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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규가 아파트 자치회장의 감투를 쓰게 된 사연

이보규 2009. 6. 14. 23:19

         

        이보규가 아파트 자치회장의 감투를 쓰게 된 사연

 

                                                                                                                                                   청암 이보규

 

내가 우리 아파트 자치회장이 되었다. 회장을 하고 싶거나 감투를 쓰고 싶어서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어느 날 자치회장이 되었고 그 사연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내가 단독주택을 팔고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신대방동에서 5층 연탄 때는 20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한 것을 돌이켜 보니 40년 전이다. 그 후 그 아파트를 팔고 82년도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해서 살다가 이곳 송파에 정착한 지 어느덧 16년 이 지났다. 이제는 서울에서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가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훨씬 많아졌다. 집단 주거형태로 생활 방식이 바뀌고 주거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단독 주택과 비교하면 아파트가 편리한 점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아파트를 택했고 아파트 생활을 예찬하고 다녔다.

 

그렇지만, 나의 바로 위의 형님은 단독주택에 살면서 그럴듯하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마당에 작은 분수를 만들고 유실수를 심어 과실을 따 먹고 꽃을 심어 화단을 만들고 잔디를 가꾸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형제가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때문에 그 말을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었다. 마당과 실과나무와 흙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서 향수를 느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날 대낮에 형수 혼자 집에서 빨래하는데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 도둑을 만났다. 그 후에 형님은 그 집이 정떨어졌다고 중곡동 넓은 대지의 단독주택 팔고 아파트로 이사했으니 이제는 형제 중에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시골에 사는 동생 외에는 아무도 없다. 물이 얕은 곳으로 흐르듯이 주거 형태의 편리성을 비교하면 결론은 아파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파트의 건립연도나 규모 또는 교통의 편리함 등 지역에 따라 아파트 값이 같은 규모라도 영 다르다. 아파트 단지마다 자치회를 구성하고 부녀회가 있고 경쟁적으로 살기 좋은 아파트의 품격을 높이려고 각각 나름대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내가 강남에서 이곳 송파 우리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같은 지역에 나란히 1차, 2차, 그리고 길 건너편에 3차 아파트를 지어 살고 있다.

 

처음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올 때는 우리 아파트 값이 같은 규모에 옆에 단지보다 환경이 좋아서 비쌌는데 어느 때부터 우리가 사는 아파트 가격이 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리비가 비싸고 주차장도 부족하다고 소문이 났다고 했다. 아파트의 환경이나 관리가 엉망이고 단지 내에서 관심이 많은 통장이 나를 동대표로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아파트자치회를 중심으로 살기 좋은 아파트 만들기에 앞장서는 역할을 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나는 이미 정년 퇴임하였고 학교 강의가 매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치회는 동네에서 저녁에 모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동대표를 수락하고 말았다. 서울시에서 간부였다는 경력을 구실로 감사라는 직책을 억지로 떠맡겼다. 막상 자치회에 들어가서 속내를 살펴보니 고치고 개혁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주 가끔은 단지 내 청소나 게시물관리시스템이나 운영에 대해 의견은 있었지만 말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아파트의 관리비를 줄이는 일이었고 그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모든 물건 구매나 공사는 수의계약을 하지 못하게 조치하고 모두 공개경쟁 입찰을 원칙으로 정했다. 내가 사무관 시절 서울시 회계과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많은 돈이 드는 방수 공사를 공개입찰 했고 감리수당을 타내려고 수작하는 사람이 더 이상은 공금에 손을 대지 못하게 조치했다. 수의계약의 관행을 허무는 일이 반대 논리로 저항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원칙을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의 큰일은 아파트 경비원을 줄이는 것을 또 하나의 과제로 택하고 추진했다. 경비원의 일자리를 없애는 일은 저항이 뒤따르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정년퇴임 후 자연감소로 구조 조정키로 하고 정년연장을 안 해 주기로 하니까 그래도 일부 경비원들은 불만을 품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이라는 것을 소문으로 모두 알게 되니까 우연일지라도 내 자동차 타이어 펑크를 황당하게 여섯 번이나 당했지만 웃으면서 감수해야 했다. 오죽 화가 났으면 그렇게 하겠는가 하고 아무에게도 그 당시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내가 사는 12층 아파트 한 동의 예를 들면 96세대가 네 개의 계단에 8명의 경비를 고용해서 월급을 주게 되니까 결국, 12세대마다 한 명의 경비를 고용하여 월급을 주는 셈이니 돈을 부담하는 측에서 보면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었다. 이를 무려 8명을 2명으로 75%를 줄이고 48세대가 한 사람의 경비를 고용하는 체제로 바꾸었다. 물론 항의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경비반장이라는 사람을 두 명 두고 경비보다 임금은 많이 받아도 하는 일이 별로 없고 순찰을 한다고 하지만 그냥 온종일 놀고 월급을 타고 있었다. 각 동(棟) 마다 배치근무하는 경비는 부스에서 매일 잠자는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경비실 바로 앞에 건물 내에 자물쇠를 채워서 보관한 고급자전거가 사라지고 대낮에 빈집을 골라 도난사고는 빈번해도 경비가 도둑을 잡았다거나 도둑을 쫓아낸 이야기도 들어 보지 못했다. 먼저 경비반장이라는 직위를 없앴다. 그리고 결원이 생긴 곳에 경비반장이라는 사람을 근무 배치하였다. 동(棟)마다 경비실을 건물 앞쪽에 건립하고 동당 2명으로 하고 부녀회의 협조를 받아 입구 정문마다 CCTV를 설치하고 버튼식 자물쇠를 달았다. 경비원이 정년퇴임을 하면 충원하지 않음으로써 집단 저항의 구실을 차단 한 후 경비원 숫자를 맞추어 나갔다. 관리비는 훨씬 낮아지고 도난사고가 오히려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다음 추진 한 일이 주차장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건립할 때부터 없어서 밤이면 자동차 수가 주차 면보다 많아서 주차면이 모자라 늘 늦게 귀가하면 주차할 곳을 찾아 단지를 차를 가지고 몇 바퀴 돌아다니는 전쟁이 벌어졌다. 대책은 단지 내 공간으로 몇 명의 주민과 외부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테니스장을 주차장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테니스 애호가의 조직적인 저항은 폭언으로 나타나고 추진에 선봉에서 설득하던 동 대표의 자동차 타이어가 또 아주 예리한 칼끝으로 모두 찢어져 있었다.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떤 이들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뿐이었다. 그 후 그분이 동대표를 사임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래도 구청에서 주차장 확보를 위한 공사비를 지원받았다. 운동장시설을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하는 절차를 거쳤다. 우여곡절 끝에 테니스장 한 면을 주차장으로 바꾸는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종전보다 많은 상당한 주차면을 확보했지만, 아직도 주차장을 더 늘려야 한다. 일부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주차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반대하면서 다른 동 앞에 주차장은 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님비현상을 아파트 단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설득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은 아파트 자치회에 통장이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워 행정조직인 통장과 반장이 아파트운영에 방관자가 되어 있었다. 당시 관리소장은 통장의 동대표 겸임이 되지 않는다고 우겨대고 있었다. 주민에게 의견을 묻거나 홍보를 하려고 해도 주민의 여론을 공식채널로 알 길이 없었다. 반드시 통장이 자치회에 포함돼야 한다며 고함지르며 닦달하고 구청에 질의하고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결국에는 포함했다., 

 

 

 

 

통장은 따로 반장 회와 통장 회에 참석하니까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 관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가 감사라는 직책을 수행하

 

 

 

면서 나 혼자 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동안 함께 일한 세분의 자치회장은 열림 마음을 가진 분들이었다. 처음 제안하고 고집스럽

 

 

 

게 독려하며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음에도 지난 4년간 아파트관리자치회에서 이룩한 성과의 일부이다.단지 내 보도블록 교체 공사

 

 

 

를  완성했다. 구청에 간절하게 호소하여 설득했다.

 

또한, 각 동에 엘리베이터가 노후하여 흉한 모습을 새로 고쳐서 분위기를 일신했다. 계단마다 게시물은 아무 곳에나 마구 보기 싫게 게첨하지 말고 산뜻한 게시판을 만들어 규격의 게시물만 게첨하도록 조치했다.

 

회장이 시골로 이사 한 후 자치회장을 새로 선출하는 날 다른 대표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회장을 할 수 없는 사유와 의사를 분명하게  미리 밝혔지만 헛수고였다. 일방적으로 만장일치로 추천하는 분위기에서 나는 더는 거절할 명분이 없어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이는 명예도 아니고 봉사일 뿐 돈이 생기거나 누가 알아주거나 존경받는 자리도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이이기에 내가 맡아서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회장 수락인사를 "옛날 아버지께서 28년간 이장을 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리 아파트는 대규모는 아니지만, 아파트를 관리하는 일도 온 힘을 쏟아야 하고 개선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돌이켜 보면 아파트 주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부 동대표에게 계량기를 고쳐 난방비 부담을 줄여주고 동대표를 마치 관리소장의 보조자로 생각하는 부적합한 관리소장을 교체하는 일도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 자치회 각 동대표를 한마음으로 통합하고 소통하는 일도 쉽지 않고 상당한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 힘으로 다하려고 하면 되지도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한 방향으로 함께 가야 한다. 설득하고 실패하면 또 설득하며 주어진 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각 동 대표에게 역할의 분담 하도록 하고 의무와 권한을 동시에 나누어 주어야 한다. 매월 자치회가 열리면 건전한 방향으로 토론이 이어져야 한다. 형식적으로 자리만 지키려는 생각으로 동대표가 되어서는 누구도 안 된다.

 

앞으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관리소장을 비롯하여 직원들의 흐트러진 근무 자세는 이제부터 다부지게 챙겨야 할 일이다. 어느 조직이나 인화는 기본이고 생명이다. 서로 헐뜯으면 공멸하고 만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조직에서 생존이 어렵다. 하나의 목표로 향해가는 길은 이끌어주고 밀어주고 덮어주고 서로 따뜻한 정이 통하면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때나 정부는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이 옳으면 저항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안 되면 국회 와 지지해 주는 국민의 여론을 에너지로 승화시켜 관철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된 리더십은 섬김도 중요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지만 그 직위가 요구하는 니드를 충족해야 한다. 시간은 가는데 정부와 국회는 왜 그렇게 모두를 머뭇거리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파트 자치회장이라는 감투가 이렇게 나에게 논과 밭을 가는 농우처럼 나의 어깨 위에 멍에가 씌워졌다. 일을 해야 한다. 서로 감싸 주고 격려하며 땀을 쏟을 때 우리 아파트의 품격은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