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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가슴으로 듣던 날

이보규 2009. 1. 4. 16:45

 

                   음악을 가슴으로 듣던 날

 

                                                                                                                       청암 이보규

나는 시골에서 음악이 좋은 걸 모르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음악 시간은 있으나 마나였다.

 

노래를 따라서 배운 것은 “무궁화 우리나라 꽃” “내가 살던 고향” 정도이고

높은음자리표와 낮은 음자리표 박자 등 시험 보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중학교에서도 음악 시간은 음악책 안 가지고 가면 음악선생님에게 꾸중 듣는 것 때문에

음악책 빌리려고 다른 반 친구 찾아다녔던 생각이 난다. 그래서 음악 시간이 있는 날은 기분 좋은 날이 아니다.

음악 시간에는 노래 잘하는 친구 부르는 노래 몇 곡 듣다 보면 종 치고 그러면 모두 잊어버린다.

“켄터키 옛집” “스와니 강” 정도가 기억에 날뿐이다. 음악은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공업학교 야간부에 다녔기 때문에 음악 시간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학교에서도 대중가요에만 관심이 있어 새로 나온 유행가를 친구가 부를 때 따라 부르면서 배웠다.

“맘보 나폴리 맘보”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유정 천리” "하이킹 노래" 등이

당시에 주로 유행하여 즐겨 부르던 노래지만 잘 부르지 못해 혼자만 흥얼거리고 남들 앞에서 부른 기억이 없다.

 

악기는 밴드부만 가지는 것이고 그것에 취미가 없으니까 악기의 이름도 거의 모른다.

그래도 음악을 들으면 흥이 나고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은 농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을에 농악은 언제나 악기의 주인이 있었고 만져볼 수도 없었다.

상쇠는 언제나 정해져 있고 북과 장고는 언제나 정해진 사람이 잡았다.

그래서 마을 공동소유의 농악을 흉내 내려고 잡아보면 어른들이 만지지 못하게 야단이다.

 

그래도 나는 하모니카를 좋아해서 돈을 모아서 사서 불고 군부대 생활에서는 기타를 사서 즐겼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못하고 그냥 취미 삼아 흉내를 내는 정도일 뿐이라 혼자만 즐기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국악이 때로는 가슴에 전해지고 서편제 영화를 보고 감동을 하기도 하고

신영희 명창 국악인과 교류하며 판소리와 서도 민요와 육자배기 등을 접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다만, 내가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실을  생각도 했지만, 그때뿐 이었다.

국악 공연장에 가서 여러 번 가야금이나 해금 공연을 보면서 좋아한 적도 있지만

비켜서면 또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져 버려 그것이 마음속에 남아서 생활 속에 공존하지 못했다.

 

동호인들이 유명 국악인을 초청하여 강의도 듣고 공연을 볼 때는 좋은듯하다가도  

연속성이 없이 언제나 그때뿐이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음악회에 가서 바이올린 연주회나 조수미 열창을 여러 번 들으면서 참 잘 부른다는

생각일 뿐 세계적인 인물임에도 그와 같은 세계적이다 하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내가 공직에서 기관의 장으로 근무할 때  매달 정례 조례 시에 우선 30분을 문화행사로 채워

직원의 정서생활을 유도할 목적으로 음악공연을 주선했지만, 그것도 음악을 위한 행사일뿐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은 음악적인 기초가 없으니 비교할 수도 비교할 곳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살았지만, 집에 피아노도 없었고 흔한 전축 하나 없이 살았다.

 

늦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전축을 구색으로 사서 가지고는 있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들었지만 나는 그 전축을 들어 본적이 별로 없이

어느 날 고물이 되어 쓰레기처럼 버리고 말았다.

 

집에서 음악을 감상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등 거장의 음악 세계를 모른다.

 

유명한 교향악단의 연주를 가끔은 들어도 좋고 나쁨을 모르고 잘하는지 못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앉아서 아는 체 손뼉을 치면서도 지루하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S 구청 국장 때는 한양대학교 고 장일남 교수가 지휘하는 서울 오케스트라 공연을

매달 정기적으로 감상했어도 그 공연이 그저 공연일 뿐이었다.

 

번갈아가며 유명한 소프라노, 바리톤, 테너 가수가 노래하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해도

별로 감동이 없고 그 맛을 모르는 체 지루하게 앉아 있었다.

 

차라리 대중가요 무대가 더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런 나에게 참으로 이변이 생겼다.

지난 2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문화관광체육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 개최하는 2009년 신년 음악회는 달랐다.

 

똑같은 장소에서 출연 가수와 연주자만 다를 뿐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초청공연을

감상했는데 코리아 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은 각 악기의 소리가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흥이 나고 앉아서 감상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동구라파 외국으로 입양한 한국소녀 소녀 라비니아 마이어가 귀국하여

헨델의 하프 협주곡을 연주하는데 그 음악이 귀에 들려 오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이 첼로가 북이 트럼펫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하나의 음악으로

지휘자의 지휘봉으로 모아서 내 가슴으로 들려왔다.

 

소프라노 신영옥의 기교가 보였다. 민요 경복궁 타령이 현대 악기와 장고가 하나가 되어

콘서트홀을 가득 채워 가고 있었다.

 

특히 차이콥스키 “1812” 서곡의 공연은 120여 명의 각 파트별 악기 소리가 들리고

지루하지 않았다. 지휘자의 몸으로 지휘하고 연주하는 교향악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끝나는 시간이 아쉬웠다. 진심으로 박수를 오래도록 치면서 앙코르를 청했다.

 

음악의 귀가 열렸나 아니면 나이 든 탓에 감성의 새 창이 하나 열렸는가?

왜 음악이 귀로 들리지 않고 가슴으로 다가오고 이제야 오케스트라의 진수를 듣고 좋아지게 하는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