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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와이즈맨 (Y,man) 클럽을 떠나면서

이보규 2008. 7. 14. 13:10
                     성암 와이즈맨 클럽을 떠나면서


                                                                                                            청 암   이 보 규

성암가족 여러분께 이 글을 드립니다.


평소 존경하는 B선배님의 권고로 얼떨결에 성암 Y' man의 가족이 되었는데

지난 15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보람을 지니고 사랑을 받아 왔음을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Y' Man이라는 이념을 배우고 YMCA 를 접할 수 있었던 점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 저는 그동안 이방인처럼 느끼면서 동행해 왔음을 또한 숨길 수가 없습니다.


10여 년을 같은 이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끼리 모여서 하나가 되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도 늘 저는 하나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동안 YMCA의 여러 가지 내분을 보면서 참여하는 자신이 프라이드를 갖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최근 YMCA 주요 임원이 TV에 비친 모습은 영 아니었습니다.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현대인의 필수과목으로 생각하고 참여했지만,  Y의 참여하는

나의 정체성은 이제 이것이 아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제가 성격이 비교적 사교적이지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터인지

성암을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특정 한 분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클럽에서 나타나는 행동이 시간이 지나도 하나로 동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더불어 동참하는 모임이라 처음에는 매우 좋다고 생각했는데

비교적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아내도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역시 성암클럽의 모임에 늘 불편해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저는 아내를 무조건 존중하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저의 삶의 방법도 그중 하나의 이유입니다.


모임을 탈퇴하려고 할 때마다 하필이면 누구 회장 때 떠나느냐고 할 가보아

일 년만 더 기다려 보자고 반복했는데 이제 저를 가장 인정해주어 고마운 C지방장도 임기가 끝나

저는 이제 성암을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로 마음을 정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그동안 좋은 일 고마운 일은 가슴에 담아두고 생각나는 몇 가지 사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말씀드리오니

앞으로 회원관리로서 새로 가입하는 회원이나 클럽 운영에 참고 하시고

좋은 뜻으로 드리는 말씀을 저를 모난 편견으로 몰아붙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느낀 점을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몇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행사나 회의일정을 정할 때 일반회원을 배려하기 위한 사전 협의가 없이 늘 일방적으로

정해서 저는 참석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상을 몇 번 받았습니다.


월례회 일자를 결정 할 때나 특히 일본 나고야클럽을 방문하러 갈 때 매번 배려 없이 정해서

가지 못하여 한 번은 꼭 참여하고 싶어서 미리 정한 일정을 따라 나도 강의일정을 조정하고

기다렸는데 사전 통보 없이 취소하고 그것도 해명 없이 일방적으로 끝나버려 준비하고 기다린 저는

무시당한 심정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물론 회원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는 일임을 저도 잘 압니다.


어느 해  삼성동 소재 국숫집에서 월례회를 하면서 저에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라고 해서 사전 준비하여

참석해서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몇 분이 나의 의사는 확인하지 않고

분위기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모두 일어설 때 성암클럽에서의 나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명색이 공직자로서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시나요?


저는 클럽에서 대가를 바람도 아니고 진행하지 않아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식당이라 분위기가 아님을 공감했고 준비한 시간이 아쉬워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때 무시당한 순간 모욕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몇 번 클럽모임에서 강의를 요청할 때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나름대로 재미에 초점을 맞추어 강의했습니다.

듣고 난 후에 그냥 덕담으로 좋은 강의였다고 말해주면 강의한 사람이 보람을 느낄텐데

그냥 지나칠 때 얼굴이 뜨겁고 무척 쑥스러웠습니다.


둘째, 월례회로 모일 때마다 저녁식사를 그냥 대충 때우는 식으로 제각각 값싸게 먹을 때

저의 처지에서 그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특히 서초동에서 모일 때 느낌이었습니다.


매년 부담하는 회비는 회원들을 위해서 쓰이지 않고

별도로 이웃돕기 등을 이유로 수시로 돈을 갹출할 때 위선과 형식에 치중하는 듯한 모습이

봉급을 받아 생활하는 처지에서 회비 따로 비용 따로 부담할 때마다 무척 아쉬웠습니다.


다른 모임에서 보면 간혹 재정의 여유가 있는 분이 저녁을 사기도 하고 적은 비용은 부담하기도 하지만

그런 예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돈을 많이 쓰면서 성암클럽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면

사회 활동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회장이 참석하는 임원회는 몇 번 사비로 부담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셋째, 클럽 운영이 일부 형식에 치우쳐  지구 행사나, 지방공식회의 때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만

참석하지 않는 회원들의 회비까지 포함하여 등록하는 등 단위 클럽 입장에서 볼 때 낭비이고 내실보다는

진실을 감추고 외식에 치중하는 모습이 나의 마음속에서부터 무척 갈등을 가져왔습니다.

이 문제는 여러 번 제기 했는데도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넷째, 모임이 해가 가고 세월이 흘러도 사교적인 친숙함이 더하지 못해

늘 만날 때마다 따뜻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만날 때는 늘 서먹서먹하고 때로는 빨리 끝나기를 기다려지고

폐회로 헤어질 때도 아쉬움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회원끼리는 친숙하고 초창기 이야기와 사적인 대화로 링들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늦게 가입한 저는 모르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늘 소외당하고 이방인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잦았습니다.

내 아들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고 나도 다른 아이들 이름을 모르니까 그랬습니다.


다섯째, 제가 병원에 입원하여 몇 번 인공관절수술 등을 하고 최근에 무릎이 아파서

걸음을 걷지 못해 울고 밤새워 아파서 울며 몸부림치는 글과 기도문을 "카페"와 "블로그"에 기고하였는데

다른 모임에서는 그 글을 읽고 위로가 있어도 성암클럽은 늘 모두 무관심하였습니다.


아내가 국립암센터에서 갑상선암으로 진단을 받고 걱정을 하면서 수술을 한 후에도, 따뜻한 위로가 없을 때

인간적으로 유치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암클럽은 인류의 고통을 걱정하고 몽골노동자는 아픔을 대회를 통해 모금하여 도와주고

행사를 열어 보살펴 주고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찾아나서 도와주는 일은 훌륭한 일입니다.

.

물론 몇 분의 회원 내외는 병원까지 사적으로 찾아오셔서 우리 가족을 위로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고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이웃돕기 기금을 납부하면서 다소 소시민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지구 상의 인류 중에는 일부 인구가 에이즈로 죽고, 마약에 젊은이들이 병들어 죽고, 전염병에 죽고

교통사고로 수 없는 생명이 죽고, 국군이 국방을 위해 바다를 지키다 전사한 장병의 고귀한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오직 “미선 효순 양의 죽음” 이 더 애석하여 신앙처럼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사실을 한동안 가슴 아프게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3억 인구가 아직 최근 10년 동안 죽은 자가 없고 우리 국민도 아직 걸린 자가 없어도

다만 광우병의 우려 때문에 촛불 들고 비를 맞으며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분히 그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최근에는 일부 신앙인들마저 나서는 혼란스러운 현실 앞에 사회적 가치와 행동의 괴리를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가슴으로 느끼며 갈등이 제 앞에 다가왔습니다.


 여섯째, 제가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음을 알리고 저의 "블로그"와 "카페"에

못쓰는 글이지만 글을 써서 올려도 (Y 임은 방문하셨음) 별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방문하는 회원이 없어서 씁쓸하고 제가 존재가 없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성암 회원들과 더불어 왜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가?

지금처럼 계속 만나도 서로 더는 깊은 정과 사랑을 나눌 수 없다면

저는 성암클럽에서 존재하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은 저의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지금까지 함께 한

우리 회원 중에는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성암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앞으로 운영에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성암클럽을 떠나면서 소망하기는 더 큰 발전과 큰 뜻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사회에 참여하던 봉사모임, 그리고 친목모임 등이 분수보다 지나치게 많아서

하나씩 정리하는 차원에서 고심하며 결정 했을 뿐 다른 뜻이 없음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제 나이로 보아 어느 정도는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사회 전면에서 나설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이미 능력도 없고 주역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암클럽은 제 인생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제가 36년의 공직을 정년퇴임 할 때도 이런 생각이고 이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노년을 사는 삶의 지혜는 불편한 일은 잊어버리는 것임을 알고있기에 이렇게 말하고 잊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떠나면서 성암에 도움을 주고자 한 편지임을 말씀드립니다.

회원들과 그동안 맺어진 인연을 모두 끊어버리자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원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이 보 규 드림


※ 이 편지는 제 “블로그‘와 ”청암 카페“ 에 글로서 올렸습니다.

   나의 아들 며느리도 읽어보는 곳이라 진심으로 기록한 점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