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송년회 유감
청암 이 보 규
매년 연말이 되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평상심을 잊어버린다.
연말이 다가오면 거리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하고
예쁜 네온사인과 점멸등이 유명백화점과 업소와 빌딩에 늘어나고 있는데
요즈음은 아파트에도 화려한 점멸등이 단지 내 나무에 장식되어 주택가에도 분위기를 들뜨게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화사하게 들떠서 어디라도 떠나야 할 것 같고
또 잊힌 사람들이 생각나고 누구라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 모임을 부추긴다.
옛날에는 시청 앞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송년분위기의 상징이고 모든 장식의 원점이었다.
광장에 트리를 설치하고 나서 점등식 때면 시장이 참석하고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는 성가대가 찬송을 부르고
구경을 하려는 시민이 몰려들고 카메라맨들은 사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은 연말분위기로 가는 시발점이었다.
그 무렵이면 크고 작은 모임의 리더와 총무는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면서
꼭 참석하라고 전화로 편지로 문자로 독려하는데 거의 협박(?)수준이다.
다른 사람들은 송년회로 모이는데 혼자만 그 시간 집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으면
왕따 당한 패자와 같은 기분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서서 앞다투어 참석한다.
동창회, 친목회, 교회, 사회단체, 직장모임 등에 부부동반 모임이나 혹은 혼자 가는 모임 등
12월에는 거의 매일 저녁에 일정이 잡히고 요즈음은 오찬 모임을 하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두세 곳이 중복되기도 한다.
두 곳일 경우 한곳은 시작할 때 참석하고 중간에 나와서 또 다른 송년회에 참석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고
한쪽을 아예 포기하고 한곳에 가서 끝까지 그 자리의 모임을 즐기기도 한다.
간혹 혼자 비용을 모두 부담해서 공짜로 먹고 오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가는 곳마다 회비를 내야 한다. 호텔이나 고급식당 등 식대가 비싼 곳에서 열리면 개인별 부담도 적지 않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옛날 같지는 않지만, 송년회에서 제일 부담이 되는 것은 벌어지는 술판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거나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데 자꾸 권하는 것도 부담되지만
술이 먼저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을 듣는 것도 또한 고역 중의 하나이다.
이제 술을 억지로 권하는 풍토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송년회에서는 폐습으로 남아 있다.
정말로 분위기를 흐려지게 하는 것은 자신의 말과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는 경우이다.
매년 같은 사람들끼리 늘 모이다 보면 화제의 빈곤이 불가피해서 참석자들이 금방 실증을 느낀다.
동창회에 가면 매년 그 이야기 또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어떤 말이라도 여러 번 들으면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다른 사람의 말 할 기회를 주지 않고 원맨쇼 하는 것도 걱정이지만
더욱 싫은 것은 다른 사람의 험담을 늘어놓는 경우이다.
죽일 놈이니 나쁜 놈이니 하면서 목청을 높여서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고 나서고
듣기 싫은 옛날이야기 단골메뉴로 들추어내어 재탕 삼탕할 때는 인내심이 없으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더욱 조심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 자랑이다.
돈 번 이야기나 자식이나 건강이야기 등은 언제나 단골 메뉴지만 지나치게 자랑을 하게 되면 오히려 불쾌하다.
그래도 용서가 되는 경우는 그래서 오늘 비용은 자기가 부담한다고 하면 박수를 받지만, 추가 음식까지 더 시켜 먹고도
개인별로 분담하는 회비마저도 안 내고 그냥 가는 사람은 뒷모습이 씁쓸하다.
이제 올해의 송년회는 절반은 지나갔다.
멋진 송년회는 부부 동반하여 명사 초청해서 특강 듣고 재미있는 구경도 하고
그리고 헤어질 때 정성어린 선물 하나씩 나누어 주어 받아 들고 눈 날리는 길 걸어보면서
정겹게 보내는 송년회가 뒷맛이 참 좋다.
더 좋은 송년회는 불우노인 수용소나 장애자 집단거주 하는 곳 등 어려운 이웃들 찾아가서
그들을 즐겁게 함께 놀아주고 금전적으로 금일봉 전해서 연말에 도움을 주고 더불어
보람을 느낄 때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와 같은 송년회를 해야 한다.
멋지고 또 가고 싶은 송년회는 매년 한두 번이고 다른 송년회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구성원의 일원으로 참석하는데 뜻이 있어, 중복되지 않으면 찾아가서 참석한다.
어디 세상이 나 혼자 사는 세상인가?
한국 경제가 어렵고 전 세계의 경제가 어둡다.
따라서 올해의 송년회는 될 수 있는 대로 검소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모여서 다른 사람의 흉도 덮어주고 감싸 주면서
서로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상대를 배려하는 덕담을 주고받으면 더욱 보람이 있을 것이다. 끝
'...♤ 이보규와 생각하기 > _ 이보규자유로운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의 현주소-미국도 무시 못하는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 (0) | 2008.12.27 |
---|---|
2008 년 한 해를 보내면서 송년 인사문 (0) | 2008.12.24 |
지하철 탈 때 보기 싫은 사람 (0) | 2008.11.29 |
대중목욕탕 애호기 (0) | 2008.10.31 |
서해안고속도로는 해안고속도로가 아니다. (0) | 2008.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