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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로 퇴직한 사람들 모임에서

이보규 2011. 12. 24. 17:25

 

    공직자로 퇴직한 사람들 모임에서

 

                                                                                     청암 이보규

 

 

어제 송파구에서 퇴직한 공직자들의 모임인 송우회 정기회의에 참석했다.

퇴직자 200여명이 모여 북적대고 성황을 이루고 있었었다.

그래도 회원 수 전체에 비하면 참석자는 일부임에 틀림없었다.

송파1동사무실 3층 회의실에 좌석이 입추의 여지가 없어 밖에서 서성이는 이들도 많았다.

 

단상 앞자리에는 전 구청장과 현 구청장 그리고 직전 구청장이 앉았다.

구의회 의장도 와서 있고 출신지역 국회의원도 상석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퇴직 했어도 옛날 현직 때 계급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구청에서 퇴직할 때 서열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았다.

 

구청장 퇴직자는 역시 구청장이고 국장 퇴직자가 아직도 국장이고 과장 같았다.

 

나는 공직 후배가 회장이라 회의에 직함이나 역할도 없어 조금 늦게 도착하여

식사 때나 함께 하려는 생각으로 조금 늦게 도착하니 행사는 이미 진행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오는 옛 동료들과 반갑게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퇴직자 모임에 가서 보면 그래도 늘 참석하는 사람은 대부분 늘 정해 있는 것 같다.

 

첫째, 무엇보다도 자신이 건강해야 나온다.

둘째, 현직에 있을 때 부끄러운 일이 없어야 나온다.

셋째, 연금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직에 있을 때나 지금도 평판이 좋아야지 욕을 먹던 이는 스스로 피하는 것 같다.

 

악명(?) 높던 이들도 있었다. 인사부서에서 표창주면 용돈 받아쓰고

감사부서에서 악명으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소식을 아는 이도 없다.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기관장을 역임 했지만 너무 부하를 닦달하고 괴롭혀서 중간에 타의로 퇴직하는 날

축전이 왔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후 영영 지금까지도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천년 사는 것도 아니고 공직의 그 직책도 잠시 맡아서 일 할 뿐인데

하늘에서 내려 온 사람인양 으스대던 못난이(?) 들도 더러는 있었다.

딸랑딸랑 윗사람 비위 잘 맞추고 소위 빽(?) 줄로 요직만 골라 다니던 이도 있었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퇴직 후에 종적을 감추고 단 한 번도 관혼상제나 모임에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도 간혹 있다.

 

그 사람이 시우지(市友誌)에서 세상을 떠난 회우 명단에서 이름을 발견할 때면 매우 서글퍼진다.

 

삶이란 살면서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반복 하지만 함께 있는 순간에

정성과 본심으로 대하고 항상 부하와 동료 배려해야 다시 만날 때 반갑게 만날 수 있다.

지금이 순간의 만남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교적 행사를 간략하게 마치고 건너편 식당으로 모두 향했다.

삼계탕 집으로 가서 점심이 삼계탕인 줄 알았는데 식당에 가서보니 아니었다.

식탁에 앉아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먹는데 세월이 흘러도 모두 옛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앞뒤에 앉아있는 옛날 동료를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이 빠지고 백발이 되고

얼굴에는 주름과 검버섯이 늘어 가고 있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하위직으로 최근 퇴직한 직원은 아직도 건강하고 젊음을 지지고 있어

얼마든지 뛰어 다니며 일 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도 나이로 정년을 정한 까닭에 아쉬운 친구도 많다.

 

나는 식당 2층 넓은 홀에서 대표로 건배제의를 하였다.

회장이 나를 지정해서 사양하다가 그냥 일어나서 목청을 높였다.

“북한에 김정일 죽는 것을 보니 누구나 병들면 죽습니다.

우리는 병들지 말고 아프지 말고 죽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 숨 쉬며 삽시다.”라고 했다.

다른 멋진 건배사가 있었지만 점심으로 삼계탕 집 닭고기에 어울리는 건배사를 선택했다.

 

옆자리에 전 K 구청장과 직원과 국장이 한 식탁에 앉아 오랜만에 닭고기로 배를 채웠다,

 

어떤 사람은 밥을 챙겨 먹고 또 소주를 마시고 어떤 이는 막걸리를 마시고 

어떤 이는 손사래로 술을 피하는 모습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조용히 밥만 먹고 있는 사람 술을 권하는 모습은 다양하지만

역시 공직자 모임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의식이 회식 자리에도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사회에서 식사자리와 또 다른 질서와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직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퇴직해도 공직자였음을 숨길 수 없다.

돌이켜 보면 공직의 체험이 부끄러운 점도 있고 자랑스러움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역사의 주역이기에 지금도 퇴직자라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명강사 소리 듣고 돈도 벌고 있지만 .....

그래도 돌이켜 보면 누구도 되돌아갈 수 없는 젊은 그 옛날에 공직자 시절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