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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 공무원 심층취재>-'잘 나가는 공무원은 무엇이 다른가‘ 저자 인터뷰

이보규 2014. 7. 8. 22:13

 

 

 

등록일시 : 2013년 07월 10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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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 공무원 심층취재>-'잘 나가는 공무원은 무엇이 다른가‘ 저자 인터뷰

'잘 나가는 공무원은 무엇이 다른가‘ 저자 이보규

그가 들려주는 공무원의 세계

동서울대 교양과 이보규 외래교수

은퇴 후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삶이란 참 행복한 삶이다. 36년 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현재 전국을 돌며 행복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보규 교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서울시공무원 말단에서 한강사업본부 부이사관까지. 정년퇴직 후 그는 용인대 강의를 시작으로 현재 한달에 30회 이상 강의를 소화하며 제2의 인생을 멋지게 그려가고 있다.

공무원 현직 시절, 그는 6번의 승진을 이뤄냈다. 일에 있어 그의 열정은 따라갈자가 없을 만큼 존경받기 마땅했다는 후문이다. 가진것이 없었기에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말에서 오늘이 있기까지 지난 세월 얼마나 하루에 매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단 한번도 공무원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전국을 돌며 행복에너지를 전파하는 강의일도 너무 좋다고 한다. 그가 짓는 여유로운 미소는 인터뷰 분위기를 내내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공무원 선배로서, 그리고 인생선배로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취재 이인아

신문배달하며 주경야독…

미치도록 학교에 가고 싶었다

이보규 교수는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학교를 다니지 못할 형편이었다. 현실에 따라 고향서 농사를 지으며 지내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그를 다시금 움직였다. 쌀한말을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와, 친구가 있는 청주로 걸음을 향한 것. 그곳에서 야간에 공고를 다니고, 아침에는 신문배달일을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학업에 정진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는 군대에 갔다. 이제는 성인. 자신의 몫을 해야 할 때. 군대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지만 좀처럼 생각나는 게 없었다 “군대에서 미래를 생각해보는데 냉정하게 공고 야간 출신은 희망이 없었어요. 뭘 해야할 지 몰랐죠” 당시 공채로 입사하는 곳은 대우나 삼성같은 대기업 뿐이었다. 야간 공고를 나온 이 교수는 그 문이 높았다고 전한다.

그는 아무데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은 것에 회의적이었고, 그 생각은 그를 자살까지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군대에서의 교통사고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놨다. 군대 동기들과 차를 타고 가는데 교통사고가 났다. 그 중 천신만고로 살아남은 이보규 교수. 다른 이들은 적게는 부상이라도 입었지만 이 교수는 전혀 다친 곳 없이 멀쩡하게 있었다. 작은 부상도 있지 않았다. 이 때 그는 죽음이라는 것에 생각을 했다. 자살까지 하려던 이 교수는 큰 교통사고에도 작은 상처하나 없이 살아났다는 것에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용솟음 쳤다. 이것이 그의 인생 터닝포인트. 우리네는 태어나 계속하여 쉴 틈 없이 시간을 달린다. 살아가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학교를 가고, 결혼을 하고, 돈을 벌고- 그러다보면 내 인생이 내것인지, 네 것인지 몰라 마침내 죽음에 가까운 날이 돼서야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군대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람은 왜 우는가? 라는 에세이 집을 읽었어요. 결혼하고 아이낳고 돈벌고 아프고..열심히 살아도 인간의 마지막은 불쌍하고 비참하죠. 차 사고를 겪은 후 아프지 않을 때 죽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무원 시험 수차례 낙방…

밤샘공부, 피나는 노력으로 서울시 합격

사고 이후 그는 부모님이 아닌 영적인 존재가 자신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고 현장서 마지막 앰뷸런스 들것에 실려간 그는 ‘나는 죽어서는 안될 운명’이라고 그래서 더욱 잘 살겠노라 다짐했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가 선택한 길은 공무원이었다.

“마음을 새로이 하고 미래를 생각해봤어요. 대우나 삼성같은 기업아니고 실력으로 갈 수 있는 것은 공무원 시험밖에 없었지요.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한 후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목소리가 좋아 군대서 아나운서를 한 이 교수는 업무 상 공부할 여건이 나름 있었다. 공무원 책 열권을 사서 밤새도록 읽었다. 공무원 시험과목은 현재와 약간 다르나 영어를 포함한 5과목은 같았다. 하루 13시간씩 2년 가까이 공부하며 꿈을 더욱 키웠다. 문제집을 통달할 지경으로 읽고 수차례 회독했다. 영어는 문법위주로 공부했고, 단순암기식보다는 책 내용을 이미지화 하여 문제를 보면 책에 적혀있는 그 형상이 떠오르도록 했다.

그는 시무직, 교정직, 농촌지도직, 검찰사무직 등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모두 낙방했다. 연이어 시험에 낙방한 그는 다시 한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자꾸 떨어지니 의욕을 상실한 것.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향학열을 더욱 불태웠다. 마침내 서울시 9급에 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죽도록 공부했어요. 몇 번 떨어지고는 정말 미친듯이 공부했지요. 합격했을 때는 정말 더할나위없이 기뻤어요”

인디언의 기우제…될 때까지 하라

인디언은 비가 올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 빌고 빌고 기원하고 염원하면 비가 내린다. 공무원 시험도 마찬가지. 그는 인디언의 기우제를 인용하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도전하고 피나도록 노력했다고 전한다. IMF 이후 특히 공무원 시험 열풍이 불었지만 그 전에도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높았다. “그때도 공무원은 인기가 있었어요. 50:1정도 경쟁을 한 지 싶네요” 한 반에 한명만 붙었다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현재 120:1의 서울시 경쟁률도 과연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간대․승진시험 ‘섭렵’

9급 말단서 3급 부이사관까지…

서울시 합격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은 마포구의 한 동사무소(현 주민센터)였다. 마포구에서 가장고지대에 위치한 곳으로 S동이나 N동보다 좋은 위치가 아니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편하고 좋은 곳이 아닌 고지대에 위치한 곳에 임용되어 처음에는 많이 아쉬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좋은 동장을 만난 것에 감사했고, 좋은 환경이 아니었기에 더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었다. “당시 동장님이 훌륭한 분이셨어요. 이 모 경찰청장님 아버지셨는데 훌륭한 멘토셨지요. 무사안일할 수 없는 근무환경 탓에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그는 일을 하며 야간대를 다녔다. 그렇게 대한민국 정규교육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이후 서울시청 새마을행정과에서 10년 간 일을 했다. 처음 임용됐을 당시 닦아놓은 내공으로 그는 승진시험마저 휩쓸었다. 6번의 승진시험에 합격했고, 한강사업본부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했다. 그는 일을 좋아했고, 즐겼다. 어렸을 적부터 노력아니면 안된다는 그의 의지는 업무에서도 빛났다. 과장, 국장 등 상사들이 늘 그를 좋아했고, 인정했다. 9급 말단 공무원에서 3급 부이사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받기 힘들다던 새마을 근면장 훈장도 그의 것이 됐다. “승진은 공무원으로서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오직 실력만으로 이룰 수 있죠. 기폭제였어요. 악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지내온 시간을 더듬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온화로움이 가득했다.

뚝 무너졌을때 ‘아차’…시민의 힘 느껴

그는 관운이라는 것을 믿는다. 성동구 건설국장시절 뚝섬의 둑이 터져 한강물이 범람했단다. 당시 대피방송을 내고 경황없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사건이 커지면 사전에 관리 감독하지 못했다는 것에 국장으로서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피방송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건설업체에서 덤프트럭 15대를 보냈고 트럭은 인근 모래 자갈을 실고 덮어 범람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덤프트럭은 다 몰려온 것 같았어요. 8시부터 3시까지 쉴새없이 움직였죠. 참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그 때 도와준 시민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을 지 싶네요”

아름다운 한강…은어 서식, 나무심기 최초 추진

공무원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이보규 교수. 뚝섬의 둑이 무너져 가슴 철렁한 일도 있지만 보람된 적은 이보다 훨씬 많다. 매일이 보람된 하루지만, 한강사업본부 본부장으로 있을 시절 아름다운 한강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에 잠시 흐믓한 미소를 짓는다. 그가 본부장으로 있을 당시, 한강에 은어가 나왔다. 1급수에서만 사는 은어가 나와 공중파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또 지난 2001년 한강고수부지에 나무를 심어 쾌적한 환경을 만든 것도 이 교수가 최조로 추진한 일이다. 한강에 나무심는것은 여의도, 망원동 쪽으로 해서 지금도 쭉 이어지고 있다.

고부가가치 공무원…일반기업과 노동가치 달라

어느 직종에서 일을 하든 가치있는 삶인 것은 같다. 이 교수는 아들에 기업에 종사하는 자와 공직에 종사하는 자는 그 노동가치가 다르다고 전한다. 이 교수의 아들은 국내 대기업에 다닌다. 한영타가 다소 느린 이 교수는 이따금씩 워드자료를 신속히 처리해야할 때 상대적으로 타자가 빠른 아들에 부탁하곤 한다. 그러나 업무적으로 바쁘다는 것에 미뤄진다고 한다. 회사일도 복잡하다는 것이 아들의 이유였다. 당장 이 교수는 대기업 회사원과 공직자의 차이점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그 오너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공무원은 그것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을 합니다. 그 노동을 값으로 계산해보면 노동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나요” 그에게서 공직자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느껴졌다.

퇴직 후 강사로 변신 ‘행복기운 전파’

‘재미와 감동’…남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라!

이보규 교수는 지난 2002년 6월 말 한강사업본부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했다. 1966년부터 2002년까지. 36년 간 공직생활의 마침표를 찍은것이다. 다사다난 했지만 공무원 하길 잘했다는 이보규 교수의 얼굴은, 다시 태어나도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표정이다. 퇴직 후 그는 이듬해인 2003년 용인대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다. 애초 모 단체에서 사무총장으로 있을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대신 시간의 자유로움이 있는 강의를 택했다. 처음 용인대서 초빙교수로 제안을 받은 데 그는 망설임없이 바로 오케이를 했단다. 용인대 강의가 이른바 대박이 나고 여기저기 강의제안이 몰려들었다. 용인대에 이어 달성군아카데미서 행복창조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공공기관부터, 일반기업까지..대학생부터 주부, 직장인까지..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그는 한 달에 20~30회, 일년에 200회 정도 강의일정을 소화한다. 1년에 벌어들이는 돈만 1억이 넘는다. 이쯤하면 스타강사로서 손색이 없는 거 아닐까.

그는 강의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게 키포인트라고 귀띔한다. “지금 인터뷰에서도 내가 하려는 말이 아니라 기자님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게 필요한 거지요?(웃음)” 그가 강의로 던지는 메시지는 ‘누리는 삶에 감사하며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삶, 감사하는 마음으로의 시작은 후에 좋은 결실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것을 재미와 감동으로 엮어 전달하면 어느새 청중은 이보규 교수에게로 흡수되어 진다.

“천심을 다하는 게 중요해요. 어느 한 순간이라도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지금 저는 여기 없었을거에요. 강의전에도 5~6시간씩 공부하며 청중을 만나요. 지루하지 않도록 유머나 퍼포먼스 등을 생각해내죠.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답니다” 공무원과 강사 모두 이 교수는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자평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사실, 그에게서 또다시 느낄 수 있었다.

<책 소개>

잘나가는 공무원은 무엇이 다른가

실제 공무원이 밝히는 냉혹한 공무원의 세계

살아남고 싶다면 반드시 습득해야 할 처세의 비법을 담았다.

조선시대에도 공무원은 인기 직종이었다. 이렇듯 오랜 세월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공직을 선망했다. 요즘 공무원 시험 합격이 예전 과거 급제에 비견될 만큼 매우 어렵고도 기쁜 일이 되었다. 자녀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부모들은 어깨춤이 덩실덩실 절로 날 만큼 기쁘기 그지없다. 정년 보장이 드문 대기업 합격에 감히 비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대기업 직원들조차 높은 보수와 타인의 부러움을 뒤로 하고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으로 직종을 바꾸려 한다.

공무원 채용 시험마다 경쟁률이 수십에서 수백 대 1을 넘고 출신학교도 갈수록 명문화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고시촌인 노량진 일대에 공무원 혹은 공직 유관기관 합격의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하는 인원이 매년 적게는 7,000명에서 많게는 1만 3,000명에 이른다. 그중 합격자는 고작 1% 수준에 불과하며 나머지 99%는 몇 번을 도전해야 한다. 도전을 통해 합격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번번이 떨어져 공시낭인(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는 수험생)이 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혹자는 ‘공무원 전성시대’라고 불릴 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매달고, 공시낭인까지 배출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활력을 잃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상징인 ‘다이내믹’한 역동성과 희망이 사라진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한창 진취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할 젊은이들이 안정성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결코 지향할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국민’이라는 고객을 가진 ‘국가’라는 기업에 종사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으로 입문하고 나서 약 5년차까지는 공직 생활의 든든한 밑장을 까는 시기이다. 공적 조직에서 만나는 모든 인적 네트워킹을 위한 밑밥을 뿌리는 시기이며, 승진이라는 수확을 위해 생존의 싹을 뿌리는 시기이다. 공무원 사회에서 승진은 매우 중요하다. 개방형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종縱적 조직인 공직 사회에서의 유일한 수직 상승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평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기가 입문 5년차까지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평은 어디를 가든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된다. 공직에 들어와 한번 변두리로 밀리면 계속 외곽에서 맴돈다. 중요 보직을 거치지 않으면 주요 계장이나 과장을 맡을 가능성이 적다. 그렇다면 9급 공무원의 로망인 고위공무원으로의 진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 된다. 공무원 생활의 엔딩을 결정하는 것, 과장誇張이 아니라 바로 이 정평이 좌우한다. 그렇다면 이런 정평을 반듯하게, 세련되게,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답한다. 공무원이 되어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최적의 조언을 전하는 한편 인적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중요한 순간에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고 있음은 물론이요, 공무원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마인드와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비법까지 전수한다. 이 모두는 저자들이 실제 공직생활을 통해 쌓은 노하우이자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어 더욱 신뢰할 수 있다.

이제 이 책 ‘잘나가는 공무원은 무엇이 다른가’를 통해 무엇인가 남다른 잘나가는 공무원이 되어, 보다 큰 꿈을 꾸고 이를 현실로 가꿔보도록 하자.

출판사 행복에너지/저자 이보규, 최성열/정가 15,000원/페이지수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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