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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일본시찰기-⑧-농회서 생활개선 4H 관장 (81.03.07)

이보규 2007. 9. 6. 13:30
 

만 일본을 다녀와서 (視察記)-⑧ (81.03.07)

 

            

                     농회서 생활개선 4H 관장,주택은 허술

 

                                                서울시  새마을지도계장  이보규


대중(臺中)에서 현지 마을을 직접 돌아보기에 앞서 대만성농회를 찾아가 농촌의 실태를

먼저 청취했다.


이 농회는 우리나라의 농협과 농촌지도소를 한데 합한 것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조직으로서 80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한다.


농회의 산하조직은 생(省)농회, 시ㆍ구ㆍ읍ㆍ면ㆍ리의 단위 농회가 있으며

동민의 지식과 기능개발, 농업의 현대화를 위한 영농기계의 보급,

생산증대를 위한 각종 시책의 추진, 생활개선, 각종 사용업무수행,

청소년을 위한 4H구락부의 지도 육성 등을 관장하고 있으며 농회의 중추적 기능은

각 단위 농회마다 이사회가 있어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는 농촌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열심히 보고 귀담아 들었으나 도시 새마을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어 이상으로 소개를 줄인다.


먼저 농촌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영농기계화의 현장을 보기 위해

의 창화(창化)농기계센터를 방문, 그곳에 보관하고 있는 여러 가지 농기계를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나는 농기계에 대해서 잘 모르나 일행 중의 농촌 새마을지도자들에 의하면

기계가 거의 우리나라에서 보급되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종류의 농기계는 없다는 것이며

성능 역시 두드러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농기계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려다가 불현듯이 濟州도 한라산 중턱에 서있는

말위에 올라 사진촬영을 한 것을 집에 막내가 아버지 말 탈줄 아느냐고 묻는 통에

쩔쩔 매던 일이 생각나 중단하고 말았다.


농기계를 직접 사용하고 있는 마을도 찾아갔다.


넓은들 가운데 위치한 마을로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려

추수작업을 중단한 채 기계는 천막으로 덮어놓고 쉬고 있었다.


버스가 마을에 도착하자 농기계 보관 창고 안 많은 주민들이 모여들어 우리를 환영했다.


마을 앞 논의 주인인 모범농가 ?씨는 우리가 기계로 추수하는 광경을 보고 싶다고 하자

가랑비를 불구하고 세워두었던 기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벼 베는 기계는 바퀴가 달려 앞으로 나아가면서 서있는 벼를 잘라

기계위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탈곡되어 벼는 가마니에 담겨지고 볏짚은 땅으로

떨어지는 작업이 편하고도 능률적인 작업이었다.


우리나라의 재래식 벼농사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른 봄 못자리에서 시작하여

모내기ㆍ제초작업ㆍ벼 베기ㆍ벗단운반ㆍ타작 등이

모두가 사람의 손과 몸에 의해 이루어져 농사라면 무조건 힘든 일로 생각하여

좀더 편하게 살겠다고 농촌을 떠나는 사람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농촌도 근대화가 이루어져 살기 좋아졌다.


대만에서의 벼농사는 농기계 보급률이 경운기는 100%, 모내기기계 65%,

벼수확기 42%의 기계화가 이루어 졌다고 농업발전위원회는 밝혔다.


우리일행은 농작ㆍ축삭ㆍ과수 등 분야별 우수마을을 중류층과 상류층으로 구분하여

돌아보았다.


농촌이 잘 산다는 객관적 기준은 소득액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대체로

마을입구의 진입로와 농로가 포장이 되었다거나 집집마다 냉장고ㆍ칼라TV가 있다거나

 저금통장을 갖고 잘 산다는 사실을  반증하려 했지만 충분하진 못했다.


우리 일행은 미리 정해진 시찰코스에 안내원이 안내하는 곳만 다니며 시찰했기 때문에

대만의 농촌 모두를 보았다 하기에는 미흡하나 비교적

우리가 본 농촌은 풍요하게 잘 살고 있는 듯 했다.


다만 잘사는 이유를 한두 가지로 집약 할 수는 없었다.

다소 실망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택의 외형이 하나같이 허술하며 목수의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짜임새가 없었다.

어느 가정이던 개방된 현관에 자기들의 조상을 섬기기 위한

사당과 고장 특유의 향내도 싫었다.


특히, 그들의 침실은 대낮에도 이불과 베게, 그리고 벗어놓은 옷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손님이 왔을 때 집안 내외의 청소부터 하는 것이 상예이나

이곳에서는 청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아 후회했다.


대만을 시찰하는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준 따뜻한 온정은 잊을 수가 없다.

찾아간 기관마다 친절하게 대해주고 또 자세히 설명해 주는가 하면

지나치고 미안할 정도로 우유ㆍ과다 등을 대접하여 당황했다.


또한 마을 주민들까지도 주전자에 차를 담아들고 나와 따라다니며 권하는가 하면

어느 마을에선 마당 한가운데 처음 보는 음식을 차려놓고 권했기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다.


결국 대만은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기후는 건물이나 주택에 난방시설이 필요 없이 건축비와

난방용 연료가 절약되고 국산 천연가스 생산으로 에너지를 1백% 자급함으로써

취사용 연료 걱정이 없고 여름은 길고 기후가 고르기 때문에

작물재배 2~3모작이 가능하여 생산성이 높을뿐더러 방한복이 필요 없으니

은근히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국가의 경제발전이나 국력증강은 자연환경 조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이나 덴마크의 오늘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대만 사찰에서 농촌 마을을 끝으로 공식일정은 모두 끝났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일행 모두가 한꺼번에 행동하다 보니 도시행정이나

도시 새마을 운동 분야를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야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