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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시청자가 이렇게 고맙기도 처음”

이보규 2010. 10. 28. 17:10

김수현 “시청자가 이렇게 고맙기도 처음”

 

"'인아' 시청률 20%는 한국사회 '열린마음'의 상징"



김수현.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 드라마계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이 다음 달 7일 막을 내린다.

SBS TV 주말극 '인생은 아름다워'다. 지난 3월 출발해 8개월을 달려온 이 드라마는 안방극장에 '동성애 폭탄'을 터뜨리는 파격을 감행하고 재혼가정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다양한 인물의 일상을 놀랍도록 소소하고 착하고 잔잔하게 그리며 평균 20% 대의 시청률을 유지해왔다.

또한 63회를 이어가는 연속극으로는 처음이자 대범하게도 바다건너 제주도에 무대를 세워 시청자에게 8개월간 제주도를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줬다.

주인공 가정의 어느 하루에서 시작한 이 드라마는 마지막에서도 이들의 어느 하루로 끝을 맺을 예정이다. 인생에는 고비고비 많은 일들이 있고, 그 가운데서 인간은 때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멈춰 서 돌아보면 어느 때고 우리는 어김없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희한한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안방극장에서 선량한 사람들의 선량한 이야기만으로 승부를 걸고, 그러면서도 동성애라는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논란을 일으킨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국 드라마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김수현(67) 작가이기에 가능한 작품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촬영이 진행된 27일 김 작가는 "별다른 소감은 없다. 그저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고 고맙다. 제주도라 촬영팀이 비행기를 많이 타야하니 혹시 사고가 날까 그게 제일 걱정됐는데 하늘이 도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근 극중 동성애 커플의 성당 언약식 장면이 통편집당하는 사건으로 불편한 심기를 트위터에 토로하기도 했던 그는 "당시에는 무척 화를 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난 원래 그때뿐이다"며 '쿨'하게 답했다.

--그래도 이번 드라마가 남달랐을 것 같다. 처음부터 동성애 때문에 논란이 많았고 스스로도 트위터에 '수난'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SBS가 애를 썼지. 뜨거운 것을 손에 들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안지도 못하며 쩔쩔 맸지 뭐. 40년 작가 생활을 하면서 내가 쓴 장면이 이렇게 통편집을 당해본 적이 없어서 화가 많이 났지만 어떡하겠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있으니. SBS로서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일 거다.(웃음)

--성당 언약식 장면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하셨나. 촬영도 도중에 중단됐다.

▲내가 원래 '멍청'하다. 설마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촬영하다 쫓겨났다는 소리를 듣고 모자란 세 컷을 대신해 속소리(마음의 소리)로 처리하는 대본을 써서 보냈다. 그래서 통편집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종교라는 게 무섭지 않나. 솔직히 종교는 '품'조차 없어야 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너무 달콤하게 생각했나 보다 싶었다. 살인자보다도 동성애자가 안된다고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존재와 인권을 공론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 언약식 장면이 편집되자 드라마 게시판에 항의의 글이 수천건 올랐다.

▲의외로 덮어놓고 이런 드라마를 왜 보냐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동성애 때문에 일간지에 우리 드라마를 비난하는 광고까지 실렸는데 이 드라마를 기획했을 때는 조금 시끄럽긴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난리가 날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지켜봐 주고 사랑해준 시청자들이 계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김수현의 시청률로는 아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이 드라마가 20%를 유지한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0%는 한국사회의 열린 마음을 상징하는 대단한 숫자다. 시청자가 이렇게 고맙기도 처음이다.

--동성애를 다루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셨나.

▲하도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있어 태섭-경수의 스킨십을 약화시킨 것 정도만 빼고는 아쉬움 없이 다 했다. 내가 거창하게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나선 것은 아니다. 그저 주인공 가정에 자식이 많다보니 그 중 하나쯤은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도중에 태섭을 병원에서 내보내거나 둘을 외국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있었지만 난 그렇게 쓰기 싫었다. 처음부터 이들을 성적인 존재로 접근한 것도 아니고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가족 안에서 끝내고 싶었다. 왜 그들을 다른 데로 보내야하나. 드라마에서 동성애자를 희화화시키는 것이 너무 싫다.

--동성애는 파격이었지만 그외 부분은 기가막힐 정도로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였다. 인물들도 모두 선량했다. 그럼에도 인기가 있었다.

▲싱거웠을 수도 있는데, 싱겁지 않으려면 딴 얘기를 썼어야지. 그냥그냥 어디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망가지지 않은 사람들로만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불쾌하지 않았겠지. 예쁜 꽃을 보면 기분이 좋듯이 선한 사람들을 보면 불쾌할 필요가 없지 않나. 요즘 드라마 너무 무시무시한데 거기에 나까지 숟가락 하나 더 얹어야 되나. 그래도 우리 드라마에 있을 건 다 있었다. 재혼가정에, 데리고 들어간 자식, 동성애 등…. 자극적으로 안 다뤘을 뿐이다.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고 있다.

▲차라리 대놓고 '악녀'라는 제목으로 드라마를 쓰면 이해하겠다. 그런데 너무나 멀쩡한 캐릭터들을 놓고 꼬일 대로 꼬이고 아귀도 안맞고 개연성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다 그렇게 사악한가 싶다. 인간을 너무 망가뜨리고 있다. 모두들 품격있게 일했으면 좋겠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인가.

▲어찌 사느냐에 따라서 아니겠나. 우리 드라마 속 사람들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산다면 불행할 일이 없겠지.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가 세상에 통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나.


▲난 안 변한다. 아직도 날것이고 생짜고 천진난만하다. 이 나이에 천진난만하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서 나 스스로 '멍청하다'고 말하는 거다. 난 인간에 대한 의심도 없고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

--트위터를 아주 활발히 하신다. 솔직한 언변에 젊은 층의 반응이 뜨겁다.

▲오전 7-8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3-4시에 끝내면 그 뒤에는 그냥 논다. 그때 트위터가 제일 편하고 쉽다. 호흡이 짧으니까. 하지만 고민이 된다. 무슨 말만 하면 금세 퍼져 나가니까 좀 부자유스럽긴 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예 말을 안 하기도 하지만 일단 말을 꺼내면 가감을 하지는 않는다.

--건강은 어떠신가. 작품활동은 계속 하는 것인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절도 있게 생활하려 신경쓴다. 아직은 약속된 일들이 있다. 하지만 정말 싫증날 때가 많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소통의 장애를 느낄 때 그렇다. 더 애써봤자 소용없는데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특별히 이번 드라마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당분간은 쉰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말하기 이르지만 가족드라마는 아닐거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