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상의 시간/_ 기독교이야기

하나님사랑 겨레사랑(1)

이보규 2013. 3. 1. 07:13

하나님사랑 겨레사랑(1)

2013-2-28

한국교회는 아세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교회이다. 아세아에서 처음 성공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은 아세아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한국교회는 아세아의 복음화와 평화시대를 열어 나가는 일에 책임과 사명을 지닌 교회이다. 한국교회가 오늘의 위치만큼 성장케 된 것은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다. 앞서 간 선배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 땀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첫 국회를 일컬어 제헌의회(制憲議會)라 한다. 제헌의회가 처음 열린 날이 1948년 5월 31일이다. 첫 모임의 첫 순서가 임시의장을 뽑는 순서였다.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분이 이승만 장로였다. 이승만 장로가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자 단상으로 올라 첫 번째 발언한 말이 "동지 여러분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기도를 드립시다."하고는 국회의원이면서 목사였던 이윤영 목사께 단상으로 올라와 기도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이윤영 목사께서 단상으로 올라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제헌의회 의원들은 해방 후 첫 국회의원들이었던지라 불제자도 있고 유학자도 있고 사회주의자들도 골고루 있었다. 그런데 이윤영 의원이 기도 드릴 때에 전원이 자발적으로 기립하여 기도에 동참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겠는가! 나는 국회도서관에 가서 첫 국회의 회의록에 적힌 이윤영 목사의 기도문을 옮겨 쓰며 감동하여 눈시울이 뜨거웠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첫 국회의 회의록에 목사의 기도문이 먼저 실려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스런 일인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두 가지 분명한 목표를 품고 그 목표를 실현하려 하였다. 첫째는 이 나라의 국체(國體)를 자유민주주의로 정하고 이를 실현하려 하였다. 그 시절 신생독립국가들의 지도자들은 거의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만큼은 달랐다. 하버드에서 석사를 받고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받은 당대의 최고 지성인답게 앞으로는 자유민주주의라야 함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그때 이승만 박사께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여 고집스레 이를 지키려 하였기에 우리 남한이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오늘과 같이 승리할 수 있었다.

이승만 박사께서 이루려 하였던 두 번째 목표는 대한민국을 기독교 기반 위에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교회는 이승만 대통령의 그런 뜻을 받아들여 국가경영과 민족경영에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를 못하였다. 일본의 강점하에서 온갖 핍박을 견디며 살아남는 데에 매여 독립국가를 경영할 인재들을 길러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아깝게도 기회를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