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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늘 (대서울 7호 1971년)

이보규 2007. 11. 17. 21:06

                                    

                          서울의 하늘

                                              이 보 규 <행정과>

                       * 서울시에서 발행한 월간지 "대서울" 7호 (1972년)에 게재한 글을  원문 그대로 옮긴다

며칠 전 신문에 공무원 부정사건이 또 크게 보도되었다.

꼭 그날 신문에만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공무원 부정사건이 보도되었을 때마다

왠지 착잡해지는 것은 내가 공무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용인즉 우체국에 근무하는 직원이 외국에서 고국 가족에게 보내온 우편물속에서

송금수표만을 몰래 가로채어 착복 하여 오다가 덜미를 잡혀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야 나로서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아무튼 딱한 일이다.

외국에서 고생하여 번 돈을 가족에게 보내온 갸륵한 정성이 헛되어�으니 말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했을까?

“처녀가 임신 해도 할 말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그로서도 물론 이유야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우체국 직원은 봉투 속에 송금수표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아무 일 없지만 몰래 꺼내 쓸 줄도 알았다면,

그보다도 단 한가지 그 후에 반드시 구속이 될 줄도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 전체 공무원에게 미칠 영향과 사회적 책임은 물론

국민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꼭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누구나 공무원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지식이 객관적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일정한 절차를 통하여 임명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그러나 지식 가운데는 꼭 필요한 것은 알지 못하고 차라리 몰랐어야 좋은 것을

고 있는 것도 식자우환의 하나라고 하겠다.

 

퍽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시골중학교에 아주 젊고 훌륭한(?)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수업시간이면 간혹 교과서에도 없는 내용의 이야기를,

손으로 제스처를 써 가면서 목에 핏줄을 세워 큰 소리로 말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모두 기억이 안 나지만

다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한 구절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 지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도 정비례하여 그만큼 많아진다.」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예를 들어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나보다 모르는 것이 분명히 많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의외에도 대답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종이 울려 그 이야기는 일단 끝나고 말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라도 늦게나마 그 이야기의 참, 뜻을 이해하게 되었음은

로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늘의 현실에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먼저 왜 이 글을 지금 쓰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또 이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는 물론이고

몇몇 악우(惡友)가 술좌석에 앉으면 그들의 입에서 나올 독설도 이미 알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 얼굴에 왜 주름살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제 가정에서 나의 위치와 직장에서의 직위로 분명히 알고 있다.

지난날 눈물을 흘려야 했을 때 왜 웃고만 있었는지도 알고 있다.

 

내 나이가 더해 가면 식구가 늘어날 것과 아기가 성장해가면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도 잘 알고 있다.

 

높은 빌딩이나 많은 자동차의 주인이 분명히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왜 고작 15원짜리 만원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모두 세 식구 먹고사는 일마저 쩔쩔 매여 결국 콩나물 국 끓여놓고

아내의 바가지(?)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또 그것만도 아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어떤 고생을 하고 있으며

지금쯤 서울에 있는 셋째 아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 담배를 못 끊어 버리겠으면

차라리 신탄진이나 아껴 피워도 과분한데 어찌하여 주머니 속엔

사기 어려운 청자 담배를 넣고 그 비싼 한 개 5원짜리 꽁초를 마구 버리고 있으며,

집에선 셋방 신세도 못 면하고 선풍기마저 없어 4년째 부채 한개 가지고

계속 사용하여 낡아 빠진 것도 버리지 못하면서

남의 많은 돈으로 꾸며 놓은 다방에 않아

에어컨 성능이 좋으니 나쁘니 하고 익살 좋게 시비를 하는 뱃심 좋은 저의도 알고 있다.

 

우리 공무원은 누구를 막론하고 지켜야 할 신조를 삼고 있다.

먼저 민족중흥에 앞장 선 영광스러운 길잡이임을 자부할 때

결코 그 영광이 청자담배일 수도 에어컨 있는 다방에서의 커피 마시는 일일 수도 없다.

 

따라서 창의와 근면, 친절과 공정으로 국민의 신임을 얻어야 할 것이고

청렴결백하여 겨레의 공복으로 국가에 봉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또 이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거늘 왜 공무원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부정을 저질러 보도 됨으로써 

다 함께 서글퍼지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현 사회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이 있다.

거리에 미니스커트가 행인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던 때도 있었으나

이젠 오히려 찬사(?)가 심심찮게 들리더니

요즈음은 해수욕장에서나 구경할 수 있던 여자 팬티(?)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단속의 대상마저 안 되는지 날로 그 수가 늘어만 가고 있으니

우리의 미풍양속은 어디를 가야 구경할 수가 있을까?

 

좀더 있으면 해수욕장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 여자 배꼽이

거리에도 쏟아져 나올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신록을 찾아 가까운 남산엘 올라갔다가

나도 모르게 당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프래카드가 높이 걸려 있기에 자세히 보니 「어머니 술 마시지 마세요.」라고 써 있었다.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술을 많이 마시기에 자녀의 애절한 호소가

거리로 메아리쳐 나오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숭고하고 자비로운 어머니의 상을 술에 흥청대는 모습으로 바꾸어 상상하니

너무도 서러워 몸부림치고 싶은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연실색할 일은 그것만도 아니다.

 

처녀의 몸으로 자기의 결혼을 반대한다고 해서 애인의 고모 아기를 유괴하여

끔찍한 살인극을 벌였고 거의 같은 날

한 여인은 정부(情夫)가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본처의 아기를 죽여 버린 악부가 있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인지라 불안감마저 감돌아 몸을 움츠리게 했다.

 

왜 이토록 사회 도의가 퇴폐되어 가고 있는지.

사람을 치고 도망가는 뺑소니차가 늘어만 가고 있는데 자수를 하는 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범법행위의 고발마저도 현상금을 걸어도

별로 적극적인 협조가 없는 사회 윤리관은 누구의 책임인지 잘 모르겠다.

 

근래에 와서는 부정부패라는 유괘하지 않은 단어가 뉴스의 각광을 받고 있으며

왜 서정쇄신이라는 농도 짙은 단어를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 가난한 공무원을 매수하여 놓고

더 큰 부정을 합리화하려는 일부 시민의 그릇된 사고방식은 뇌물을 받은 공무원과 함께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 아닐까?

 

우리의 시련이 바로 이것이요. 또 이것을 바르게 쇄신하는 것은 민족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홍수 속에 온통 흐려진 흙탕물이라도 맑은 물줄기는 있게 마련이다.

 

비가 개면 이 한줄기의 맑은 물이 다시 강을 맑게 하듯이

우리가 모두 바르고 맑은 정돈된 질서가 아쉬운 오늘에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지식 모두를 쏟아내어 자신의 부조리부터 먼저 말끔히 바로 잡아

곧고 올바른 민주사회를 이룩하려는 값진 대열에 앞장서서

샘솟는 한줄기의 맑은 물처럼 사회 정화에 앞장 섰노라 자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먼 훗날 귀여운 자녀 앞에 떳떳하게 지난날 어버이가 살던

서울의 하늘을 높고 푸르게 맑게 지켜서 물려주는 전통을 세워 보는 것이 어떨까?

서울의 하늘은 맑고 드높아져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욱 맑아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