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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채의 덫]‘살인 이자’ 2억 뜯기고… 7년간 매일 협박에 부모-동생 집까지 풍비박산 됐는데…

이보규 2012. 5. 24. 21:12

[불법 사채의 덫]‘살인 이자’ 2억 뜯기고…

7년간 매일 협박에 부모-동생 집까지 풍비박산 됐는데…

 

“벌금 300만원”… 법정의 ‘샤일록’은 웃었다
불법 사채업자 94%가 벌금-집유 등 솜방망이 처벌
피해 고통보다 액수만 따져 판결… 서민 두번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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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58·여)는 유학 중인 아들에게 보낼 돈이 없어 근심하다 2004년 불법 사채업자에게서 200만 원을 일수로 빌렸다. 김 씨는 유학자금이 또 부족해지자 다른 사채업자에게서 일수를 추가로 썼다. 늘어난 일수 이자를 낼 돈을 구하려고 또 다른 일수를 써서 ‘돌려 막기’까지 했다. 김 씨는 7년여 동안 사채업자 6명에게 원금 1억 원을 빌리고 3억 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했다.

그는 많게는 하루 6개 이상의 일수를 찍으며 매일 20만 원에 이르는 이자를 내려고 오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끼니를 거르며 일했다. 이자를 못 내는 날이면 사채업자들은 오후 11시부터 ‘당장 돈 내세요’라는 똑같은 내용의 문자를 시간마다 보내며 괴롭혔다. 김 씨는 “하루 16시간씩 미친 사람처럼 일해 이자를 겨우 틀어막다시피 했는데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며 “매일 찾아오는 일수업자들에게 시달리고 남편과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마음을 졸이다가 내가 자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씨는 지난해 4월 사채업자 6명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고 나서야 ‘일수의 덫’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감은 잠시였다. 법원은 김 씨가 죽음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사채업자들에게 50만∼300만 원의 벌금형만 선고했다. 이들은 다시 김 씨 가게 주변 상인들을 상대로 활발하게 불법 사채업을 하고 있다. 김 씨는 “내가 받은 고통을 고려하지 않고 내린 가벼운 처벌이다”라며 “이웃들이 또 고통받는 걸 지켜보려니 내가 다시 빚 독촉을 받는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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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채업자들 법정 나서자마자 또 악질영업 ▼

불법 사채업자는 법정이자율인 연 39%를 초과해 100%를 웃도는 초고금리로 서민에게 ‘사채 올가미’를 씌우고도 이처럼 벌금이나 집행유예처럼 ‘솜방망이’를 맞는 데 그친다. 이 때문에 사채업자들은 재판정을 나서자마자 마음 놓고 ‘사채의 칼’을 서민의 목에 들이대고 있다.

대법원이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 판결이 난 1253건 중 징역형 선고는 37건(2.95%)에 불과했다. 벌금형이 대부분인 재산형이 964건(76.9%), 집행유예가 192건(15.3%)인 것에 비춰 보면 가볍기 그지없는 수치다. 선고유예 21건(1.7%)까지 합치면 93.9%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같은 기간 채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공정추심법 위반으로 1심 판결이 난 52건 중 징역형 선고는 단 1건이었으며 집행유예가 7건, 재산형은 32건에 달했다. 사채업자가 처벌받고도 마음 편히 영업할 수 있도록 법원이 멍석을 깔아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법은 눈감고 사채는 신종 수법에 눈떠

사채업자 J 씨(48)는 무역업을 하던 K 씨(50)에게 5억 원을 빌려준 뒤 이를 채권으로 만들어 다른 사채업자에게 더 높은 이자를 붙여 넘겼다. 자금이 급한 K 씨에게 추가로 돈을 빌려주며 선심을 쓰는 척했지만 다른 사채업자 9명에게 채권이 연이어 넘어가는 동안 원금 29억 원은 이자가 원금의 절반 이상 붙어 45억 원으로 부풀었다. K 씨는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부모와 동생 집을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빚을 얻어 갚은 뒤에야 사채업자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J 씨는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상태였지만 K 씨를 먹잇감으로 삼아 계속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 뻔하다는 이유로 일부 경찰은 대부업법 위반 고소장 접수를 꺼리기도 한다. 2005년 유흥업소 선불금 1000만 원을 갚으려고 사채 400만 원을 쓴 P 씨(33·여)는 다 갚았지만 6년 만인 지난해 4월 또 다른 사채업자에게서 “700만 원을 갚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원래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가 P 씨가 돈을 갚지 않은 것처럼 허위 채권을 만들어 다른 사채업자에게 팔아넘긴 것. P 씨는 경찰서를 찾아가 이들을 대부업법 및 공정추심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려 했다. 그러나 담당 경찰은 “고소해서 이들이 기소돼도 벌금형 이상 나오기 힘드니 민사소송을 해 이자 차액이라도 돌려받는 게 낫다. 형사 고소는 놔두고 민사 소송이나 알아보라”며 P 씨에게 면박을 줬다. P 씨는 “오랜 고민 끝에 찾아간 경찰이 외면하니 ‘소용없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고소를 포기한 사이 사채업자는 채권 양수금 청구 소송을 걸었고 P 씨는 피해자인데도 피고 신세가 되고 말았다.

○ 불법 사채업자, ‘30% 이자 합법’ 인정 말아야

불법 사채를 인권 유린의 차원이 아닌 단순한 금전 문제로 보고 판결하는 법원의 태도가 솜방망이 처벌을 양산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등록 사채업자는 적발되더라도 이자제한법에 따라 연 30%까지는 합법이자로 인정받고 이를 초과하는 부분만 무효로 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등록 사채업자의 연간 최고이자율은 39%다. 이헌욱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은 “무등록 업체는 존재 자체가 불법인 만큼 돈 빌려준 사실을 무효로 해야 한다”며 “법원이 무등록, 불법 사채업자의 권리를 보호하면 불법 사금융은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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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