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규가 바라보는 법정 스님의 죽음
청암 이보규
얼마 전에 천주교의 김수한 추기경의 죽음이 감동으로 남아서
지금도 그분의 인자한 미소가 살아계실 때처럼 보인다.
명동성당을 향한 추모 행렬이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도 4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추모객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성직자의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었다.
사랑하라고 말하고 장기기증운동에 앞장서 안구를 기증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성직자로서 몸소 보여주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불교계의 지도자 법정스님이 무소유 운동을 주창하고 그 말 자체로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수많은 작품을 써서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죽어가는 순간에도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그분의 작품을 읽으며 스님이라기 보다는 사상가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사진으로 비쳐지는 그분의 모습은 카리스마가 있는 사상가처럼 보였다. 인자한 성직자 모습이 아니였다.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잘 못하면 금방 불호령이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와 같은 무서운(?) 인상인데 불구하고 따스하고 풍성한 감성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진정한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희생하는 성직자의 모습이었다.
종교 지도자가 바로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이런것이구나를 생각하게 하였다.
법정 스님이 평상에 누워서 잠자는 모습으로 다비식을 치루는 모습을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경건해 졌다.
승광사 어느산 비팔진 곳에 통나무 장작을 쌓아놓고 시신을 불태우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지켜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와 그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우리 개신교 기독교의 성직자인 목사님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카리스마다.
개신교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대부분 대형차에 운전기사가 운전해 주고 비서가 도와주고
평수 넓은 저택에서 좋은 양복 매일 바꾸어 입고 물질적으로 부족함을 모르는 것 같다.
성도들이 헌금한 돈으로 비용을 외부의 예산승인이나 감시 감독 없이 교회내에서 자유롭게 쓰는 모습이
가난하게 자란 우리세대의 눈에는 경건하고 검소한 모습의 성직자로서 이미지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평소 옷차림이나 사무실 분위기에서 호화롭고 사치한 모습으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도 앞에서 예배나 행사 때 목사가 군림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비교 되어 하는 말이다.
이것은 어느 특정 교회나 목사를 구체적으로 지정해서 지칭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대형교회로서 크게 성공한 목사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대게 목사님들이 성도를 만나거나 공식 행사 때 머리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래전에 몇 번 만난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은 풍기는 인품이 검소하고 인자하게 기억된다.
앞으로 생존한 목사님 중에 돌아가시고 나면 자기 교회 성도가 아니고
불교신자나 천주교 신자나 또는 불신자도 함께 그 목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돌아가신 목사님을 기리는 사람들의 애도 행렬이 이어질 수 있을까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본다.
또한 언론에서 그 목사님의 죽음을 애도하고 평소 삶을 조명할 때
온 국민의 공감하고 큰 감동을 이끌어 낼 그 목사가 누가 있을까?
목사가 인기 직업처럼 부흥설교를 위해 교회를 순회하며 그 설교 대가를 받아가는
일부 인기 부흥강사라고 부르는 목사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전도가 사명이고 목사님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법정 스님의 장례를 지켜 보면서 순간 느끼는 점을 이야기 하는것이다.
법정스님은 본인이 대원각이라는 요정 건물을 시주 받아 창건한 절이 길상사라고 들었다.
그러나 절에 신세진다고 하루밤도 주무시지 않고 강원도 시골 오두막집에서 기거하였다고 한다.
대중적인 관심은 성직자로서의 그런 모습이 더욱 돋 보이게 되는 것 아닐까?
교회를 세습화 하려고 하는 기독교의 일부 대형교회의 목사님들과 극명하게 비교되어
오늘날 과연 이시대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성직자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하는 말이다.
불교계의 한 스님이 대중에게 공감을 주는 글을 많이 써서 무소유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소 상식을 뛰어 넘는 삶의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죽음 뒤에 큰 파장을 이르키고 있다.
기독교계의 이와같은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고 목회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서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며
비기독교인에게도 마음속으로 존경받고 이시대를 살아가는 목사가 누구일까.
진정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우뚝서는 대중의 존경을 받는 그런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기독교가 한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오른손이 한 좋은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다.
오늘도 사회 그늘진 곳에 희망을 심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있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대다수 목사님들은 농어촌에서 교도소에서 영세민 지역에서 생계조차 어려운 미자립교회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목사님들도 많다.
세상에는 어느 분야이든 모두가 같고 획일적일 수가 없다.
특히 영성을 가꾸는 일은 다양하고 그 다양성에서 오히려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성은 종교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다.
종교계 뿐만아니라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밝고 명랑하게 가꾸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사회의 부패를 막으려고 소금과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 있기에 늘 그분들에게 감사한다.
끝으로 나는 성남의 분당에 있는 예수교 OOOO 교회의 안수집사임을 밝혀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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