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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돌핀과 감동 담은 소통 메시지

이보규 2011. 2. 23. 07:38

엔돌핀과 감동 담은 소통 메시지

소통과 자긍심 기획2... '광고천재' 이제석 인터뷰

이효순 | 2011.02.22

“어 저게 뭐야?” 얼마 전부터 서울 곳곳 가로판매대에 나붙은 커다란 표창장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환경미화원 여러분, 당신들은 서울을 빛낸 진정한 영웅입니다”라고 써진 커다란 표창장. 이는 환경미화원 뿐 아니라 건설노동자, 대중교통기사, 식당아주머니, 소방공무원,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한 여섯 종류다.

서울시 행정만 알리는 수단이던 가판대가 뭔가 훈훈한 봄기운에 휩싸인 듯했다. 사회 낮은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사는 소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서울을 빛낸 위대한 서울시민들’이라는 공익 캠페인. 금테 두른 커다란 표창장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 발상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어넘기기도 한다. 또 누구는 “뭐야? 저 사람들을 동정하는 거야”라고 불편해 한다. 물론 해석은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다.

이 표창장의 시작은 어느 날 새벽이다. 밤새 술을 마신 한 청년은 귀가 하던 길에 저쪽에서 부스럭거리며 청소를 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를 만났다.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려는 새벽에 집에 들어가 보셨죠? 밤새 흥청망청 술 마시고 들어가는데 그 시간에 벌써 일어나 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아저씨를 본 느낌이 어떠셨어요? 저는 너무 죄송해서 눈물이 나던데요.”

이 청년은 광고천재라 불리는 아트디렉터 이제석 씨(29)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서울도 없는데, 뭔가 보상해드리고 싶었고 자긍심을 갖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고 했다. 황당무계하게도 원래는 커다란 동상을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트로피로 바뀌었고 이런 저런 여건을 감안해 트로피가 새겨진 표창장으로 정해진 것이다.

광고는 사기다? 광고는 진심이다!
미국 뉴욕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제석 씨와 1시간 정도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현재 예일대 디자인 아트스쿨에 다니고 있다. 뉴욕에 앉아서 전화를 받고 있는 그이지만 수화기 넘어 전해져 오는 대구 사나이 억양이 구수하다. 그는 이미지 한 컷으로 시원하게 일갈하는 자신의 광고처럼 통쾌하게 말한다.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사람은 지구 끝까지 따라가 따지겠다며 웃는 오기의 사나이. “외세 침략을 받으며 저항정신을 키운 한민족의 후예로 그 정도의 오기는 있어야죠?”라고 천연덕스럽게 눙치지만 그 말속에는 뼈가 있다.

-표창장 광고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까?
“한 마디로 엔돌핀입니다. 팍팍하게 사는 중에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어요. 현대인들은 영리합니다. 너무 장삿속이 보이거나 정치적이면 외면 받습니다. 조금은 순진하게 어떻게 보면 어리바리하게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표창장 광고는 제가 직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던 공익광고예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구체화 하려던 차에 서울시로부터 시민을 위한 캠페인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죠. 그래서 기회다 싶어 제 아이디어를 냈고 그것이 이렇게 실행된 것입니다.”

-재능기부에 적극적인데, 계기가 있나요?
“저는 품앗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이웃집 김장 담그는데 도와주는 것도 재능기부라고 생각합니다. 유형의 물건이나 돈은 너무 적게 주면 주고도 욕먹을 것 같아 꺼려집니다. 하지만 재능은 그 가치가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부담없이 기부할 수 있어 좋습니다. 사실 저는 작업 자체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없는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합니다. 놀면서 기부까지 하니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 씨는 지난해 서울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 후 여러 가지 재능기부를 했다. 보수 작업을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이순신 장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엔 그의 작품이 놓였다. ‘탈의중’이라고 써진 문짝 위로 이순신 장군이 벗어놓은 갑옷이 걸려있는 설치물이다. 그는 재기발랄함으로 광화문 한복판에 웃음 코드를 심어주었다.

그는 그림밖에 몰랐다. 그림이 좋아서 고향 대구의 계명대학교 시각 디자인과에 갔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수석졸업했다. 하지만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그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곳이 없었다. 스펙 위주로 사람을 뽑는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동네 간판장이로 나섰다. 고민 고민해서 간판을 만들면 30만 원. 20대 혈기 왕성한 청년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달랑 500달러 들고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인생 역전’, ‘소시민의 통쾌한 연적극’은 바로 이때 쓰는 말이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에 편입한 그는 입학 1년 만에 윈쇼광고제 등 세계 3대 광고제를 모두 휩쓴다. 이제석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길다란 총구를 겨누는 병사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동그란 전봇대에 붙이니 그 총구가 바로 총을 겨누던 병사의 뒤통수를 향한다는 설정의 반전 포스터. 통쾌한 명작이다. 카피도 정말 후련하다. ‘뿌린대로 거두리라.’ 당연히 뉴욕의 내로라하는 광고회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미국서 가장 큰 광고회사인 JWT를 비롯해 메이저급 회사에서 일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광고를 만들겠다며 탄탄한 철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이제석광고연구소’를 차렸다. 이곳의 홈페이지(www.jeski.org)에는 회사의 경영원칙을 명시해 놨다. ‘광고주의 인지도와 예산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우리의 철학과 가치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1년에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하기보다 몇 년에 걸쳐 단 하나의 명작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의 유명세를 알아보고 돈다발을 싸들고 오는 클라이언트도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문전박대한다.

-만드는 광고 중 공익광고와 상업광고의 비중은요?

“7대 3정도 됩니다.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로워지고 나이가 들면 상업광고는 만들지 않으려고요. 이런 얘기하면 일하는데 도움 안 되는데...(웃음) 저는 지금도 돈 좀 있다고 유세 떠는 경영자와는 일 안합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몇 번 낭패를 봤거든요. 경영원칙도 그래서 만든 것입니다."

-돈에는 별로 관심 없습니까?
“저 돈 좋아합니다. 돈 없이 어떻게 삽니까? 하지만 돈 없어 굶을 지경 아니고, 또 돈만 좇는다고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지요. 무엇보다 제가 돈으로 세계 1등 하는 건 포기했지만 제 작품으로 세계 1등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통장 스코어 올리는 것보다 저에겐 더 값진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광고로 세계 랭킹 1위가 되나요?
“세계적으로 인정해주는 상이 몇 개 있긴 합니다. 그런데서 상 받는 것도 인정해 줄 순 있지만 그것보다는 언니, 동생, 아줌마, 아기 모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그게 1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라크의 아이가 제 광고 보면서 자기도 광고 만들고 싶다고 하면 그게 1등 아니겠습니까? 크리에이티브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마인드가 기본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고 해서 자기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건 시각공해입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공감해야지요.”

내 인생의 판은 내가 짠다
-일은 왜 합니까? 천재들은 일할 때 어떤 느낌입니까?
“저는 희열을 느껴야 일하고 살이 떨려야 일을 합니다. 하지만 천재요? 제가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든 것 중 천재성 있는 작품과 바보 같은 아이디어의 비중을 따져보면 그런 말 못 하실 걸요.(웃음)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 저만의 철학을 가지려고 합니다. 광고에는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는 건 제 철칙입니다. 그래야 떳떳하게 일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정말 애국자가 됩니까?
“‘남의 절정’을 느껴보세요. 애국자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는게 너무 괴로워서 손목을 긋고 있어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서양에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나가다 아이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으면 아직은 호통 치는 어른이 있는 우리나라가 좋습니다. 저도 물론 한국 내에서 다툼도 있었죠. 하지만 국적이 다른 사람과의 다퉈보면 ‘우리’란 말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저는 밖에 나가 있으면서 인정이 있는 우리 문화의 훌륭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안 좋은 추억'이 아직 생생할텐데요?
“물론입니다. 저를 알아봐주지 않아 원망했던 적 있죠.(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안 되면 그대로 찌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통통 튀어 올라야 합니다. 실패가 저의 원동력이 된 것이죠.”

-공익광고계의 ‘히틀러’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순신 장군 ‘탈의중’ 가림막을 보며 서울시가 유머 있게 소통을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제가 만든 작품으로 대중과 즐겁게 소통하는데 힘이 되고 싶습니다. 광고는 이미지 한 컷으로도 강한 소통이 될 수 있거든요. 크진 않지만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사회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적십자, 월드비전, 유엔의 NGO와 일한다. 그의 머릿속에 반전, 기아, 환경 등에 대한 주제가 가득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공익광고의 대상자 중에는 '불우이웃'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정신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그 불편과 동떨어진 꿈과 환상과 희망을 갖게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에게 워커홀릭이냐고 물으니 “일도 하지만 하루 8시간 이상 자면서 피둥 피둥 잘 논다. 숨 넘어가지 직전까지 일할 각오를 하기 때문에 몸 관리는 잘 한다”는 그이 웃음소리를 들으며 솔직하고 쿨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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