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이라는 것
청암 이보규
건대역은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여 환승하는 역이다.
7호선으로 환승하려면 가파르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한쪽에서는 내려가는 사람이고 한쪽에는 올라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비켜 스쳐가는 행렬이 이어진다.
언제나 사람들은 많아도 늘 다른 사람들이 서로 비켜 지나간다.
마주치는 순간에 대부분이 처음 대하는 얼굴이고 무표정한 그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습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지하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서로 외면을 하고
긴장하고 굳은 표정으로 다니는 것일까?
사람을 대 할 때 마다 그 사람의 삶이 힘들고 어렵고 고달프고 지친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안타깝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밝고 미소 띤 얼굴로 대하고 지나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다.
항상 긴장되고 피곤하고 지친 모습은 삶이 고달파서 그런 것인가?
우리의 문화는 서로 얼굴을 대할 때 싱글 벙글 웃으며 바라보면 놀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얼굴에 무엇이 묻었느냐고 말하면서 불쾌하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웃고 다니면 실없는 사람이라고 좋은 평판을 받지 못 한다.
우리는 어른이나 윗사람과 대화할 때 눈을 똑바로 처다 보면 실례가 되어 눈을 아래로 보며 이야기해야 하는 문화이다.
모르는 사람이나 서먹한 사이에 똑바로 바라보면 왜 째려보느냐고 바로 싸움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처다 보면 도전으로 받아드려서 눈은 아래를 향해야 항복의 의미가 된다.
2002년 월드컵축구를 4강으로 끌어올린 히딩크 감독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처음에 박지성 선수에게 지시를 하려고 부르면 항상 눈을 바라보지 않고 땅을 보고 발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있엇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이 나중에는 이야기할 때는 내 눈을 바라보라고 지적했다는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충분히 그 모습을 이해하고 있다.
박지성과 히딩크는 감독과 선수 사이로 둘 사이의 특별한 관계이지만 서로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주고 받는 표현은 문화의 차이일 뿐 어떤 모습이라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독립된 생명체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처음부터 각각 남으로 태어난다.
쌍둥이로 태어나도 각각 다른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다른 생명체이다.
부자지간이라고 해도 어차피 남이다. 형제라고 해도 유전자에 의한 가장 근접일 뿐이다.
평생 동안 초 중고등학교 동문이라고 인연을 강조 하고 끈끈한 정을 과시하지만
지금 옆을 스쳐가는 사람보다 조금 먼저 만났을 뿐이다.
그만남은 우연이거나 혈육 처럼 필연이라도 불문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인연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세상에서 사람사이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는 부자지간이나 형제사이 라고 혈육으로 천륜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좋은 인간관계를 강조해도 그 사이가 오히려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할 서로 불편한 관계도 생긴다.
돈 때문에 어머니와 누나를 청부살인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계에 대한 인연의 한계를 느낀다.
범죄는 언제나 일부 비인간적인 야만 행위에 불과하다.
스쳐 지나는 많은 사람들.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세계 66억 인구가운데 대한민국에 4800만으로 같은 시대 태어난 것도 인연이고
1000만 서울시민으로 함께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도 큰 인연이다.
같은 고향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향우회로 모이고 동문회로 모여 남다른 정을 나눈다.
같은 직장 한사무실 같은 소속이라는 사실로 평생 모이고 관혼상제에 오고 가며 여행도 함께하고 형제처럼 정을 나누기도 한다.
하물며 부부로 만나 한 평생을 함께 살고 부자의 인연으로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며느리와 손자와 만나는 인연이야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그렇게 만나 두터운 정을 나누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일 뿐이다.
지난번 손자가 태어나 백일을 맞으며 눈 마주치는 순간이 좋아서 기쁘기 그지없다.
그 손자와 앞으로 얼마나 더 만나 오래 정을 나눌 구 있을까 생각하니 새삼 인생의 생명의 한계를 알면서도 서글퍼진다.
사회생활 하는 동안 출세해서 사회에 공헌하고 가는 곳마다 박수갈채를 받아도
결국 돌아와서 쉬고 잠자고 생활하는 곳은 가정이다.
독신으로서 일부 예외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기다리고 식사를 함께하고 입을 옷을 챙겨주고
진정 행복을 누리고 사는 곳은 가정이다.
가족 간의 일로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 가족 때문에 분노와 좌절과 슬픔이 되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 간의 작은 일로 마찰이 생기고 갈등이 깊어진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도 이해 못하고 참아내지 못하면 화가 난다.
살고 싶지 않아서 원수처럼 부부사이가 벌어져 이혼하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다.
제일 많은 갈등이 돈 때문에 생긴다. 평생 절약하여 모은 돈이 와르르 사라지는 순간에는 가족임에도
참기 어려운 순간을 격는 사람을 보아 왔다.
서로 믿지 못하고 믿어주지 않는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에 죽이기도 하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생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각각 서로 다르다.
평생 얼굴 한 번이라도 스쳐간 사람,
수시로 만나고 서로 얼굴을 보면 기억이 나는 사람,
단 한번이라도 눈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
차나 서로 음식을 함께 나누어 같은 목적으로 한 공간에 머문 사람.
같은 직장에서 책상을 맞대고 가족보다 더 오랜시간을 함께 하는 사랍
서로 돕고 시간과 돈을 서로 나누어 쓰며 반복적으로 만나는 사람,
언제라도 대화하고 싶을 때 전화가 가능하고 만나고 싶으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사람.
내가 도움을 주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내가 도움을 받아서 고마움을 느끼고 사는 사람,
내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살아가는데 상대에게 크게 이익을 준 사람,
그리고 일가친척과 가족들처럼 천륜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처럼 관계는 다양하다.
그러나 모두가 공통점은 내가 아니고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 공통분모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만나지 않으면 서원해 진다. 또한 자기이익에 반하면 대부분 돌아선다.
이해가 달라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불신하게 되고 나의 영원한 지지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관계는 결국 상대적이고 이해를 주고 받는 다는 사실이다.
스치는 사람이라도 진실하게 대하고 가까운 사이 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언제라도 원수처럼 공격을 가해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긴장을 풀면 안 된다.
가깝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금전거래나 말 한마디 잘못하여 틈이 벌어져 서로 저주하며 사는 사람 많이 보았다.
좋은 인연을 잘 못 관리해서 그런 모습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인간 관계의 실패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고 나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나도 소홀하지 않고 그분들을 도우리라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영원이 좋은 관계는 존재 하지 않는다.
그 순간과 그 공간에서 존재하고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관계가 단절 되면 기억으로 존재 할 뿐이다.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도 틈새 생겨 헤어지면 차라리 만나지 않은 사이보다 더 나빠진다.
관계를 유지하고 더욱 가까워지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전화 한 번 하는 일, 만나면 미소로 호감을 표시하는 일, 생일 등 기념일을 생각하고 챙기는 일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일은 계속 반복해야 한다..사람과 사람사이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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