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창고/_ 참고자료스크랩

농업정책-위기가기회다(하)

이보규 2007. 5. 9. 06:36
[한국농업, 위기가 기회다]<下>아이디어-브랜드를 키워라

“소비자 취향에 맞게� 성공 비결이죠”
경북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쌀 가공 공장 ‘한국 라이스텍’. 이 회사는 소비자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해 연간 매출 100억 원에 이르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안동=이훈구 기자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윤명희(50) 씨는 평생 논이나 밭을 단 한 평도 가져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윤 씨는 현재 연간 매출이 100억 원에 이르는 농업 기업 ‘한국 라이스텍’의 사장이다. ‘스타 농민’이 된 그는 최근 농림부가 선정한 ‘신지식 농업인’에 들기도 했다. 윤 씨는 2000년 한 시골농가에서 벼의 껍질을 깎아 내는 도정(搗精)기계를 보고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백미를 좋아하는 사람, 현미를 선호하는 사람 등 다양한 입맛과 취향에 따라 ‘맞춤형 쌀’을 만들어 팔겠다는 계획이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한국 농업은 ‘온실 속의 화초’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이달 초 농산물 시장을 상당 부분 개방하는 내용이 담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데 이어 중국 등 농업 강국과도 FTA를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FTA 파고(波高)’를 이겨 낼 경쟁력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력, 자본과 브랜드 등에서 나온다는 게 농업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세대 농민 “농업은 아이디어 산업”

제조업 분야에서 남다른 제품 경쟁력이 ‘아이디어’에서 온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농업 분야에서 이런 생각은 널리 퍼져 있지 않다.

그러나 농업의 개념을 전과 다르게 보는 사람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바로 위기이자 기회를 맞은 한국의 농업을 바꿔 갈 힘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윤 씨가 내놓은 ‘프레시 라이스’는 공기세척기로 씻어 진공포장했기 때문에 쌀을 씻지 않고 곧장 전기밥솥에 넣고 물만 맞춰 밥을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주부로서 밥을 할 때마다 쌀을 씻어야 하는 게 귀찮았고 내가 없으면 밥 지을 줄 모르는 가족들이 마냥 기다리는 것도 안타까웠다”는 것이 제품 개발의 동기다.

그는 이어 현미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저온(低溫)저장고를 개발했다. 또 명절용 쌀 선물세트, 수험생 합격 기원 쌀 등도 잇따라 만들어 내 부가가치를 높였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노동과 토지만을 기반으로 농업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농업 분야의 ‘블루오션’(경쟁 없는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사고와 체계적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농업, 규모와 자본력을 키워라

“미국 주식시장인 나스닥 상장 회사에는 농업 분야가 수두룩합니다. 우리 농업도 ‘구멍가게’를 벗어나 어엿한 ‘기업’이 돼야 합니다.”

전남 장성군에서 유기농 채소농장을 운영하는 강용(40) 씨는 상추, 청경채, 케일 등 50여 가지의 유기농 채소를 판매해 지난해 60억 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50여 농가(農家)와 함께 학사농장이라는 법인을 만든 게 주효했다. 생산은 물론이고 제품 포장과 유통까지 역할을 분담해 효율성을 높였다.

농가당 경작지가 작은 한국에서도 농가들이 힘을 합친다면 인건비, 사료비 등을 절약하고 생산을 늘리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런 농업 법인은 2000년 5208개에서 2005년 5260개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이들의 연간 매출은 총 1조7003억 원에서 3조9724억 원으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강한 농민

제주도에서 친환경 감귤을 생산하는 김찬오(69) 씨. 칠순을 앞두고 있지만 낮에는 농사를, 밤이면 농법과 마케팅 전략 등에 대한 공부를 한다. 주경야독이 따로 없다.

손이 비는 날이면 전국을 누비며 사과농장, 매실농장, 고추밭 등을 찾아다닌다.

김 씨는 “감귤을 수확만 해서는 이제 경쟁력이 없다”며 “새로운 기술과 가공방식 등을 도입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새로운 농법을 시도하다가 한 해 농사를 망쳐 감귤을 폐기 처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돈이 모이면 다시 연구비로 투자했다. 그 결과 우유와 고등어, 당밀 등을 발효시켜 만든 퇴비로 연 5억 원 안팎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많이 지원해도 농민의 자생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농업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산물 브랜드를 키워라

“원더풀!”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강원도 횡성에서 생산된 ‘횡성한우’를 맛본 뒤 한 말이다. 횡성한우는 이 일로 유명해져 ‘명품 한우’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이런 과정엔 횡성축협과 군청, 축산농가가 ‘삼각 편대’를 이뤄 사료와 혈통 및 유통 단계를 모두 표준화하는 등의 품질 관리가 주효했다.

우수한 송아지를 골라 생후 4∼6개월이 되면 거세해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며 냄새는 덜한 쇠고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횡성한우는 최상급인 1등급 한우가 87%로 전국 평균(45%)의 두 배 가까이 된다.

현재 국내 농축산물 브랜드는 5000개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소비자의 인지도나 충성도는 다른 제품군에 비해 낮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델몬트나 썬키스트 등 세계 시장을 휩쓰는 농업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저한 ‘품질 관리’가 필수라는 뜻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