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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다가 죽은 후의 대화

이보규 2007. 9. 6. 23:01
 

               내가 살다가 죽은 후의 대화 

                                                                                                             청암 이 보 규


일생을 사는 동안 병에 걸리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살다가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 무릎이 아파서 여러 달을 고생하고 보니 참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순간마다 고통을 받고 살아온 시간이 참 많았다.

그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한 횟수만도 다섯 번이였다. 

그렇지만, 건강을 유지하려고 쏟아온 시간과 노력이 적지 않았기에 오늘까지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땀 흘려 노력해온 일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뿐이 아니었다.


학창시절이나 직장생활에서도 때마다 고비마다 피할 수 없이 넘어야 하는 언덕,

각종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느라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내고 또 고생을 이겨내고 살아왔다.

 

직장생활 하는 중에도 봉급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공무원으로서

때로는 직장을 박차고 나오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꾹 참고

땀 흘리며 눈물을 삼키고 꾹참고 일 했던 지난 세월의 경험들은 잊히지 않는다.

 

오늘도 대학에서의 강의나 특강 약속을 지키려고 고통을 참고 아푼 다리 끌고 가서 땅을 딛고

강단 위에 서서 목에 핏줄 세워 열정을 다하여 강의하는 내 모습은 

지난날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맥락이고 모두가 결코 예외가 아니다.


직장에서도 자리를 유지하고 승진을 해야 하는 목표를 두고 있기에

평소에도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밤을 지새워 일하면서도 불평을 나타내지 못하고

때로는 비굴할 정도로 아부하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다른 말로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그와 같이 처신한 자신이 미워서 괴로워하고 혼자 눈물 흘리던 일은 나 혼자 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도록 하기 위해 하기 싫은 말과 서툰 몸짓으로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부끄러운 일 때문에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기도 하고

모르면서도 아는 척 너스레를 피우기도 하고 알면서도 모른다고 시치미 뚝 띠기도 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긴장하고 초조하고 아쉽고 부족하여 채우려고 몸부림치고 하는 내 모습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나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자식의 행실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고 억 박자로 방황할 때

마치 나의 삶 자체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답답하고 슬어서 괴로워하던 순간이 한두 번인가.


그러나 이제 주변을 돌아보면 공직 생활을 할 때 그렇게도 악착같이 승진을 위해

몸부림치던 사람도 이제는 암 걸려 이 세상 떠나가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생명 걸고 집념을 보이던 그 사람도 그렇게 번 돈

모두 그대로 이 세상 남겨둔 체 이미 사라졌다.


건강을 지킨다고 운동을 신앙처럼 숭상하던 그 선배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골라 먹고 다니고 몸에 좋다는 약을 찾아 생명 걸고 전국을 누비던 선배도

어느 날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았다.


같은 직장에서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계속 그 자리를 지키려고 수시로 거짓말하고

남을 비방하고 무시하고 뒷조사하고 지능적으로 괴롭히든 친구 상사가 있었는데 

그래도 모른 척 바보인 척 너털웃음으로 그렇게 대해 주었다.

 

그분도 어느 날 퇴직한 후 암 수술 후 스스로 병 고쳤다고 자랑하고 웃으며 함께 식사했는데

어느 날 별세 했다는 연락받고 그 영정 앞에 서서 나는 한동안 눈을 마주하고 

마음속으로 웃어주고 나서 머리 숙여 분향했다.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예외 없이 떠나야 하는 이 세상!


더불어 사는 한 세상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덕으로 이웃에 나누고 베풀면서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뇌 툭툭 털어 버리고 남에게 늘 얼굴에 늘 미소 보이며,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누워서 밥 먹지 말고 누운체 볼일 보지 말고

어느 사람에게도 미움받지 말고 뒤에서 손고락질 당하지 않도록 당당하게 조용히 살고 싶다. 

 

어느 날 이 세상에 떠날 때는 작은 아쉬움만 남겨둔 체 자식들에게는 미소를 보이고

아내에게는 손 마주 잡고 "당신 사랑 고마웠소, 그리고 나도 사랑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 말 한마디 남기고 조용히 고통 없이 이 세상을 떠났으면 참 좋겠다.

 

내가 죽고 난 다음, 국화꽃 몇 송이로 장식한 영정 사진 한 장 걸린 빈소에

가까운 친구들이 찾아와서 눈물 삼킨 눈빛으로 서로 이별해 주었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돌아간 자리에 자식들과 가족 친지들이 한적한 시간 모여 앉아

내가 사는 동안 보여준 좋은 모습들만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이제부터 라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