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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한의학자 류근철, KAIST에 578억원 기부

이보규 2008. 8. 13. 23:12

원로 한의학자 류근철, KAIST에 578억원 기부

 

13일 카이스트에 578억원 상당의 사재를 기부키로 한 원로 한의학자류근철 박사. 연합
국내 원로 한의학자가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78억 원 상당의 재산을 내놨다.

KAIST는 류근철(82·모스크바국립공대 종신교수·한의학 박사) 전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부원장이 578억 원 상당의 부동산과 소장품 등을 기탁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기탁금 액수는 개인이 대학에 낸 기부금 가운데 사상 최고액이다.

서울시내 빌딩과 아파트, 경북 영양의 임야, 골동품 등으로 이뤄진 기탁 재산의 기증식은 14일 오전 11시 KAIST 교내 대강당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류 박사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KAIST를 몇 번 방문해 만난 서남표 총장의 원대한 비전과 학교 발전에 대한 열정, 학생과 교수의 학습 및 연구 열기에 매료됐다"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고 KAIST가 그 역할을 선도할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년 동안 월급을 꼬박꼬박 예금하고 한의원을 운영해 돈을 벌어 빌딩을 샀는데 빌딩의 수요자가 많아 몇 번 옮기는 과정에서 재산이 불어났다"며 "그 순간 '이 돈은 내 돈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10여년 전부터 보람있는 곳에 재산을 환원할 방안을 고심해왔다"고 기부 배경을 밝혔다.

현재 원자력응용의학진흥협회 명예회장, 러시아아카데미 의공학회 정회원, 원자력의학환경보도포럼 명예총재 등으로 활동 중인 류 박사는 1926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1976년 경희대에서 대한민국 1호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희대 의대 부교수, 한국한의사협회 초대회장 등을 지냈고 동서의학중풍센터를 통해 뇌졸중 환자 치료에 전념해 왔다. 의학기구 발명에도 열정을 쏟아 '전자침술기'와 '추간판 및 관절 교정용 운동기구' 등을 개발해 국내외 특허를 취득했다.

1996년 4월 모스크바국립공대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 종신교수로 이 대학을 오가며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고향인 충남 천안의 천동초등학교에 1억5000만 원을 들여 학생과 주민이 이용하도록 다목적체육관과 게이트볼 및 골프 연습장 등을 기증했고 경남 산청에서는 무료 진료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류 박사는 앞으로 기부와 후원을 위한 'KAIST 사랑 세계화 추진위원회'(후원회)를 만들어 KAIST에서 노벨상이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의학에 대한 전문성을 살려 KAIST 우주인건강관리연구센터와 인재건강센터의 운영도 맡기로 했다.

그는 "죽기 직전에 기부를 하고 감사장이나 하나 받는 식의 기부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며 "건강했을 때 기부한 뒤 기부자와 기부를 받은 기관이 협력해 그 기관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류 박사는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노망든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아 기탁증서에 정신감정서를 첨부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기부를 둘러싸고 가족 간에 합의를 보는데 어려웠지만 자식들이야 교육시켜 시집 장가 보냈으면 그걸로 된 것 아니냐"고 털어놨다.

KAIST는 류 박사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기로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내에 건립예정인 KAIST 세종캠퍼스를 'KAIST 류근철 캠퍼스'로 명명하고 동상과 기념관 등을 건립하며 KAIST 발전재단 명예 이사장으로도 추대할 방침이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개혁하는 만큼 국민들이 사랑해 준다."

KAIST 장순흥 교학부총장은 13일 "류 박사가 일찍부터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학기술 발전에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해오다 언론을 통해 테뉴어(Tenure·정년보장) 심사제도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접하고 공감해 KAIST에 기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기부는 KAIST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론적 지지를 넘어 실제적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KAIST에는 주로 외국인이나 해외교포들이 거액을 기부해왔다.

최근 KAIST에 거액의 기부가 잇따르는 배경에는 서남표 총장의 개혁, 솔선수범 기부가 큰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으로 학교 측은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1000만 달러(당시 약 94억 원)를 쾌척한 재미 사업가인 박병준(74·뷰로 베리타스 특별자문위원) 씨와 11월 250만 달러(당시 약 22억6700만 원)를 내놓은 닐 파팔라도(66) 미국 메디텍 회장은 이구동성으로 "서 총장과는 오랜 지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KAIST를 세계 최고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개혁과 열정에 공감했다"고 기부의 배경을 밝혔다.

서 총장은 2006년 7월 취임한 이후 1조 원의 발전기금을 모으겠다고 약속한 뒤 남에게 손을 벌리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기부를 실천했다.

포니정 혁신상 상금 1억 원을 포함해 수십 차례의 외부 강연료와 자신의 개인 돈을 KAIST와 미국 내 기부금 유치를 위해 만든 KAIST 미국 재단(KUF)에 기탁했다. 그의 기부 총액은 2억 원에 이른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예인 한은정 씨가 1억 원, 김장훈 씨가 1억 원의 발전기금을 냈다. 서 총장 이후 거액 기부는 700억 원 가량으로 국내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

장 부총장은 "국내 대기업들도 지식 경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의 첨병인 대학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