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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해답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이보규 2008. 7. 2. 08:17

제96호 (2008.7.2)


촛불의 해답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이 지 양(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지구촌 곳곳이 자연재해로 고통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는 천만 다행으로 그런 불행은 피하는가 싶더니, 그 틈에 우리끼리 겪는 사회적 갈등과 불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피차 감정이 더 격해져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져버렸으니, 어쩌면 좋은가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심정이다. 거의 내전(內戰)을 방불케 하듯이 연일 끔찍하게 사람이 다치고 있다.


일찍이 성호 이익 선생은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息戰]」는 글에서, 그 이유를 피차 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기는 쪽도 망하고 지는 쪽도 망하므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차 일선에 나선 자는 칼날에 죽고, 집에 있는 자는 굶어 죽게 되는데다, 이기는 경우라도 백성은 피곤해지고 임금은 교만해져서 상황을 나쁘게 악화시키므로 이긴 쪽도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우리는 망하고 싶은 것일까? 누구든 망하고 싶다면, 빨리 망하는 지름길은 매일 싸우면 된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흥하고 싶다면, 서로 도와 협력하면 된다. 이것 역시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성호 이익, “피차 망하니까 전쟁은 그만 두어야”

 

지금의 촛불집회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잘못하고 왔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들에게 그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다른 대처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잘못을 은폐하거나 호도하려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촛불 집회의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그러자 치안에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하여 물리적으로 해산시키려고 했고, 촛불집회도 도리어 과격해졌다. 그러는 동안 이 문제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촛불집회는 중지될 기미는커녕 다시 결집력이 커지고 있다. 마치 외계인들끼리의 충돌처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며칠간 신문기사 가운데는 <靑 "'촛불집회' 표현 쓰지 말라, 인내 한계 넘어섰다"> <한나라 "정권, 시위대 중 하나는 끝장 봐야">라는  제목도 보인다. 이런 말들이 과연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는 말들일까? 보자말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저런 마음밖에 안되니, 눈만 뜨면 때곡때곡 쌈질을 해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제 정말 양쪽에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고 싶다.


먼저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노무현 정권 초기부터 대규모 촛불집회가 한두 건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까지 포함해서 촛불집회가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아마 2004년 효순이 미선이의 희생과 관련된 촛불집회일 것이다. 그것은 불평등한 한미소파협정(SOFA. 주한미군주둔협정) 개정을 요구해 동등한 한미동맹을 요구하는 반미시위의 기폭제가 될 듯이 거센 기세였다. 그러나 그 이후 올해 이 시점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에서 방위비분담은 한국 측의 방위비 분담 비율을 50%로 늘려줄 것을 거듭 요구받고 있는 반면, 미군 범죄에 대한 재판권 문제는 하나도 개선되지 못했지 않나? 올해도 동두천에서 벌어진 미용실 미군 강도방화사건이 또 하나의 치욕적인 사법주권 포기 사건으로 보도되었지 않나?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촛불집회로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감정풀이? 그럴 때 큰소리 한번 쳐보는 한풀이였던가?


싸움만 하고 말 건가? 각기 제 할 일이 문제!


독도 문제가 나올 때마다 규탄하고 떠들지만, 돌아서서 일본 대중문화에 넋을 팔고, 일본 방송 베끼고, 일본 전자제품과 일본 자동차에 탐닉한 사람은 누구인가? 미국 쇠고기 수입 규탄하고 돌아서서, 애들 데리고 맥도날드며 버거킹에 가서 햄버거 사먹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부가 협상을 어리숙하게 하고 왔을 때, 그 다음에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은 자기 입과 배를 단속하는 것이 아닌가? 사먹지 않으면 수입해도 소용없다. 우리는 자기 단속에 자신이 없어서 남 탓에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닐까? 일단 남 탓을 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떠넘기고 나면, 그 다음은 삼겹살보다 싸고 품질은 좋다는 미국산 쇠고기를 맘 편히 실컷 사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필자 개인적으로는 촛불집회보다 미국산 쇠고기의 소비량이 어떨지, 지속적으로 어떨지가 더 주목된다. 국민의 자존심, 한 인간의 자존심은 실천에 달린 문제이지, 떠들고 싸우는 솜씨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와 국회에 물어보고 싶다. 국민을 향해 “인내 한계 넘어섰다”느니, “정권, 시위대 중 하나는 끝장 봐야”라느니, “시위대와 함께 하겠다”느니 말하는, 이런 수준의 당신들을 뽑은 것은 물론 국민의 잘못이다. 이즈음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이 왜 이리 뼈아프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당신들이 하는 이 말들이 당신들의 뿌리이자 근본인 국민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말들인가? 적대 세력이 전쟁을 선포하는 말이거나, 첩자들이 이간질 하는 말이지! 창피함을 모르는 것이 더 암담하다. 당신들이 국민 대표로 일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잘못할 수 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위생 검역과 유통 체계, 국민위생에 대한 법률과 행정을 어떻게 정밀하게 다듬어서 어떻게 국민건강을 지키는데 만전을 기할 것인가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왜 싸움 현장에 드나들면서 자기 할 일을 하지 않는가?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할 때, 직접 가서 안전성 여부를 보라고 해서 정부측에서, 그리고 민간단체에서 다녀왔었다. 그러나 두 팀의 의견이 완전히 달랐고, 우리 측의 자체 정보가 부족해서 다른 나라들의 정보에 의지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파병만이 국익을 위한 유일한 길이요 우리가 살길인 것처럼 했던 그 판단이 옳았는가, 글렀는가는 아직도 모른다. 그때 파병을 안 하는 것만이 인간의 양심을 지키고 인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인 것처럼 주장했던 그 목소리들이 현실 속에서 옳았는가 그것도 아직 모른다.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닌 것이다. 그런 것이 단순하게 생각해서 판단 가능한 문제들인가?


올바른 판단과 실질적 대처를 위해


오늘날 우리는 점점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음식물이든, 약품이든, 군수품이든 다국적 기업과 강대국이 제공하는 정보의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면 그들이 원하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은 현실의 고통을 겪을 때가 되어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을 뿐이고, 그것을 정책으로 결정하거나 동의하는 관료나 국회의원은 옳다고 정의감을 가지면서 속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과거에는 물질로 뇌물공세를 하니 양심의 가책이라도 받았겠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정보사회이다. 정보와 전문 지식이 부족하면 떳떳하다고 믿으면서 속게 되지 않는가! 그렇게 저지르는 문제가 정말 문제인 것이다. 옳다고 믿으면서 종속되게 만들기에 그렇다. 강자의 이론에 종속되는 약자는 졸개가 되거나 먹이가 될 뿐이 아닌가!

시간도 부족하고, 물자도 부족하고, 협력도 부족하고, 모든 것이 부족한 이때, 왜 우리는 눈만 뜨면 우리끼리 싸우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토록 명백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끼리 때려잡지 말고, 우리도 힘을 합하여 실질적으로 대처 좀 해보자! 국회의원들이야말로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 자리로 일하러 가기 바란다. 여론에 편승하며 이리저리 나부끼고 돌아다니는 모습, 정말 더 이상 봐 줄 수가 없다. 자기 일터에서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라.

 


글쓴이 / 이지양

·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 논문:「연암 박지원의 생활 특징과 문화예술사상」(『한국한문학연구』36집, 2005)외 다수

· 저서 : 『홀로 앉아 금을 타고』, 샘터사, 2007

· 번역서(공역): 『역주 매천야록(상.하)』, 문학과지성사, 2005

                    『역주 이옥전집』, 소명출판, 2001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000

                    『조희룡전집』, 한길아트,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