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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청춘 스타 명강사 - 21세기 사회발전연구소장 이보규

이보규 2013. 4. 1. 14:13

< 방송 녹화 대본입니다>

<김민호의 사람 이야기 258회>

 

늙지 않는 청춘 스타 명강사

 

-21세기 사회발전연구소장 이보규

 

촬영일시 : 2013년 4월 1일 월요일 오전 11시

촬영장소 : 서울 송파구 송파구청

방송일시 : 2013년 4월 16, 18, 20일 오전 8시, 밤 11시 20분

출연자 : 담당자 이보규 010 9356 7447

담당작가 : 정영주 010 3269 4063

기타 : 프로그램은 http://woori.cnm.co.kr혹은 http://www.cnm.co.kr 에서

'씨앤앰ch4' 메뉴에서 VOD로도 시청할 수 있으며,

방송분은 DVD로 만들어 자택으로 발송해 드립니다.

 

▒ 오늘의 주인공 소개

 

<이보규 프로필>

-서울시립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 현재

-21세기 사회발전연구소장

-동서울대학 교양과 객원 교수

-고용노동연수원, 법무연수원 서울시인재개발원 강원도인재개발원

-각급행정기관각 대학원 기업체 등 특강활동 중

 

*수상내역

-새마을훈장 근면장

-홍조근정훈장 외 국무 총리 등 30여회 수상

 

* 주요 공직 경력

-서울특별시산하 국장 및 서울시한강사업 본부장 역임

-용인대 산업정보대학 경영학부 객원 교수

-호서대 창업대학원 초빙 교수

 

* 기타

- 수필가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 서울시 시우문인회 이사

- 체천시청 홍보대사 / (사)한국강사협회 교육위원장

 

http://cafe.daum.net/bokyoo

 

사진 참고(이보규 카페)

 

▒ 오프닝

 

김민호/ 안녕하세요?

사람 이야기에 김민호입니다.

여러분은 젊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꿈과 열정이 없는 20대를

과연 젊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모실 주인공은 나이를 잊고

전국을 누비고 있는 청춘 강사

21세기 사회발전연구소

 

이보규 소장입니다.

 

이보규 안녕하십니까?

 

Q. 현재 21세기 사회발전연구 소장을 맡고 계신데요. 이 곳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를 잠깐 부탁드립니다.

 

제가 공무원을 202년도 정년 퇴임하고 나서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발전하는

사회를 공부하고 책도 쓰고 사람도 만나는 개인 연구소입니다.

 

Q. 이보규 소장 앞에 붙는 여러 수식어 가운데

억대 스타 강사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더군요. 실제 생활의 많은 부분을 강의에 투자하고 계신데요.

한달 스케줄이 강의로 꽉~차 있다고 들었습니다.

(강의 스케줄, 하루 일과에 대해 소개)

 

지난 3월 달에는 스물다섯 차례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했습니다.

임실 김제 함안 성남 수정 도봉 경찰서교양 아카데미 등을 비롯하여

강원도 인재개발원 순천시 이 통장 교육,

수안보 상록호텔 공무원연금공단 퇴직예장자 등

하루에 두세 번 강의도 몇 번 있었습니다.

이번 달에도 경북 경주, 정남 장흥/강진, 충남 공주, 충북 충추 등

스물 다섯 차례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해야 합니다.

오늘도 이제 촬영을 마치고 충북 제천시

홍부대사로 위촉장 받기 위해 내려가야 합니다.

 

Q. 주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또 청중들에 따라

강의 주제도 달라질 것 같은데요?

 

수강 대상자는 아주 언제나 다양합니다.

이번달에는 경찰 교양 아카데미가 역시 공주경찰서 강진 경찰서 등에는

공무원과 시민들이고

장흥군과 청원군에서는

공직자들에게 공직의 선배로서 경험을 나누어 줍니다.

동국대학교 상명대학교에서는 최고경영자 들이고

동서울대학교에서는 대학생들에게 필 수 교양과목으로

<직업과 자기계발을 가르칩니다.

 

물론 대상과 장소에따라 강의 내용이 달라야 합니다.

 

Q. 지금은 스타 강사가 돼 있지만 처음부터 강의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40년 가까이 공직 생활을 했다고요?

(언제 공무원을 시작했는지? 9급에서 3급까지 올라간 이야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60년대 서울시 공채9급 공무원

즉 당시에는 공채 5급 을류로

마포구 아현동사무소에서 출발 했습니다.

 

Q. 어릴 때부터 공무원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나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사연..그 후 공무원이 된 사연)

 

저는 공무원이 어려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장을 28년 하셨으니까

면 직원들이 늘 우리 집 사랑방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면 직원에게도 깍뜻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면직원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6형제를 낳으셨으나

경제적으로 아들을 중고등학교를 보낼 형편이 못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겨우 시골 괴산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대한 집념으로

1년 후에 쌀 한말 가지고 집에서 무단 가출하여

청주 친구의 좁은 자취방에 충북에 단 한 크라스 밖에 없는

공고 야간부를 신문배달하며 고학으로 다녔습니다.

군에가서 특수 부대에 근무한 덕에 공무원 시험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Q. 당시 공무원 시험에서 네 번이나 낙방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경쟁률이 셌나요?

 

물론 그때도 소위 빽 없이 공채로 취직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니까

지금 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쟁이 있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군 복무를 마치고 4번 도전했는데 매번 낙방했습니다.

마지막 보고 안되면 다른 길을 가려고

코피 쏟아가며 축기 살기로 도전해서 합격해서 공무원의 길을 걸었습니다.

 

Q. 9급에서 3급으로 승진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많은 공부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텐데요.

당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좌절의 시간과 도전의 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마포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자취하면서 근무 했습니다.

서울에 마땅하게 거처할 곳이 없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도약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퇴근 후에 옆에 있는 당구장이나 술집에서

또는 극장이나 카바레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당구도 못하고 춤도 못 춥니다.

물론 술도 거의 안 마시고

한국인의 민속놀이 고스톱은 지금도 안합니다.

동료들에게 왕따 수준이지만 저는 그래도 그 길을 택했습니다.

 

Q. 공직 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숙직실에서 생활하면서 야간대를 다니며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하셨죠

당시 공무원 월급으로 학비를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저는 숙직실에서 자취 했기에

저는 봉급을 모두 모아도 등록금이 어려운 야간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와서 숙직근무자를 집으로 보내고

대신 숙직을 하곤 얼마 안 되는 숙직비를 챙겼습니다.

밥을 또 굶기도 하고 그 생활의 비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Q. 회사를 다니는 샐러리맨이나 공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 모두 승진을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일반 기업과 달리 공직 생활에서 승진하기 위해선

뭔가 다른 비결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이보규 소장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승진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런데 그 당시 승진은 모두 시험을 보아 합격해야 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하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동료들에 비하여 빠른 승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공무원 모두에게 승진 시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승진 서열 명부를 만드는데 세가지의 평가 기준이 좌우 합니다.

첫째 현 직급의 소요 년수를 보는 경력 점수와

상사가 평가하는 근무평정 점수가 있는데

 

이것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다 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 교육을 받아야 점수가 나옵니다.

세 가지 점수를 합해서 서열 명부가 작성되면

 

승진 자리 수에 따라 3배수 또는 5배수에 만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절차상 다릅니다만

당시에는 시험을 통해서 승진하던 때이기에

저는 비교적 빠른 승진을 자력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Q. 2002년 퇴직을 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강사로서의 삶인데요...어떤 계기로 강사를 시작하게 됐나요?

(용인대에서 강의가 들어오면서 시작, 첫 강의에 대한 기억..강의 내용은?)

 

퇴직을 하고 나서

안중근 의사 숭모회 사무총장 자리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근무가 영 마음에 걸리던 차에

용인대학교의 강사 제안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교수소리가 너무 촣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특강을 시작했는데

저도 제가 강의를 잘 하는지 몰랐습니다.

처음에 지금 박근헤 대통령의 출신구 달성군아카데미를 갔는데

 

<사회 변화와 대응전략>을 주제로 2시간 특강을 했는데

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잘 한다고 열광하는데

그 때 부터 강의가 속칭 알까기 강의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음식 맛 있으면 소문나듯이 강의도 음식점과 같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하면 또 부릅니다.

 

Q.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할 때 설렘도 있었지만

한편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그 때 기분은 어땠습니까?

 

물론 떨리지요. 저는 본래 비교적 무대 체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의 중에 호응해 주고

끝나고 열광하는 박수 소리는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몰라요.

스타 된 기분입니다.

많은 사람이 봐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당시 용인대에선 이보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요.

그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는데요. 강의의 경험이 별로 없었던 사람이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지요?

원래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셨나요? (강의 노하우)

 

저는 자랑 같습니다만

언제나 강의 할 때 수강하는 청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학생들에게 호감을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용인대학교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명문대학이다.

정문에 용인대학이라고 이름 있으면 명문이고 유명대학이다.

올림픽에 가서 유도 태권도 금메달을 따서

국민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대학이 어디 있느냐?

 

소위 sky 대는 그것 못한다. 용인대학교뿐이다. 박수 나옵니다.

그리고 구내식당으로 모이게 하고 밥도 사주고

눈높이 맞추어 개그 콘서트 함께 이야기하고

잘 한다고 칭찬해 주면 아주 잘 따릅니다.

물론 재미있게 수업 진행은 기본이구요.

또 동서울 대학은 친척이나 누가 어느 대학 다니느냐고 묻거든

당당하게 서울대학교 다닌다고 말해라

다만 그때 동자는 살짝 <동> 하고 쉬었다가 말해야 된다.

 

Q.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선 유머도 양념처럼 잘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이런 부분도 따로 공부를 하나요?

 

유머는 필수입니다. 웃기려고 준비 합니다.

재미있는 유머는 메모해서 사용합니다.

 

Q. 매회 다른 주제로 강의를 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와 공부도 해야 할 것 같아요.

평소 강의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강의요청이 들어오면 자료 준비에 들어갑니다.

 

Q. 오랜 시간 강의를 하다 보면 초창기 때와

지금의 강의 스타일이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소위 강의 트렌드라고 하죠...강의 트렌드는 어떻게 변해 왔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트렌드가 바뀝니다.

처음에는 메모 카드 한 장 들고 했습니다.

요즈음은 파워포인트가 없으면 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동영상을 많이 활용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Q. 그 때의 강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강사의 길을 걷게 됐는데요.

벌써 강의를 시작한지 10년이 되셨지요? 이제 공무원 이보규가 아닌

스타 강사, 대박 강사, 이런 수식어가 붙었는데요. 솔직히 공무원 때의

삶이 더 좋으신가요? 아님 지금 스타 강사의 삶이 더 좋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옛날 현직에 있을 때도 좋고 지금도 좋습니다.

항상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좌우명입니다.

현직 때는 부하가 많고 사무실이 폼이 나지요.

지금은 마음은 편하지만 제2인생의 삶이지요.

 

Q. 오랜 공무원 생활을 하셨고 또 퇴직 후 안정된 삶이 보장돼 있는데도

새로운 길에 도전하셨습니다. 이 도전에는 용기도 필요했을 텐데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두 가지의 반응입니다.

첫째는 나이 들수록 더 활동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또 하나는 이제 70이 넘었으니 건강관리나 하지

무엇하려고 그렇게 아옹다옹 쫒아다냐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고령화 사회의 롤 모델이라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Q. 10년 동안 많은 강의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된 일화도 많을 것 같은데요? (강의 중 일어나 해프닝, 에피소드 등)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모인 시민회관이나

대강당 강의가 기억에 납니다.

그래도 전 직원이 함께 듣는 특강이지요.

성북구청 광진구청 용산구청 전 직원이 함께 듣는 강의가 신바람이 납니다.

처음 특강을 한 경북 달성군아카데미가 기억이 납니다.

 

Q. 생각처럼 강의가 내 맘대로 안 풀릴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비장의

카드를 든다고 들었습니다.

(무대를 직접 뒹구는 몸개그도 마다하지 않는)

 

그렇습니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서 강의를 해도 거의 강사를 청자들이 평가를 합니다.

똑 같은 강의를 해도 강의실 분위기에 따라 반응이 다릅니다.

평가가 나쁘면 다음에 부르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비장의 카드를 꺼냅니다. 머리로 백보드를 박기도 하고

바닥에서 굴러서 동정을 받습니다. <-------->

 

Q. 많은 강의를 소화하기 위해선 목 관리도 중요 할 텐데요.

목 관리를 하는 비결 같은 게 따로 있나요?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의 무기가 생명입니다.

강사는 목소리지요.

목을 마르지 않게 물을 자주 마시고 발성을 복식으로 해서

가급적 과부하가 되지 않게 조절하고 스피카에 의존하지요.

 

Q. 현재 기부 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신데요.

여기엔 어려웠던 과거 시절 때문이기도 하다고요?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

 

그렇게 열심히 하진 못합니다.

다만 옛날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신문 배달할 때 신문이 팔리지 않아서 밥을 못 먹고 배고파서

청주 서공원 산등성이에서 시내를 내려다보고

울부짖던 생각이 나면 가끔은 그런 학생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홍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Q. 이보규 소장이 강의를 하는 주제는 모두 다르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똑같을 거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강의를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언제나 삶에 대한 본질의 문제입니다.

한 번 뿐인 우리의 운명을 바르게 잘 살자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의 지혜입니다.

자기계발을 통한 성공의 동기 부여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해야 할 일은 목표를 세워 해내도록 자극을 줍니다.

그래서 희망을 갖게 합니다.

 

Q. 평소 인생은 환경보단 경영의 문제다 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인생을 잘 경영하려면 어떤 점들이 필요할까요?

 

개인이나 기업이나 요즈음 자기경영이라는 말은 많이 합니다.

기업도 생산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우수해야

상품가치가 다르지요.

좋은 원료를 잘 가고하는 것은 자기계발이 중요합니다.

책을 많이 읽거나 강의를 많이 들어서 양질의 자신을 다듬어 상품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Q. 최근 <잘 나가는 공무원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책을 출판하게 됐는지요?

 

제가 서울시 공무원으로 36년간 근무하고 정년퇴임했습니다.

제가 공무원 생활하는 동안 공무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도 않았고

지침이 되는 책도 없었습니다.

 

공무원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예산 문서관리 등 실무교육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모르고 가는 길이였기에 어렵고 힘들고 시행착오를 이르켰습니다.

공무원을 위한 지침서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9급에서 1급까지 직급별로 그때그때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알려주려고 시작했습니다.

 

사실 남들처럼 하는 공무원이 대부분입니다.

피라밑 구조인 공무원 사회에서 살아남고 승진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알려주려고 책을 썼습니다.

 

Q. 경기 불황과 함께 공무원에 대한 인기도 매우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엔 공무원은 안전하다,

철밥통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꿈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려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요.

직접 경험해 보시기에 공무원은 정말 철밥통이란 말이 맞는 곳인가요?

(공무원은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편견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

 

비교적 지금 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기계발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남다르게 노력하지 않으면

승진하거나 업무의 중요 보직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Q. 잘 나가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또 승진과 경쟁이란 삶 속에서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하나요?

 

아주 쉽게 말하면 이것입니다.

공무원들이 대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공무원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골라서 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열 가지로 나누어 10계명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1. 내 비전을 세우고 비전에 헌신하라!

2. 윗사람과 실패와 변화를 피하지 말라!

3.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스토리텔링 하라!

4. 남다른 필살기와 스토리를 지녀라!

5. 좋은 인맥을 구하려면 먼저 좋은 금맥이 되라!

6. 유혹을 당하기 위해 절대 를 닫지 말라!

7. 욕망을 가지고 그 욕망과 싸워라!

8. 나의 뒷모습을 항상 살펴보라!

9.을 꾸지 않을 때를 두려워하라!

10. 전 생애 행복디자인하라! 등 입니다

 

Q. 본인을 포함해 주변에 성공한 공무원들도 많이 봐 왔지요?

그 분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은 어떤 건가요?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잘나가는 공무원의 공통점은

먼저 팀워크를 통해 함께 갈 줄 알아야 하고

오늘의 여건이 힘들고 어려워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누가 보거나 알아주거나 말거나

항상 미래에 꿈과 소망을 두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항상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자기계발을 향해

포기 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 책에 그 이야기를 다 쏟아 놓았습니다.

 

Q. 혹시 인생을 살아오면서 멘토가 됐던 사람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멘토라는 말은 요즈음은 일상화 되었지만

옛날에는 그런 말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첫 직장의 동장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가는 곳 마다 소위 인덕이 있었다고 할까요.

 

Q. 사람들에게 이보규란 이름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세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남다른 노력으로 누가 보거나 말거나

정말 열심히 지혜롭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명강사소리를 듣는 스타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특강을 하는 나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명실 공히 스타명강사로서 자리매김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중파 전국방송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웃기고 울리며 감동있는 강의를 해서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강의를 할 것입니다.

꿈을 가진 강사! 살아 있는 강의로

자기계발과 동기부여를 잘 하는 강사가 될 것입니다.

 

▒ 오프닝

김민호/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열정의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나이가 무서워 혹은 용기가 없어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올해는 꼭 도전해 보십시오.

저는 다음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