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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주역이 아니다.

이보규 2011. 5. 23. 16:08

                             

                              이제 나는 주역이 아니다.

                                                                                               청암 이보규

 

오늘도 이아침이 어두운 밤을 밀어내고 밝게 열렸다.

가장 좋은 계절에 따사로운 햇볕이 10층 아파트 창가에 다가와서 나를 밖으로 유혹한다.

집에서는 할 일이 있어 나가지 못하고 막상 나가서 할 일이 없으니

혼자 서재에 앉아 우울한 기분이 갑자기 울적해 지고 눈물이 핑 돈다.

 

오늘 사실은 며칠 전에 동대문에서 J 선생과 점심 약속이 되어 있었다. 

어제 전화 확인을 했더니 그제야 부득이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약속 때문에 오늘 다른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방에 있으려니 마치 갈 곳 없는 사람이 되어 세상이 텅 빈 느낌이다.

몇 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다 약속이 있다고 한다.

나이 들어 세상에서 퇴직하고 소위 파워가 적어지니까 약속을 쉽게 깨어 버린다.

내가 공직에 있을 때는 전화하면 다른 약속 취소하고라도 달려 왔을 처지이고 또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내 약속을 하고도 일방적으로 저버린다. 세상인심이 그런 것을 탓할 일도 아니다.

 

이 시간 특별히 일 없이 나가서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그렇다.

또 혼자 동네 안면 있는 식당에 매식하는 모습도 생각하면 부끄럽다.

조용히 가스레인지에 냄비 올려 놀고 물 부어 계란 넣고 라면 끓여 먹는 것이 편하겠다.

집에서도 나의 존재가치가 차츰 차츰 하향 곡선이다.

물론 퇴직하고 집에 앉아 세끼를 챙겨 먹어 아내에게 짐이 되는 “삼식(?)이 놈” 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아내에게 언제나 내 식사 걱정하지 말고 자유롭게 활동하라고 말한 것은 이미 오래전에 일이다.

내가 집에 있어도 아내가 밖으로 나가는 시간과 빈도가 나날이 늘어난다.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할 일이 참으로 많아지는 것이 요즈음 나이든 여자들의 생활이다.

일 없이 집에 있는 것 보다 나가는 일이 더 재미있고 중요하니까 나가는 것이다.

 

나도 집에 있어도 혼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항상 서재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식사나 TV 보는 시간 아니면 마주 앉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늘 강의 일정에 쫒기는 입장이니 몰랐는데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는 고독을 느낀다.

이제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오늘뿐이 아니라 차츰 더 늘어날 것은 불문가지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가정에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중심 거목의 존재가 아니다.

한쪽에 서있는 보잘 것 없는 초라한 나무로 밀려 난 기분입니다.

 

가족의 눈에 항상 모자라고 부족한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한 것인가.

이와 같은 자격지심이 들 때가 가끔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모두가 내 탓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내가 책임 질 일이다. 이렇게 대접 받으리라는 생각을 어리석게도 못했다. 

남자라는 존재 가치는 생리적으로나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한계가 있다.

내 생각과 가치관과 행동은 이제 모두 비판의 대상이고 믿어 주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내 마음대로 한말이 상대의 기준의 잣대로 귀에 거슬리면 이미 옛날이 아니다.

 

할 말 있어도 참아야 하고 항상 눈치를 살펴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내가 편하다.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고 참아주고 인내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가려고 생각은 늘 갖고 있다. 

그러나 변명 같지만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일도 이해해 주고 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너그럽게 흡수하여 잘 참아주지 않는다.

몸이 아프다고 토라져서 외면하고 있으면 그 시간 이후는 가정이 행복이 아니다.

긴장의 연속이고 어느덧 TV 연속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장의 무능력과 무기력의 주인공이다.

돌이켜 보면 지남 날에 지나치게 군림하고 살지 않았나 하고 반성도 해 본다.

 

뿐만 아니다. 아들들도 결혼하여 자기의 직장과 가정을 꾸려가니까 부모와 공통분모가 적어 졌다.

서로 만나기도 쉽지 않고 항상 관심의 밖에 있는 느낌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아들 둘이 모두 새로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나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이 없었다.

물론 내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처지지만  늘 저희들이 결정하고 난 후에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다.

사전에 나와 상의한 적이 없다. 나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 부모님과 상의 하지 않고 늘 집을 사서 이사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나는 부모로서 존재가치와 실체의 현 주소 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겠다.

 

온 가족이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라도 하려면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조율이 무척 어렵다,

날자 정하는 주도권은 언제나 자식들이 우선이다. 회사의 일정이 있고 자기들의 생활 속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나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부닥쳐오는 어려움이 있어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표현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내면세계는 표현과 다르게 갈등을 이르키기도 한다.

평소 아들이 보직을 바꾸거나 직장을 옮겨도 나는 늘 지난 다음에 결과만 듣는게 고작이다. 

아들 입장에 보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그래도 서운하다.

 

또한 손자의 재롱이 늘 보고 싶어도 쉬는 날이 아니면 손자가 외가에 있어 볼 수가 없다.

쉬는 날도  예약하지 않으면 만날 수 가 없다.

두 내외가 직장 나가고 평시에는 손자가 외가에 가서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도 그런 것이 자기들도 쉬는 날 아들과 단란한 시간을 즐겨야 한다.

물론 무례하게 눈치 보지 않고 밀고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40이 넘은 자식에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손자집에 갈 때는 잠자는 시간을 피해서 이제 와도 좋다는 연락을 받아야 한다.

만날 때 마다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해서 카페에 올려놓고 사이버 공간에서 손자와 만나는 것이 일상이다. 

카페 손자 방에 들어가 손자와 눈 맞추고 미소 짓고 손자와 대화하며 정을 나누고 지난다.

이제 가정이나 어디에 가더 이미 주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처신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언제나 비켜주고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조용하게 지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금까지 지녀온 위상을 지키고 집안에서 거추장스러운 존재를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살아온 시간은 돌아보면 잠시 순간인데 더구나 앞으로 살아 있을 날도 머지않았다.

지난날이 그립고 아쉬움이다. 아무에게나 당당하고 큰소리 치고 내 뜻대로 밀고 나갔던 일이 돌이켜 보면 부끄럽다.

이제는 스스로 달라 져야 한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나에게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보람 있게 채울 수 있을까.

정말 주어진 조건에서 열심히 살아 왔지만 이룩한 일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지금 우울한 내 모습이 무척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달리는 자전거는 페달을 발에서 떼면 넘어지고 만다. 힘이 아직 남아 있는 한 넘어지지 않도록 달려야 한다.

체력이 모자라도 정신으로 극복하고 정신이 약해지면 오기로 버텨야 한다.

고령사회를 진입하는 우리 세대는 결코 좌절이란 사전에만 존재한다고 믿고 다시 한 번 주먹을 다시 쥐어야 하겠다.

8.15와 6.25와 4.19와 5.16과 IMF를 견디어낸 역전의 용사에겐 오직 인내와 끈기가 저력이다.

혼자 서재에서 창밖에 햇빛과 하늘을 바라보며 스쳐가는 생각을 조용히 정리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