도 하도록 부추긴 전도봉 장군의 국제 전화 수십통의 성화

때문에 나는 특종을 몇건 건지었고 MB는 청와대에 입성 한 셈이다.

 

ㅁ손충무-국제저널리스트.www.usinssideworld.com 편집겸 발행인.

출처 : 조 쿠먼
글쓴이 : 一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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