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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목욕탕 애호기

이보규 2008. 10. 31. 08:23

 

                대중목욕탕 애호기

 

                                                                                                                           청암 이 보 규

 

농촌에서 자라난 나는 목욕은 여름철에만 냇가에서 하였다. 겨울철에는 30리 길을 걸어서 수안보 온천에나 가야 겨우 몸에 때를 씻을 수 있었다. 게다가 돈을 내야 했으니 그림의 떡이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가마솥에 물을 끓인 다음 대야에 뜨거운 물 퍼부어 발만 씻고 나면 그것이 목욕의 전부였다.

 

본래 나는 씻기를 싫어했다. 누군가 야단을 쳐야 마지못해 겨우 씻는 척했다. 군대 생활에서도 목욕은 형식적이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서울 생활에서도 목욕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귀찮은 행사일 따름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마찬 가지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버티고 겨우 손과 발을 닦을 정도였다. 그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서야 몸의 때를 씻어내고 돌아왔다. 머리를 감는 일도 그랬다. 이발소에 가야만 감았고 집에서는 머리비듬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감았다. 내가 어느 때부터 목욕탕 애호가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시청에 근무하던 70년대 소위 사우나탕 맛을 알게 되면서부터 아닌가 한다.

 

명동의 라이온스 호텔과 청계천로에 있는 삼호사우나가 서울의 명소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토요일 일찍 일이 끝나면 오후 상사들과 동료를 따라 그곳 핀란드식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고 나서 가운을 입고 룸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맛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체험이었다.

 

그 무렵 호텔마다 우후죽순처럼 사우나시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나는 더욱 사우나탕을 찾아다니는 일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그 무렵에는 우정을 돈독하게 하려면 벌거벗고 마주 앉아 땀 흘리는 것이 최고라고 했다. 강남 청담동에는 10층 건물 전체가 사우나시설이었다. 사우나 접대가 생기고 사우나를 무료로 출입할 수 있는 회원권을 선물로 받기도 하고 일회용 사우나 티켓이나 무료로  회원권을 얻어서 시간만 생기면 그곳에서 땀 흘리며 휴식을 취했다.

 

친구끼리 모여서 고스톱을 치는 사교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바둑을 두기도 하고 교회의 소그룹 모임도 사우나탕의 룸을 이용하기도 했다. 나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이 사우나에서 불러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바로 쫓아가서 함께 즐겼다. 나는 평소 술을 전혀 마시지 않으니까 사우나 이용이 취미이자 사교의 장이었다. 이용권을 늘 조달해 주는 친구들이 많았고 덕분에 항상 서울시내 유명 사우나 이용권을 가지고 다녔다. 일상처럼 타워호텔, 라이온스호텔. 올림피아호텔, 리베라호텔 등을 번갈아 가며 다녔다.

 

그 무렵 강남에 소위 대중사우나가 등장하면서 동네 목욕탕도 차츰 고급화되기 시작했다. 옛날 동네목욕탕에서 항상 보면, 탕 속에 뿌옇게 둥둥 떠다니는 땟물을 매미채로 종업원이 거두어 내던  모습은 어느 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미 어느 목욕탕서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강남 대치동에 거주할 때는 매일 아침 등산하고 대중사우나에 들려 땀 흘리고 나서 출근하였다. 퇴근길에 또 사우나탕을 들렸다가 귀가하기도 했다.

 

내가 사우나에 집착하게 된 또 하나의 사연은 고관절 수술 후 체중을 줄이라는 의사의 권유 때문이기도 했다.

다리가 아파서 다른 운동을 못하니까 덜 먹고 땀 흘려 체중관리를 하려고 목욕을 생활화하게 된 것이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이제는 목욕탕에서 땀을 흘리지 않으면 몸이 무겁다.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과 시설이용 방법도 달라지고 행태도 여러 가지로 변했다. 처음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나서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버티어 내며 체중 줄이려고 땀을 쏟아내다가 어느 때부터 피부건강과 정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냉ㆍ온탕에 번갈아 가며 즐기다가 요즈음은 혈액순환과 건강에 좋다고 해서 반신욕에 빠져 있다.

 

목욕문화도 시절을 따라 때를 씻으려고 다니던 목욕탕이 한동안은 사교와 휴식을 겸해서 피로를 씻으려고 가고, 또 체중을 줄이려고 가고 건강을 증진하려고 가고 또 목욕탕 이발소에 머리를 자르고 염색하려고 다닌다. 목욕탕을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 중에는 습관처럼 매일 다니는 사람도 많다. 얼굴만 서로 알뿐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주소도도 모르지만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에덴의 동산의 아담처럼 벌거벗은 체 아무런 장식도 꾸밈도 없고 모두가 열린 마음이다. 반신욕을 하며 중얼거리는 사람, 누워서 잠자는 사람, 때 밀고 누워 있는 사람, 혼자서 비눗물 전신에 바르며 때 닦는 사람, 냉탕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 염색하고 머리감는 사람 등 형형색색이다, 구두 닦아주고, 때도 닦아주고, 청소하는 아저씨는 언제나 즐겁다.

 

요새는 곳곳에 불가마 찜질방이 생기고, 건강 전문업소인 삼마 불가마집도 생겼다. 회원권 제로 운영하는 대형 헬스클럽이 지역 단위의 명소이자 휴식처가 되어 우리 일상생활에 새로운 문화로 자리 매김하고 있지만, 그곳은 돈이 많이 드는 곳이기 때문에 자주 가기가 부담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색깔이 원색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대중목욕탕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파트 상가 지하 1층에 있는 한양 대중목욕탕을 자주 이용한다. 가까워서 가기 쉽고, 시골 사랑방처럼 편하고, 부담도 없고, 자고 있어도 깨우는 사람도, 오래 있어도 나가라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다. 매표하는 주인아저씨가 언제나 반기고 이발하는 아저씨도 늘 친절하다. 목욕탕에서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고, 반신욕으로 땀을 내고, 모처럼 돈 주고 누워서 때를 밀고 상쾌한 마음으로 피로를 털어낸다.

 

목욕이라면 치를 떨던 내가 이제 목욕탕을 끼고 살다시피 하게 되었으니 사람의 습관이 대단히 무섭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