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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뺴미 인생

이보규 2007. 5. 27. 19:59

 

       이 글은 청주기계공고에서 한마음축제에 책자 발간을 위한

                             "격려의글"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로 책에 발표된 글임을 밝힌다.

 

 

                         빼미 인생

                           

             

내 인생은 대부분 밤에 성장했다.


매일 새벽 4시 통금해제 싸이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신문배달을 시작 하였다.

내 담당구역은 청주의 남부지역인 남문로. 석교동. 금천동. 영운동과 탑동등 이었다.


신문지사에 가서 총무에게서 할당된 신문을 받아들고 어둠 속에 신문을 돌렸다.

낮에는 가판을 하기도 하고 신문대금을 받기 위하여 배달구역을 돌았다.


우리학교는 당시 충북에서 유일하게 한 반의 야간부로 전기과가 있었다.

야간부에서 공부 하기 때문에 오후 5시 수업이 시작되면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력으로 밤 10까지 버텨야 했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것은 밤 11시.


그 시간부터 빌려온 책들을 읽다보면 자정이 넘었다. 그래도 이때 읽은 이광수. 심 훈. 톨스토이. 괴테, 헤밍웨이 등 국 내 외 거장들의 명작들이 내 인생의 기본 정서가 되었다.


낮에 공부하는 친구나 관공서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친구가 항상 부러웠다. 먹고 살기위해서 낮에는 돈을 벌어야 했고 배우기 위해서는 밤잠을 참아야 했으니 고등학교 시절은 나에게 있어 주경야독의 세월이었다.


그런 어려움 끝에 고진감래(苦盡甘來)로 군 입대에서부터 행운이 따랐다.

대북방송의 아나운서가 되어 대북선전대에 근무하면서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언제나 내 꿈이었던 공무원 시험 준비도 그 시절에 했다.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마음의 정서도 얻었다.


제대 후 서울시 5급 을류(현 9급) 시험에 합격하여 대망의 1단계 꿈을 이루었다.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자취를 하며 국민대학교 야간부에 다녔다.

사무관이 되고 나서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10여년간 여러 구청의 국장을 역임한 후 부이사관으로 승진하였다.

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장으로 재직 중에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8할은 퇴근 후 야간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36년간의 공직을 정년퇴임한 후

우리학교 동기동창으로 당시 용인대학교 도서관장인 이규현 박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용인대학교 산업정보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동시에 호서대학교 벤처정보대학원의 초빙교수로서 석ㆍ박사과정을 강의 한다.

각기업체. 각급 공무원교육원. 각 지방자치단체의 직원교육 초청강사 등

전국적으로 명강사(?)의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모교인 청주공고의 얼이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 어디서 강의를 할 때 마다 청주공고 출신으로 고학으로 야간부를 졸업한 신문배달소년이었다고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태양은 태양을 향에 걷는자에게 비춘다는 말이 있다..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면 따로 사교술을 배워라.

책을 읽어서 지식을 넓히고 얘기꺼리를 축적하라.

목표를 명확히 하여 중심을 잃지 말고 초지일관 앞으로 나가라.

해야 할 일이면 힘들어도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유혹을 뿌리쳐라.


부단히 노력하면 남이 우러러 보는 성공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만족하는 성취는 얻을 것이다.

평소 나의 지론으로 글을 맺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