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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규의 조각 추억 이야기(4) - 손자 동규에게 남기는 불교에 대한 나의 생각

이보규 2018. 8. 5. 23:04



이보규의 조각 추억 이야기

(4) - 손자 동규에게 남기는 불교에 대한 나의 생각


 

손자 동규에게 남기는 불교에 대한 나의 생각

 

불기 2562주년 석가탄일을 올해부터

부처님 오신 날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본래 이름은 본인 짓고 남이 부르는 것인데

불교계에서 불러달라고 하니까 우리는 따르면 된다.

 

내가 태어난 시골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에는

6세기 신라 법흥왕 때 세웠다는 고찰이 각연사가 있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있지만

당시에는 산골짝 소로 길로 10리쯤 걸어 가야했다.

 

초등학교 때는 단골로 소풍가는 절이다.

우리 동네 옆 동네 쌍곡리 절말에 절을 지으려고

목수가 나무를 다듬으면 그 대패 밥을

까마귀와 까치가 어디론가 물고 갔다고 한다.

 

이상해서 따라가 보니 지금 각연사 연못을 메우고 있어

그곳 연못에서 광체가 나는 돌부처가 나와서

그 자리에 세운 절이라는 전설을 어려서 들었다.

대웅전의 석불이 바로 그 부처라고 했다.

 

절의 큰 나무 기둥과 축대의 큰 돌을 어디서 구해

산골짝에 어떻게 가져 왔을까 하는 궁금증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거북이 등위에 세운 비석은 내용도 모르지만 멋이 있다.

 

나는 불교를 나의 신앙으로 삼아본 기억이 없지만

절에서 불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고 습관으로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아버지는 이장으로서 각연사 신도 회장을 하셨고

어머니는 막내 동생이 명문 대전고를 나와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

절에서 밤새우며 부처님에게 일천 배 절을 했다고 했다.

 

동생이 대학을 낙방한 이유가 동생이 실력이 모자람도

어머니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칠석날 집에서 보신탕을 해 먹어서

부처님이 노해서 그렇다고 어머니는 믿고(?) 계셨다.

 

그래서 큰 굿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를 위해

당시 시청에서 융자를 받아 굿 비용을 보내드렸다.

 

그 이듬해 동생이 다른 국립대학 합격을 했는데

그때는 참 옹졸(?)한 부처님이라고 생각을 했다.ㅎㅎ

그 어렵게 그 융자금을 모두 갚아 갈 때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처녀 때부터 간절한 기도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으로 38년을 살고 있다.

 

지금은 오래 전에 모두 떠나셨지만

어머니는 그 후 마을의 교회 집사가 되셨고

아버지도 서울에 저와 살면서 나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가는 주일날을 무척 좋아하셨다.

 

아버지도 나에게 불교를 말씀하지 않았고

나도 자식들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교회를 다녔지만

아들과 손자를 위해 매일 기도를 하지만

내 신앙을 따르라고 고함치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도로상이나 지면에 각연사의 이정표 등을 보면

문화유산으로서 고찰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불교는 나에게 종교로서가 아니라 주변 문화로 남아있고

기독교는 나의 신앙으로 생활의 중심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불교나 기독교나 종교로서 제4모작 사후의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휴일을 즐기면서 종교를 연구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기독교를 믿고 있는 할아버지로서 예수 믿기를 바라며

부처님 오신 날손자 이동규에게 이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