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명당이 어디일까?
청암 이 보 규
며칠 전 구리시청 1층 대강당에서 한양대학교 행정ㆍ자치대학원에서 주관하는 “구리시 목민 아카데미”에서 초청을 받고 특강을 하면서 구리시의 자랑을 먼저 늘어놓았다. “구리시는 서울에서 가장 인접한 도시로서 교통의 요지이고 고구려의 문화가 숨 쉬는 고장으로 아름답고 깨끗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추켜세우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 도시의 자랑스러운 말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마다 그 지역의 특색과 살기 좋은 고장의 장점과 이유를 말하면서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고 강의 기법 중에 자주 사용하는 단골메뉴이다. 관악구 직능단체 워크숍에서 직능단체 참석자들에게 “서울의 관악구는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관악산과 서울대학교가 있는 가장 공기가 맑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말해서 박수를 받았다.
포천시 공직자 비전워크숍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정 도시이며 통일 후에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이 가장 밝은 미래 발전도시”라고 말해 주고 강의를 시작했다. 의정부시청에서 주최하는 의정부 시민자치대학 특강에서는 “서울 북부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며 통일에 대비한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가장 상승할 것이 예상되는 도시니까 이사 가지 말고 계속 살아라.”라고 말해 주었다.
안동시 마을 리더 양성교육에 가서는 “안동시는 예로부터 안동 하회탈과 도산서원 등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곡창지대로서 앞으로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내포된 희망도시”라고 말하면서 특강을 시작했다.
대전에 가서 서구청 사람이 아카데미 특강에서는 “대전광역시는 한국의 중심이고 영ㆍ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대덕 과학단지를 비롯한 가장 발전할 수 있는 요건을 고루 갖추었다.”라고 추켜 주었다. 바로 이어서 다른 지역에 가서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까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지 말라고 웃음을 유도했다.
그 지역에 가서 특강을 할 때는 그 지역 주민들이 공감하는 말을 찾아내어 함축성 있게 요약하여 칭찬하면서 강의를 시작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강의 기법의 하나다. 그런데 사실로 그 도시나 지역에 가서 돌아보면 정말 모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색이 있고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서 그곳에 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주관하는 청해진 희망 강좌에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려고 갔다가 깨끗하고 파란 바다와 아름다운 섬이 아주 좋아서 며칠 머물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서 보아도 아름답고 살고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수도 서울이 인구도 많고 크게 발전하여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국제적인 도시지만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나 농촌지역도 이제는 서울보다 더 아름다운 고장이 잦아졌다.
지방자치를 시작한 이래 자치단체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가꾸어 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다소 부작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조상의 산소를 두고 자손들이 명당을 찾아서 모시는 것 같이 우리도 일생 생활하는 삶의 터전도 분명히 명당이 있을 텐데 우리는 아직 대부분이 그런 생각하지 않고 그냥 편의를 따라 그곳에 사는 것이다.
과연 대도시가 우선이고 주택가격이 비싼 곳이 살기 좋은 명당일까. 아니면 사람들은 어떤 기준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정하는 것일까. 나는 이제 아들 둘이 모두 결혼해서 분가하고 나서도 함께 살던 아파트에 아내와 단 두 식구가 사는 집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서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역마다 모두 특색이 있고 그 지역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막상 내가 이사하려고 생각하니 그 지역 선택이 쉽지 않다.
지금은 꼭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내 고향처럼 정이 들거나 이웃사람들이 지연으로 엉켜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도 아쉬워하며 잡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사하고 싶은 곳은 지하철이 있고 도로망이 좋아서 교통이 좋은 곳. 그리고 집값이 비싸지 않으면서 공기가 맑고 산이 있어 산책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거기에 문화 시설이 더욱 가까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상향은 과연 있을까. 그곳이 어디쯤일까 하고, 자주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남은 삶을 살 곳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선택이 쉽지가 않다. 바로 이곳이다. 라고 생각되는 곳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사를 꽤 많이 다닌 편이다. 신혼 때 세들어 살던 마포구에서 관악구 신림동으로 처음 내 집을 사서 이사했다가 다시 봉천동으로 이사했고 다시 직장 가까이 영등포구 대림동으로 가서 새로 집을 지어 살던 집을 팔고 처음 아파트로 이사하느라고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큰아들 학군(學群) 따라 강남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시골에 사시던 부모님 모셔오느라 방이 많은 송파로 이사한 지 15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꽤 오래 살았고 최근에 이사하려고 생각을 자주 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아버지를 시골에서 모셔 와서 살려고 이사했는데 지금은 이미 돌아가셨고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제일 오래 사는 셈이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방이 네 칸인데 아버지 방 한 칸, 아들 둘의 방이 두 칸, 우리 내외가 쓰는 방 한 칸일 때가 있었지만 이제, 부모님은 모두 천국으로 가시고 아들은 분가하여 모두 떠나고 우리 내외만 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부부침실인 안방과 내 서재와 아내가 기도하는 방까지 모두 두세 칸이면 충분하다.
이제 사는 집을 선택할 때 아이들 중고등학교 학군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부모님의 병원도 고려 대상이 아니고 직장 출퇴근의 편리성도 생각할 필요 없고 오로지 공기가 맑고 대중교통 이용이 쉽고 제일 살기 좋은 곳만 생각하면 된다. 이제 정부에서 1인 1주택에는 양도소득세도 감면해 준다고 하니 집을 팔아도 세금 덜 내도 되고 이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막상 돌아보니 살기 좋은 곳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선택이 어렵다.
이사해서 그 아파트 부동산 값이 올라서 재산이 늘어나면 더 좋겠지만 나와는 인연이 없다. 나는 부동산을 통한 재산을 증식하는 방면에는 소질도 없고 운도 따르지 않는 것 같다. 강남에서 아파트를 팔아서 돈을 훨씬 더 보태서 지금 사는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는데 이제는 팔고 온 그 아파트값이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값보다 훨씬 비싸졌으니 부동산 투기나 재운을 두고는 할 말이 없다.
평소 결단력이 부족한 내 성격 때문에 나는 집을 팔고 사는 일을 나 스스로 잘 결정하지 못한다. 이제 또 아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땅 명당이 여기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로지 상상일 뿐이다.
앞으로 살 집은 서울이 아니라도 좋고 자식들이 찾아 오갈 때 불편하지 않은 곳이면 더 좋겠다. 아직 우리나라는 내 집 갖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내 집 가지고 살면서 무슨 명당 타령을 하고 있는가. 그냥 넋두리처럼 생각을 적어 보면서 나의 지나간 세월을 조명해 보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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