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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일본시찰기-⑥-유치원에 장학금 전달 (81.02.21)

이보규 2007. 9. 6. 11:35

 

대만 일본을 다녀와서 (視察記)-⑥ (81.02.21)

 

                       유치원에 장학금 100불 전달

 

                                                                           서울시 새마을지도계장 이보규


이어서 대북시의 변두리인 木柵區 實踐社區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주민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을 공동회관에 그곳 木柵區廳長도 나와 주민들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의 이사장의 환영사가 있은 후 구청장은 인사를 통해 우리를 환영해 주었고

지역의 개발계획과 현황등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마을회관은 공동소유로 다목적회의실과 유치원을 동시에 운영하고 공동사업장,

독서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새마을과 흡사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 민간인 위원회인 이사회에서 결정 추진하고 있었으며

이사장은 마을의 이장을 겸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을 나와 아파트가 밀집된 뒷골목을 지나 마을 소공원을 돌아보았다.


마을뒷산 넓은 비탈언덕을 다듬어 돌계단을 쌓아 오솔길을 만들고

나무의자와 휴지통을 만들어 세우는 등 아담한 공원을 주민들의 힘으로 다듬고

잘 가꾸어 깨끗하게 유지관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대북시 목책구 실천사구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친절하고 정답게 대해주어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동안 별로 부담감이 없 었다.


회의실에 앉아 있을 때는 대의 특산차(茶)를 한잔씩 가득히 따라주고 나서

마실때까지 기다려 다시 가득 채워주는가 하면 마을을 돌아 볼 때는

서로 앞을 다투어 안내를 자청하고 나섰다.


또한 마을 유치원의 젊은 여선생님과 대학생 봉사대원들은

유치원생들이 정성을 기울여 만든 회관에 진열해 놓은 수공예품과 장난감등을

우리에게 하나씩 골라 선물로 가져가라고 권하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그 공예품들이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짐이 될 것 같아

끝까지 사양해 버렸다.


우리 일행은 마을 주민들과 오래 우정을 나누어 온 옛 친구들끼리 만난 것처럼

서로 다정하게 어울렸다.

피부색도 얼굴모양도 흡사한 우방이기에 서로 더욱 친근감을 느끼는 것일까?


서울 영등포(永登浦)구 安永煥지도자는 즉석에서 유치원생을 격려하는 뜻에서

원장을 통하여 1백불을 장학금으로 기탁함으로써 뜨거운 박수를 받았으며

또한 우리가 미리 준비해간 인삼담배, 비누 등의 선물을

마을 지도자와 노인들에게 건네주자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 거듭했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마을회관을 구심점으로 환경개선과 소득증대사업을 통하여

깨끗하고 살기좋은 환경을 스스로 가꾸어 가고 있었다.


골몰길은 말끔히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거리나 공원에서는 쓰레기를찾아 볼 수 없었고

공지에 심어놓은 나무들은 손질이 잘 되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모두가 이마을 주민들의 자랑이요 훈장처럼 빛나 보였다.


마을이 깨끗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항상 누군가가 청소를 하거나

또는 오물이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거나 최소한 어느 하나를 실천해야 하므로

이 마을에서는 안 버리기에 더욱 주력한 것 같았다.


새마을지도자 일행은 이 마을에서 더욱 밝고 명량해졌고

이곳 주미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서 하루의 공식일과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11월 19일.


비가오는 가운데 아침이 밝아왔다.


하루에 꼬박 세 번씩 먹어야 하는 식사 때마다

20여명이 흡족한 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날 저녁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을 찾아 김치찌개 정식 식사를 했으나

아침식사가 마땅치 않아 망설이다가 우리의 통역을 맡은 김군의 제의에 따라

마침 우리가 오전에 방문해야할 농업발전위원회 가까이 있다는 중국식 식당을 향해

버스를 타고 찾아 나섰다.


버스는 바람을 타고 촉촉이 내리는 비 오는 거리를 미끄러져 갔다.

오가는 사람도 달리는 자동차도 한적한 인애로(仁愛路)거리로 들어섰다.


큰 도로 한복판에는 넓은 중앙분리 녹지대가 있고 양쪽의 차도와 보도사이에

각각 녹지대가 양쪽을 갈라놓아 도심지를 달리면서 시골의 정원을 달리는 것 처럼

아름답고 멋이 있었다.


특히 넓은 녹지대에 심어놓은 크고 작은 열대식물의 가로수는

서로 모양을 자랑하듯 우뚝우뚝 서 있어 불어오는 바람에 장단 맞추어

춤을 추는 나무 잎사귀의 모습이 더욱 멋이 있어 보였다.


불현듯 한 폭의 그림에 가득 담아보고 싶기도 하고 또한 정다운 사람과 손잡고

오래도록 비를 맞으며 거닐어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건강한 도시를 건설하여 가꾸는 일도 바로

그 도시에 사는 시민의 일이며 책임이 아닐까?


우리의 수도 서울에도 돌아보면 세계 속에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답고 멋진 곳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서울을 밝고 맑고 건강하게 깨끗한 서울로 가꾸기 위해서는

지금 새마을지도자들이 앞장서 전개하는 "내 집앞 내가쓸기"와

자연보호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하는"안 버리기운동"은

더욱 활기차게 벌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계속해서 같은 로타리를 몇 번째 돌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김군은 버스 맨 앞자리 운전기사 옆에 앉은 채

딱 한벅 찾아갔던 그 아침 잘하는 식당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개미 체바퀴 돌 듯 로타리만 벌써 몇 번째 돌고 있었던 것이다.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차에서 내려 전화를 하고 나서도 또 마찬가지였다.

30분후에야 겨우 식당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가 지저분한데도 청소를 하지 않은 탓인지

또는 불친절한 종업원 탓인지 모르지만 콩국물에 적셔 먹는 빵으로 된

중국식 아침식사가 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식당을 찾아 해맨 시간 때문에 서둘러서 행정원 직속 농업발전 위원회에

약속한 9시30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거듭 고마운 일은 우리나라 내무부와 대사관에서 미리 연락을 하는 등

수고를 한 덕분에 정해진 일정에 따라 도착하기만 하면 바로 회의실에 안내되어

필요한 브리핑을 들을 수 있었다.


농업발전 위원회는 9명의 상설위원회로 구성되어 정부의 농업 및 축산정책과

농업발전을 위한 연구, 농민조직인 농회의 육성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대북은 지형상 해발100m 이하의 평지는 겨우 29%에 불과하여 경지면적이 적어

농가 한가구당 평균 경지면적은 1㏊에 불과하지만 한 때 중농정책으로

도시근로자가 농촌으로 유입하기도 했으나

최근 농업인구는 전인구의 21%로서 해마다 감소추세에 있어

정부는 유능한 농민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학교출신에 대한

장학정착기금으로 100만엔티달러(한화 약 2천만원)씩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꾸준한 노력으로

비교적 균형을이루고 있으나 아직도 100:70의 비율로

도시민의 소득이 앞서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농촌에도 TV보급률이 95.2%이고 전화, 냉장고 등의 보급률은

도시에 뒤치지 않는 살기 좋은 농촌임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주요 농산물은 쌀ㆍ소맥ㆍ사탕수수ㆍ버섯ㆍ아스파라가스등 인데

농산물의 수출량이 16억불로서 총 수출량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었고

농업발전을 위한 농경지정리, 농업의 기계화 등에 주력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그밖에도 축산장려 정책으로 특히 양돈의 가격안정을 위하여

과잉생산 시에는 정부에서 수매냉동보관 함으로써 생산의욕을 북돋우고 있는데

농산물의 가격 안정이 중요한 과제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대북에 와서 행정원 각부의 현황을 청취하면서 세계는 모두 한시도 쉬지 않고

각자 자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지금껏 나 자신은 무슨 일로 국민의 복지증진과 조국 벌전에 기여해 왔단 말인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