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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학비평용어 / 낭만주의

이보규 2008. 7. 16. 05:39
어떤 학자의 계산에 의하면 1400여 개의 정의가 있을 만큼 <낭만주의>는
지극히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옳다.
첫째로 낭만주의는 18세기 말에 영국과 독일에서 처음 일어나 유럽전체에 파급된 역사적 문예사조로 보는 것이다. 이에는 두가지 견해가 잇는데
하나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있었던 문예사조가 진정한 낭만주의이고 그 후에는 퇴조하여 세기말에는 타락해 버렸다는 것과 또 하나는 18세기 말에 표면화하여 시대마다 그 특징을 드러내며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낭만주의는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적인 태도의 하나로서 언제나 있어왔고 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호메로스에게도 도연명에게도 김삿갓에게도 타고르에게도 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의 하나의 기본 속성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백조파>의 낭만주의라는 말을 할때는 우리는 바로 이런 뜻의
낭만주의를 말한다.

따라서 낭만주의라는 문학적 태도를 논의할때 우리는 그것의 역사성과
사람의 기본 속성으로서의 의미를 한꺼번에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적 경향이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발견된다.하여도
의식적으로 그것이 강조되고 추구되던 시대와 장소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서양이므로 당시의 서양의 사조를 알아보는 것이 본원적 낭만주의에 대한 설명이 되겠다.
서양이라고 하여도 나라마다 발생의 시차가 상당히 있고 또 나라마다 강조점도 달랐을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낭만주의는 전통에 대한 반향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전통은 역사 전부를 말한다기보다 문인이 처한 시대가 바로 그 전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말한다.
서양의 경우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낭만주의자들은 그 전시대의 신고전주의에 반발하였다. 이처럼 전시대에 대하여 반발하는 것.
또는 적어도 전통을 그냥 따르지 않고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태도는 낭만적이라는 이름은 못 붙인다 하여도 다소 그런 경향을 띤다고 하겠다.

19세기 말의 문학에 반발한 엘리엇도 그 점에 있어서는 다소 낭만적이었다는 평을 듣는다 막연하게나마 한국 전래의 문학에 반발하고 서양식 문학을 수입한 우리의 근대 초창기 문인들도 모두 다소 낭만적이었다.

낭만주의가 반발한 재래의 전통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서양 낭만주의가 반발한 신고전주의는 개인적인 특성을 보편적인 합리성에 비추어 통제하여 조화와 균형이 잡힌 문학을 재작할 것을 요청하였다.
고전전 작품들은 바로 그러한 이념을 최고도로 구현한 절대적 모범이므로 그들의 구성원리 즉 문학적 법칙을 추출하여 그 것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고전 작품들을 모방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낭만주의자들은 고전에 대한 존경심은 신고전주의자들 못지 않았으나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추출하였다는 고전 모방의 법칙이 전적으로 인위적일 뿐만 아니라 문학 창조에 있어서 합리성에 의한 개인성의 통제가 불필요한 데 그치지 않고 극히 해롭다고 주장하였다.
낭만주의는 창작을 위한 기정 법칙과 방법에 맹종하기를 거부했고 또한 개인적 특성에 대한 합리성의 우위를 거부했다.

영국 낭만주의의 선구자 워즈워스가 신고전 시대의 소위 <시어>를 가장 큰소리로 반대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에 앞서서 이른바 희곡의 3일치의 법칙에 대한 영국 비평가들의 반발은 합리주의적 법칙이 실은 인위적임을 간과한 데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기성 사회는 합리성 이치 당연성등을 이유로 개인의 고집을 버리고 관습이나 법칙에 따르기를 요청한다
18세기의 신고전주의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합리성은 이성작용에 의하여 도달된 결론이다 그래서 그것을 이치라고도 한다. 합리성 이치에 대한 반발은 또 다른 합리성 이치에 대한 찬성일수도 있으나 서양 낭만주의의 경우에는 이성의 오랜 통제를 받아온 감정을 이성 대신에 내세웠다는 것이 특징이다.
감정은 물론 개인적 주관적이다.
합리성이 사람의 이성적 동의를 얻을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한다면 감정은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속성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감정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낭만주의자는 남과 다른 자기의 감정 취미 습성 생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귀중하게 여긴다. 신고전주의자는 보편적인 것을 관찰하여 그대로 반영하니까 자연히 문학을 <모방>으로 간주하지만 낭만주의자는 자기의 독특한 것을 나타내 보이려 하니까 자연히 자기 표현적이 된다.
즉 낭만주의의 문학관은 표현론이 된다.주체성의 표현 개성의 표현 독창성등은 현재의 우리도 문학적 덕성으로 간주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그 점에 있어서는 낭만적임에 틀림없다.


낭만주의자는 전통에 반발할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멈춤 굳어버림에 대해서도 반발한다. <거센 감정이 저절로 넘쳐 나오는 것>이 시라고 위즈워스는 말했지만 그처럼 넘쳐 나옴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감정이 끊임없이 용솟음쳐야 한다.
고전주의자들은 문학을 건축물처럼 고체적인 것에 비유한 반면 낭만주의자들은 문학을 매양 물 바람 불길 같은 유동적인 사물에 비유하였다.
이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려면 문인은 이루지 못할 어떤 열망을 가져야 한다. 그들에게 있어 완성은 정체를 의미하므로 두려운 것이고 이룰수 없는 완성에의 열망이 바람직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낭만주의자는 이상주의자가 안될수 없고 대개의 이상주의자가 그렇듯이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실현되지 못할 이상을 가졌으므로 절망과 비판은 쉴사이 없이 따른다.
세기말 낭만주의자들의 냉소와 퇴폐가 이를 말해준다.

그들은 문학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는 만큼 문학의 형식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형식을 각 작품마다 스스로 필연적으로 취하에 되는 형태로 보는 이른바 <유시적 형식론>이 대두했다.
또한 미완성 작품도 되다가 만 못난 작품으로 보기보다는 문학 정신이 표현과정에 있다가 스스로의 무슨 이유로 해서 다시 잠적했음을 뜻한다고 보았다.
이 당시에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한 서정시가 자연히 모든 장르를 압도하였고 그 형식은 자유시 산문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모든 작품은 각기 그 자체의 형식을 마련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혹 장시 서사시를 쓰기도 하지만 모든 객관적인 주제와 소재를 취급한 것이 아니라 <전주곡>의 워즈워스처럼 자기의 시적 생애를 취급하든지
자기 자신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장편의 서정시였다.
낭만주의 문학의 궁극적 주인공은 <나>인것이다.

낭만주의의 초월주의 원시주의의 일부등 역사적 사조는 많이 수정되다가
버림 받았지만 그 반항적 개인적 서정적 경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출처 : 집, 이은환
글쓴이 : 이은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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