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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등산과 새마을 운동 (새마을신문 80.3.22)

이보규 2007. 8. 22. 10:35
 

겨울등산과 새마을 운동

 

                                                                             서울특별시 새마을지도계장  이보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등산길에 올랐다.

산이 좋아서 가끔 산을 찾을지라도 막상 정상을 올라가려면 언제나 마찬가지로 무척 힘이 드는데

등산의 멋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오늘같이 모처럼의 등산일 경우에는 더더욱 힘겹게 느껴진다.

숨이 차고 다리도 뻣뻣하며 전신이 땀에 젖고 나면 메고가는 배낭마저 더욱 무거운 느낌이다.

이와 같이 힘든 일을 위해 간밤에는 잠까지 설쳐가며 배낭을 챙기던 일이 생각난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했던 英 의 등반대장은

『산은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대답 했다는 말을 되씹으며 같이 간 일행 중

선두대열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다.

 

어떤 사람들은 에베레스트산의 8천 8백 48m 정상도 정복했는데 나는 겨우 7백여m의 목표를

오르면서도 쩔쩔매는 주제에 등산에 대한 이야기를 벌인다는 것이 좀 부끄러운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시골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깊은 산속을 뛰놀며 자란 탓에 누구보다도 산에 익숙하다고

자부하면서 산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항상 다른 일에 쫓기다 보면 등산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았다.

 

산은 오랜만에 찾을수록 더욱 뜨거운 정과 친근감을 느끼게 마련인 것 같다.

나는 응달쪽으로만 남은 잔설 사이로 멀리서 들려오는 봄의 소리에 발맞추어 산내음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기분 좋게 정상을 향했다.

 

나는 산이 좋다.

산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갖고 싶고 또 모두 알고 싶을 만큼 아무런 조건 없이 좋아한다.

이끼낀 큰 바위, 작은 돌멩이들, 고목이 된 노송, 이제 겨우 한 키를 자란 도토리나무, 비탈진 계곡,

하늘과 맞닿은 능선, 그리고 발아래 있는 풀 한포기에 이르기까지- 산에 있는 것들 모두가 좋기만 하다.

 

산의 분위기가 좋다. 언제나 조용하고 말이 없을 뿐 아니라 장엄한 위엄,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대해주는 믿음직한 자태가 좋다.

잘생기고 힘이 센 남자, 가냘픈 어린 학생,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도 찾아주면 언제나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준다.

 

산은 항상 있는 그대로요 꾸밈이 없다. 봄이면 새싹이 움트는 모습으로, 여름에는 무성한 잎을,

가을에는 단풍 옷을 입고 맞아준다. 오늘처럼 봄을 기다리는 겨울산은 앙상한 가지에 잔설이

덮인 채로 부끄러움 없이 맞아준다.

 

마치 고향을 찾아간 것처럼  평온하고 친근감 속에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산에서 만나는 산사람들도 또한 좋다.

 

어떤 형태의 옷을 입어도 산을 닮아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버스정거장이나 택시 승강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서로 마구 앞을 다투는 일이 없이 만나면 서로 미소 짓고 위험한 곳에서는

손을 잡아 주며 서로 돕는 등 친절해서 기쁘기 그지없다.

 

등산의 멋은 정상을 오르는데 있다.

정상에 다다르기 까지 험한 바위길마다 누가 언제 설치해 놓았는지 알 수 없으나

급한 경사에는 계단을 만들고 쇠파이프와 쇠줄을 달아 초보자 까지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 나는 무사히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만약 이 같은 편익시설이 없었다면 정상 정복을 중도에 포기 하였으리라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정상에 올라 사면을 둘러보고 심호흡을 한 뒤 휴식을 위해 앉아서 주위를 보았다.

비닐조각ㆍ빈 깡통ㆍ깨진 유리병 몇 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자연보호 회원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였구나…』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어둡고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올라오는 등산길에 계단을 만든 사람과 이곳에 쓰레기를 버린

두 사람의 얼굴을 비교해 보았다.

 

우리는 누구를 훌륭한 시민으로 정하여 훈장을 달아줄것인가?

 

돌이켜보면 우리 선조들이 먼저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해 놓았기에 오늘을 편히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많은 도로ㆍ교량ㆍ상수도ㆍ건물ㆍ공원ㆍ골목길에 이르기까지

정성 들여 가꾸어 왔고, 또 이 순간에도 건설하고 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요, 전통이다.

 

우리 모두가 이같이 훌륭한 건설 대열에 앞장서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알뜰히 가꾸어 놓은

우리 강산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인생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먼 훗날 후손들이 우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때 담배꽁초 하나라도 제자리에 버리는 공중도덕을

지키며 살다 갔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