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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느티나무

이보규 2004. 2. 2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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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괴산문화원에서 발간한 "괴산문화"에 수록한 글을 여기에 옮긴다

 

내 마음의 느티나무

                                                                                                                          이  보  규 

                                                                                                      (전)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장 / 부이사관  

                                                                                                                                           칠성면 태성리 출생           


고향 떠나 사는 사람들을 두고 고향을 잊고 사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출향인 치고 고향 그리워 가슴을 적셔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금은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된 도로망과 자가교통수단으로

고향과 타향의 의미가 다를 바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국내에서의 고향 타령도 나의 오늘 이 글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칠성면 태성리이다.

6형제의 셋째로 태어나서 장풍초등학교(3회)와 괴산중학교(7회)를 졸업하였지만

상급학교는 다른 곳에서 다니고 이십여 세에 고향을 떠나 군 복무를 끝낸 후

바로 서울에서 공직생활로 이어져 어언 이순의 나이가 되었으니 타향살이 40여 년이 흐른 셈이다.

 

나는 이번에 서울시청과 송파구청 등 각 구청 건설, 재무, 총무국장 등을 거쳐

승진한 후 서울의 한강관리사업소장직을 끝으로 36년간 공직생활을 마감하였다.

정년퇴임 후 시간의 여유를 얻게 되었으니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시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고향 생각이다.

가슴속 깊숙이 담겨 있는 고향 괴산의 모습을 조금씩 꺼내보며

유년의 추억에 잠겨보는 것이 나 혼자만의 즐거움이 되었다.

 

언제 열어보아도 같은 화면으로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고향은

강줄기 따라 수리가 좋은 논에는 벼 이삭이 황금빛으로 영물어 가고

바닥이 넓은 밭에는 인삼과 담배가 자라고 있다.

 

산기슭 다락 밭에는 옥수수, 고구마 등의 잡곡이 심겨지고 김매고 가꾸는

밀짚모자 쓴 농부의 모습이 성자처럼 내 가슴에 우뚝 서곤 한다.

산아래 자리 잡은 고향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폭이 좁은 시냇물은 여름철 우리들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베잠뱅이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로 물 덤벙이며 놀다가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거나 올갱이를 줍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해지는 줄도 몰랐다.

 

이렇게 잡아온 올갱이는 끓는 물에 삶아서 가시나무 바늘로 까내어

아욱과 파를 넣고 끓이면 그것이 괴산의 자랑거리 음식인 올갱이국이다.

비췻빛이 감도는 시원한 국물 맛이 단연 일품이다.

 

나는 지금도 고향을 찾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괴산 장터 단골식당에서 올갱이국을 먹는 일이다.

고향에 갈 때면 일부러 아침밥을 먹지 않고 출발하여

괴산 장터에서 올갱이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돌아올 때 또 먹고 그래도 아쉬워 서울에서 다시 먹으려고 포장해서 가지고 온다.

 

나는 요즘 공연한 걱정이 생겼다.

혹시 괴강이 오염되어 올갱이가 사라지거나 메기와 가물치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올갱이국과 메기,가물치매운탕이 없는 고향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괴강을 아끼는 고향 사람들이 괴산의 젖줄인 괴강을 절대 오염시키지는 않으리라 믿으면서도

때로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은 나 또한 괴강을 아끼기 때문일 것이다.

 

괴산에는 바다가 없는 것이 흠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 대신 아름다운 산이 겹겹이 둘러 있어 녹음의 바다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괴산은 백두대간에 줄기를 대고 소백산맥을 이룬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의 권역에 있는 지역으로 충북 99개 명산중 칠성면의 군자산을 비롯하여

대야산, 덕가산, 박달산, 백화산, 보개산, 칠보산 등 25개 명산이 괴산에 위치하고 있으니

명산의 전시장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산이 높고 골이 깊으니 비교적 물이 풍부한 고을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화양동 계곡과 쌍곡 계곡의 기암절벽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물론이요,

수십 계곡의 물줄기가 모아 괴강으로 흐르며 괴강의 물은 다시 남한강의 상류원이 되어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 수와 만나 이 민족의 젖줄인 한강 수가 된다.

이러니 비록 바다가 없다고 해서 아쉬울 것이 별로 없는 고장이다.

 

나 또한 공직 말년에 서울 1천만 시민의 젖줄인 한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치수(治水)하는 책임자가 되었음도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괴산의 자랑이 어디 산과 물 뿐인가.

우리 마을에 위치한 고찰 각연사와 괴산향교, 수옥정와 제월대 충민사 등 명승유적 또한 괴산의 자랑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비의 고장으로서 전국적인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며,

또한 전통에 빛나는 문화예술의 고장임을 우리 문화원의 각종 사업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이처럼 훌륭한 선조의 기상과 지혜가 면면히 이어져 오는 고장에서

오늘을 사는 후손들이 “미래의 땅 괴산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더욱 아름다운 고장, 더욱 윤택한 삶을 가꾸어가고 있으니

괴산에 고향을 둔 출향인 또한 가슴 벅찬 자긍심을 갖게 된다.

 

대를 이어온 조상의 유택이 모셔져 있고, 최근에 영면하신 부모님께서 잠들어 계신 고향땅,

그곳은 분명히 나도 언젠가는 가야 할 곳, 영원한 고향이다.

 

언제나 넓고 깊으며 높고 아름다운 산이 버티어 서 있고,

그윽이 바라볼 수 있고 함께 숨 쉬며 포근히 감싸주는 아름다운 강과 들,

맑은 하늘 아래 다락 밭에서 인삼과 고추, 담배, 과수를 가꾸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평화로운 고장........

 

내 고향 괴산은 그 이름처럼 한 그루 느티나무로 내 가슴속에서 언제나 자라고 있다.

 

해마다 해마다 조금씩 자라 내 나이 이순이 넘고 보니 이제는 아름드리로 자랐다.

 

내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도 울창한 가지 되어 늘어지고

고향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티나무 녹음처럼 날마다 날마다 더욱 짙어가고 있다.

 

나는 맑고 깨끗한 괴산이 좋다. 괴산에 살고 계신 고향 분들을 영원히 사랑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