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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이보규 2011. 12. 30. 11:01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

                                                                                      청암 이보규

 

 

당초 오늘은 연말이라 하루를 혼자 명상의 시간으로 보내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하루 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평소 농사일로 평범한 일생을 사신 초등학교 동창의 부친상 연락을 받아

분당 제생병원에 문상을 다녀와야 하겠다.

 

아침 뉴스에는 또 한 사람 김근태 전 의원의 죽음을 알리고 있다.

재야운동권 학생운동의 한 사람인데 뉴스 중심이 된 소위 고문사건의 당사자이다.

그 후 3선의원에 장관까지 역임했으니 성공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유가 어떻던 요즈음의 60대 초반의 죽음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다소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가야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부자로 살았던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성공했던 실패했던

여당이나 야당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의 삶이나 사상에 대해 항상 평가가 뒤따른다.

특히 정치인의 삶은 더더욱 그렇다.

다만 어느 쪽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상반되게 마련이다.

 

정치의 목적이 결국은 정권쟁취(?)라는 사실을 결코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편을 갈라서서 이합집산하며 세상을 누비며 살다가 떠난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으로 투쟁하는 모습이 늘 안타깝다.

 

상대편 사람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정치 풍토이다.

무조건 무차별 비난하고 비평하고 날세워 공격하는 모습이 우리가 늘 보아온 현실이다.

 

같은 사안을 가지고 여야가 바뀌고 자리가 바뀌면 소신이 또 바뀐다.

그리고 비논리적인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을 종종 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지지층을 확보하려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라는 정치인은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지지층을 모으고

목적을 이루지 못해도 소신을 버리지 않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상대편 정책이라도 소신으로 협력하고 같은 당의 주장도 소신이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설득하고 나서는 성숙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당리당략을 넘어 큰 틀에서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폭 넓은 정치를 하는 사람을 보았으면 좋겠다.

정치인에게 한 가지 사안이 지지를 받았다고 모든 것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사람이 기록 창고에 과거 보물이 있더라도 오늘 토하는 말과 행동이 더 중시 되고 평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오늘 두 사람의 죽음 앞에 드러내고 싶다.

단 한 순간도 정치를 한 일이 없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해 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 해를 마감하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양심에 따라 생각대로 말하지 못한 일과

내 뜻대로 행동하지 못한 점을 조용히 반성해 본다.

생존이라는 명분과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무기력 했던적도 있다.

내가 나의 양심에 부끄러운 점도 어느정도 인정해야 하겠다.

 

이 시점에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이 해를 털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다만 이 세상과 하직하는 죽음은 누구라도 가족과 헤어져야하는 슬픈 일이다.

그래서 장수하셨지만 친구 아버님의 죽음을 위로하여 문상하러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