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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인 당신의 보람 ( 대서울 1호 1971년 )

이보규 2007. 11. 17. 23:02

 

당신 모두의 보람


                                                                                           이 보 규  <행정과>

                               이 글은 서울특별시에서 발행한 월간지"대서울"1호에 게재한 글을 당시 원문대로 옮긴다.

 

사람들이 태어나서 그런대로 각각 알차게 살아가는 바탕은

어떤 삶에 대한 값진 보람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일에 참여하게 되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일생 직업이 되어 살아가는 예는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군에서 제대한 후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것이 인연이 되어

다행히 나보다 더 잘 쓴 사람이 적당하게 없는 덕분으로 합격의 즐거움을 맛보게 했고

발령이라는 기쁨을 받아 동사무소로 가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어언 4년 전―나도 모르는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일생 갈 길을 확정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직원 모두가 쟁쟁한 실력과 창의적인 능력으로

550만 시민의 생활 향상과 대서울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지혜와 정열을 집중하는 곳

시청의 지정된 한 책상에 앉아 정(市政) 일부를 같이 걱정하고 함께 계획 추진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꼭 공무원 생활을 통해서만 들어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자신들의 삶이 보람되지 못하다고 털어놓는

선배나 동료의 푸념을 들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세상을 멋없게 살아간다거나 비참한 현실이니

쥐꼬리만 한 봉급에 매어 달린 가족들이 서글프다거나

또는 그럴듯한 예를 제시할 때마다 그것은 정신건강면에서 결함을 지닌 사고방식이라 생각했고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일축해버릴 수 있었다.

 

지난 4년의 시간들이 꼭 값지고 보람 졌기 때문일까?

처음 동사무소로 출근하던 날부터 징집영장 전달로 시작해서

서무 담당으로 일하는 동안 오물수거 수수료징수, 각종 시세 재산세 등의 징수,

적십자 회비 등 잡종금 모금, 영세민 구호사업, 조기 청소, 가로 정비,

주민등록신고 업무 등이 겹쳐 반복되는 가운데, 저녁에는 학교를 나가야 했던 나는

시간마다 공백 없이 일을 모두 엮어 놓아 노다지 광맥을 찾은 광부의 눈처럼

자신이 지닌 능력 모두를 그곳에 집중하고 보니, 코피를 쏟는 일은 예사였지만

고등학교 때 신문 배달로 학비와 식생활을 동시에 해결하던 때의 보람과는

달리 더 크고 값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담당구역의 순찰이나 가정을 방문할 때면 한결같이 주민들이

어려움을 털어놓고 상의하여 오고 혹은 청소문제, 민원서류처리, 자녀교육문제,

심지어는 부부싸움 후 카운슬링 역할까지도 하게끔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마다 주민의 요망 사항을 해결하는데 다소나마 힘이 될 수 있을 때,

주어진 임무를 소신껏 착실하게 수행했다는 즐거움은 물론 “우리 젊은 동서기”라는

닉네임에 어떤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구청으로 발령을 받고 떠나면서 한편으로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처음에 가정을 방문할 때면 그렇게도 짖어대던 사나운 맹견들까지

꼬리를 쳐 반겨줄 만큼 친해진 주민들의 곁을 떠나는 내 마음은

흡사 시골처녀가 혼기가 되어 산골마을에서 읍내 장터로 시집갈 때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구청총무과에서 1년, 또 시청 행정과로 온 지도 해를 바꾸었다.

내가 참다운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엉뚱한 이야기인 줄 모르나 학생 시절에 자신 없는 과목을 대할 때면

공부할 시간은 충분히 없고

결국 대포(중요한 문제만을 간추려 시험 준비하는 것을 대포라고 했음)를 쓰게 되는데

마침 적중하여 시험에 그것이 출제되었을 때 쾌감은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설명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이곳 행정과의 일은 거의가 절대적으로 구ㆍ동행정의 실태 및 현황,

문제점 등을 파악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보면

짧은 동안에 열심히 일선에서 일하여 경험으로 얻은 지식은 바로 살아 있는 지식이 되었고

흡사 그것이 학생 시절에 대포가 명중했을 때처럼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대부분 매일 밤늦도록 야간작업은 물론이고

나에겐 토요일 일요일마저도 아무런 다른 의미가 내포되지 않은 체

다만 캘린더에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보면 결코 아내의 말이 무리는 아니다.

“사무실 때문에 태어난 사람”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삶의 보람과 정비례한다.”

라고 비꼬면서 투덜대며 짜증 부리던 아내의 말이 모두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의 진심을 이해한 아내는 스스로 지쳤는가 보다.

 

늦게라도 집에 들어가면 별로 짜증어린 얼굴도 볼 수 없고

말없이 조용하게 책을 대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걸 보면

여간 고맙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도 아기와 함께 적은 봉급으로 살림을 꾸미느라고 고생이 많은 아내 곁에 다정히 앉아서

시민 모두를 위하여 일하고 있음을 자랑해야겠다.

그리고 참된 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남편을 가진 영광은

「당신 모두의 보람」으로 간직하여 보다 알차고 화목한 가정을 이룩해 나가자고

군밤을 앞에 놓고 먹어 가면서 다시 한번 다짐해야 겠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인 일 없는 우리만의 행복에 찬 미소를

온 방안에 가득하도록 한없이 주고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