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 이야기
청암 이보규
경북 김천에서 강의를 마치고 대구 팔공산을 향해 구미 시내를 통과하고 있었다.
내일 S호텔에서 모 기업의 초청 강의를 하려고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네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에 박정희 대통령 생가 4.5Km 이정표가 크게 시야에 들어 왔다.
근대 한국사를 장식한 역사적 인물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나 자란 현장 구미시가 바로 여기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가보고 싶은 충동이 다가왔다.
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방문을 당초 예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은 다른 일정이 없고 호텔에 가서 쉬면되는 날이었다.
내일 강의 일정이라 호기심에 그곳으로 핸들을 돌렸다.
바로 현장에 도착하여 비탈진 언덕에 위치한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갔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한산한 편이었다. 지정된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안내 표지에 따라 생가를 향해 걸어서 올라갔다.
울타리처럼 보이는 진입도로 옆에는
박 대통령의 생전에 활동하는 사진이 크게 수 십장 전시되어 있었다.
낯익은 사진이 옛날 추억을 새롭게 떠올리게 했다.
대통령되기 전 초등학교 선생님 시절부터
대통령으로서 현장을 시찰하던 사진까지 자료로서 전시되어 있었다.
고 육영수 여사와 함께 촬영한 빛바랜 가족사진들이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당시 고 양택식 서울특별시장의 안내로
서울지하철 공사현장을 시찰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담긴 사진도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 무렵 서울시청 행정과에 근무하던 시절
양택식 서울시장에게 직접 결재를 맡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대대적인 미아 찾기 캠페인을 전개 할 것을 제안했었다.
서울시 전체 반상회에서 나누어줄 미아 찾기 전단 초안을 작성해서
시장에게 보고한 후 인쇄소에 넘기려고 서둘러 시장결재를 맡았던 추억이 생각났다.
당시에 그 사실을 신문사에서 사회면 톱기사로 크게 보도해 주었다.
지방행정이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이라고 언론에서 호평을 해 주었다.
서울시정에 많은 예산을 투자한 한강교량 공사 준공식 보다 더 크게 보도 되었었다.
서울 시정 중에 시비 투자 없는 비 예산사업이 언론에서 더 크게 호평을 받았기에
이를 추진했던 담당자로서 어깨가 으쓱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서울시의 새마을 운동의 실무자였다.
<서울의 새마을 운동> 이라는 기본계획을 내 손으로 작성했고
수년간 마치 도시 새마을운동의 전문가처럼 군림하며 일했었다.
공무원 생활 중 삼분의 일을 새마을 분야에서 근무했던 터라 더 감회가 새로웠다.
국민운동의 구심점으로 농촌과 도시를 망라해서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새마을 운동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민간운동으로 전환하여 열기가 다소 주춤했는데
요즈음 제2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점화되고 있다.
과거에 이 운동의 중심에서 참여 했던 사람으로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사진을 둘러보니 전시된 사진속의 인물들이 대부분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니 인생이 참으로 짧고 순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작은 광장에 새마을 역군들의 동상이 시대상을 상징하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박 대통령이 어머니와 직접 심었다는 작은 감나무와
대통령의 어머니가 직접 사용했다는 옷장을 보니
불현듯 나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울타리 옆에 핀 봉선화가
시골 고향집 장독대가 그리워지고 봉선화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정말 만약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재임 기간 동안 대통령은 누가 했을까?
또 그의 큰 따님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 누가 대통령을 하고 있을까.
사람의 운명은 과연 있는가.
아내를 잃고 또 본인도 비운으로 세상을 하직 하게한 운명의 신은
과연 누구를 위해 그런 연출을 하였을까.
청와대에서 육영수 여사를 보내는 장례식 장면이 떠오르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집 앞에 실제크기와 비슷한 박 대통령과 육 여사와의 부부 상징물 옆에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농촌의 가난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우리나라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대통령을 돌아가신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보람이었다.
그리고 보리 고개 체험관에 들려 보리개떡 한 개를 사서 입에 물고
나는 어둠이 드리워지는 생가를 뒤로 하고 아내와 천천히 발길을 주차장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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