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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규의 조각 추억 이야기(6) - 6.25 사변 때의 추억

이보규 2018. 8. 24. 18:11




이보규의 조각 추억 이야기(6) - 6.25 사변 때의 추억

<손자에게 들려주려는 글이다>


손자 동규가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내가 10살이던 해 1950년 6.25가 발발했고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그때 일이 모두 기억이 나니까
지금 동규도 모든 일을 기억할 것이다.


먼저 말하지만 북한의 남침으로 6.25가 일어났다.
누가 무어라고 가르쳐도 내 말이 맞다.

집신과 게다(나무)를 신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피난 가려고 아버지 따라 주막거리 가계로 갔다.
내 발에 맞는 고무신이 없어 그냥 돌아오면서
아버지에게 커도 고무줄로 동여매고 신겠다고 해도
아버지는 대꾸도 없으셨다. 지금도 아쉬운 추억이다.


피난은 천내에 계곡에 물 흐르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배낭에 엿을 넣고 그것을 메고 나섰다.
허리끈 매는 위치에 큰 종기가 나서 고름을 짜내곤 했다.
어른 들이 나무를 베어 지붕을 만들고 그곳에서 먹고 잤다.


어느 날 피난 생활을 접고 온가족이 집으로 돌아 왔는데
세상은 인민군이 점령했고
우리는 동네 고목나무 밑에서 인민군 노래를 배우고
모두 호칭이 동무라고 했다.

‘아버지 동무’ ‘할머니 동무’라고 낯선 문화를 배웠다.


인민군이 오면 인공기를 들고 길거리에 나서고
국군이 오면 태극기를 들고 나섰다.

매일 북한의 노래를 배우고
머슴과 못 살던 이들의 완장차고 설치는 세상이 되고
이장을 하던 아버지는 풀이 죽어 사셨다.


뒷집 아저씨는 비행기 기관총을 맞아 죽었고
전투가 벌어지면 나는 뜨거운 탄피를 줍느라고
총 쏘는 군인들 뒤를 따라 다니다가

집안 아저씨에게 얻어 맞으며

야단 맞고 다시는 안 나가겠다고 울던 생각이

추억으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쟁은 총성만 없을 뿐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남과 북은 진행형이다.