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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의 관음죽 사랑

이보규 2007. 11. 4. 22:44
 

      33년 가꾸어온 관음죽의 사랑 

                                                          청암 이보규          

 

내가 영등포구 구청에 근무하면서 대림동 통신대마을에

단독주택을 지어 거주할 때

퇴근길에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약간 언덕을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조그마한 화원이 하나 있었다.


어느 봄날 퇴근길에 그 화원에서 주인아저씨가 혼자서

화분에 분갈이하고 있어서 한동안 서서 구경하다가

재미있어 보여 나도 함께 스스로 그 일을 도와주게 되었는데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그 화원 아저씨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말을 듣고


“아저씨 그 관음죽 조그마한 새끼(?)하나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서 아주 작은 관음죽 한 뿌리를 일해 준 대가(?)로 얻어 와서

조그만 화분에 심고 집에서 기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이었다.

막내아들 재학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이었다.


겨울철에는 관음죽이 안방을 차지했고 봄이 되면 양지 바른쪽에 놓아두고

물을 주고 거름도 주고 가꾸면서 

해마다 관음죽이 커지면 그때마다 크기에 맞는 화분으로 바꾸어 옮겨 심어주곤 했다.


그 무렵 함께 가꾼 화초 중에는 고무나무도 있었다.

선인장도 여러 가지를 모양을 갖추어 가꾸었다

행운목을 키우기도 하고 귤나무를 키워서 귤을 달리게도 했다.

새로 좋은 모양의 화초를 보면 구해서 함께 가꾸었다. 

난과 화초를 방안에 드려 놓으려고 진열대를 만들어서 놓았는데

그것이 너무 커서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고무나무는 10여 년 전에 너무 커서 실내에는 안 어울려서

이사할 때 다른 사람을 주기도 했고 그냥 그 집에 버려두고 오기도 했다. 

다른 화초들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수 없이 이사를 하면서도 그때마다 화초의 종류도 바뀌었지만

언제나 관음죽은 꼭 이삿짐 속에 챙겨서 옮겨왔고

33년을 늘 곁에 두고 가족처럼 키우는 동안 정이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갈이할 때 돋아나는 새싹을 분양해서 여러 개로 늘려 놓으면

종자가 매우 좋다고 형님댁에도 가져가고

아우들 집에도 옮겨가고 두 아들 집에도 분양해 주었다.


분양해간 집에 가보면 너무 낯익은 종류라서

화분의 모습은 달라도 집에 있는 화분처럼 똑같이 정이 갔다.

막내 놈도 살림을 시작하면서 지난겨울 한 개를 가져갔는데

죽이지 않고 잘 키우고 있는지 아무래도 한번 확인해 보아야겠다.


그런데 관음죽 모체는 키가 점점 커지고 그동안 몇 차례 꽃을 피우기도 했다.

관음죽이 꽃을 피우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정말 꽃이 피는 해는 우연이겠지만 집안에 경사가 생겨났다.


지난해는 꽃이 피어 막내아들의 결혼식을 올리는 경사가 있었고

몇 해 전에는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하고 

나도 공직에서 승진하던 해에도 예외 없이 꽃이 피었다.


그런데 관음죽을 금년도 여름 아파트 계단에 올려놓고

외국여행을 떠나면서 누구에게 부탁하려다가 번거로워 충분히 물을 주고 나면

여행기간 12일간은 견딜 줄 알았는데 한여름 철이라 수분소모가 많아서 그렇겠지만

중심에 있는 큰 두 줄기가 말라 죽어 버려서 그 죽은 가지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모두 뿌리째 죽지 않고 일부 줄기가 살아남아서 천만다행이다.

미안한 마음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더하여 키워야겠다.


지금은 관음죽을 비롯한 10여 종류의 화초를 가꾸고 있는데

어느 것은 한 달에 한 번 물을 주어야 하고

어느 것은 열흘에 한 번, 어느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어느 것은 삼일에 한 번 물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나하나 잊어버리지 않고 물을 주고 가꾸는 일도 나의 일과 중의 하나인데

화초를 가꾸는 일이 생명을 키운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즐겁게 해준다.

잎이 시드는 기색이 있어 물을 주고 나면 다시 싱싱해질때  경험하지 않으면 그 보람을 모른다.


식물도 생명체인지라 늘 사랑을 하고 잘 보살펴 주면 기가 살아 윤기가 나고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면 금방 기가 죽고 시들어 버린다.


이제 나의 나머지 삶은 모든 것을 감싸고 정을 주고 사랑 나누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33년을 가꾸어온 관음죽을 물을 주면서 되돌아보니

지나간 세월이 아쉽고 또한 한순간처럼 느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