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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념일, 발렌타인데이,어린이날,-상식

이보규 2008. 8. 13. 06:56


어떤 기념일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


2월 14일을 흔히 ‘발렌타인데이’라고 한다. 정서법으로는 ‘밸런타인데이’라고 적는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고 하여 젊은이들은 대단한 기념일로 간주하고 있다. 본래 그리스도교의 성인 발렌티누스의 축일[St. Valentine's Day]로, 발렌티누스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가 원정하는 병사의 결혼을 금지한 정책에 반대하였다가 270년 2월 14일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성인이 순교한 사연을 생각해 보면, 젊은 남녀가 온갖 장애를 딛고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결의를 이 날 표현한다는 것이 숭고하게 여겨진다.

 

이 기념일이 우리나라에 정착한 전사(前史)를 알 수 있을까 해서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1999년 초판)을 펼쳐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성 발렌티누스 사제가 순교한 2월 14일에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날 여성이 먼저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해도 좋다는 속설이 퍼져 있다.”


그렇다면 서양에는 없는 풍습이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다는 말인가?


일본의 『광사원(廣辭苑)』(1983년 3판)을 보면, 로마의 사제 발렌티누스가 순교한 해를 ‘269년 무렵’이라고 하였고, 2월 14일은 제일(祭日)이라고만 밝혔다. 그러고 나서 “이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한다”고 두루뭉수리로 설명을 해두었다. 


인터넷 온라인 백과사전을 검색하였더니, 이 기념일은 서양의 중세에 정착되었고, 19세기에 축하 카드를 교환하는 문화를 낳았다고 한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중국, 일본에서 이 날을 상당히 기념하고 있고, 초콜릿을 교환하는 풍습은 일본에서 발달하였다고도 했다.


그런데 최근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밸런타인데이가 정착한 것은 일본 황실의 결혼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관한 사항을 인터넷 상에서 검색하려고 하였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아마도 일본 황실의 결혼일이 이 날과 겹치자, 그것을 기화로 데파트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기념일이 정착한 유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2.


제나라의 공자 맹상군 전문(田文)은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태어났다. 그 날 태어난 아이는 문설주까지 닿을 정도로 키가 컸을 때 아버지를 죽일 수 있다고 해서 그 아버지 전영(田 )은 아이의 어머니인 후궁에게 그 아이를 기르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몰래 그를 키웠다, 어느 날 아이가 살아 있는 것을 알게 된 전영은 화를 내었다. 그러자 어린 맹상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서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문에서 받는 것입니까? … 하늘에서 받는 것이라면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문에서 받는 것이라면 제가 문을 훨씬 더 높게 만들고 말겠습니다.”


이런 고사가 있는 것은 과거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음력 5월 5일이면 양기가 가장 세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양력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는데, 그것은 음력 5월 5일을 그대로 양력으로 전환한데서 기원하리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일본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은 패전 이후의 일이다. 이에 비해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정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원래는 5월 1일로 하려고 하였으나 메이데이와 겹치므로 5월 5일로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우리나라와 일본이 함께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삼고 있다.



3.


『여유당전집』과 같은 선인들이 남긴 문집을 읽다보면 전근대시기의 기념일들이 어떤 날들이었는지 대개 짐작할 수 있다. 본인의 생일인 초도일(初度日)과 양친의 생탄일이 가장 중요한 기념일이었고, 기타 가족과 가까운 친척의 생일이 또한 기념일이었다. 가족과 친족의 제삿날도 길례를 지내는 기념일이었다. 더 나아가 국상과 심상을 당한 뒤 탈상 이후의 그날들은 모두 기념일이었다. 그밖에 각별한 행사가 있었거나 마음에 맞는 이들과 기쁨을 나누었던 날들, 슬픔을 함께 했던 날들도 모두 기념일이었다. 다만, 어쩐 일인지 혼례의 날이나 부인의 초도일을 기념한 시문은 선인들의 문집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대의 관념에서 보면 기이한 일이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여러 선인들의 일 년 삶의 싸이클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살펴본다면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선인들의 문집을 보면 기념일과 관련하여 한 가지 분명한 관념을 얻을 수 있다. 곧, 우리 선인들은 인간의 삶을 경건하게 바라보고 고인을 기억하는 우아한 날을 주로 기념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상술에 휘둘린 기념일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아, 정치적 이유에서 배정되었다가는 슬그머니 사라지는 기념일을 구차하게 기념하는 일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